감정 과잉 (Demo)

2022.01.24 | 조회 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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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겹의 음악

일상의 여러 순간에 깊이를 더해줄 음악을 소개합니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오늘의 글은 demo다. 음악에서 데모는 보통 후반 작업을 거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 보니 정리가 덜 되었거나 거친 음색을 들려주는 게 태반이다. 글로 따지면 여러 번 읽으며 고쳐 쓰는 작업인 퇴고를 덜 한 글이다. 하지만 데모는 단순히 기술적으로 부족한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초의 것으로부터 가능한 덜 덜어냈다는 건 때로는 본래의 의도와 가장 가깝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데모는 감정 과잉이다. 글이든 음악이든 무작정 쏟아내다 보면 어느 순간 부끄럽거나, 엉망진창이 된다고 느낀다. 커다란 감정을 드러내는 일은 어쩔 땐 마치 표적이라도 된 것처럼 무섭고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해서, 결국 많은 것들을 덜어내곤 한다. 어쩌면 최소한의 '사적인' 정보로 최대한을 말하는 게 가장 안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정 과잉이 되는 것을 경계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내 안에서부터 이미 강렬히 느껴지는 어떤 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올까. 애초에 어떤 기준으로 어떤 감정이 '과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며, 또 그런 것을 경계해서 결국 ‘예방’할 수 있기는 한걸까?

 모든 것이 데이터로 기록되는 세상이다. 그럴 수 없어 보이던 것들 역시 그렇게 되어간다. 모든 것이 정보로, 지식으로 기록되고 공유되면 결국 전부 영원할 것만 같다. 지식은 모두가 납득 가능한 공적인 정보다. 그래서 감정에 비해 후한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반대로 말해보면, 개개인이 무언가를 느끼는 방식이나 그 관점은 고유하기에 공유될 수 없다.

 이야기는 구전될 수 있지만, 그 이야기를 통해 느끼게 될 감정은 그럴 수 없다. 해석 가능한 것, 설명으로 대치될 수 있는 것들은 세상에 오래 남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꼭 불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감정은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어서, 너무 사소하거나 너무 방대해서 외면받을 수는 있어도 결코 경계하거나 예방해야 하는 독단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가끔 ‘발가벗은 것 같은 기분’이라는 표현을 쓴다. ‘왜 사람들은 부끄러우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릴까/마치 그것이 마음이라도 되는 것처럼’이라는 시구*도 떠오른다. 나는, 사람들은 지금의 감정이 과연 ‘타당한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만 부끄럽고, 그래서 마음을 가리나 보다. 마치 알몸을 '당연히' 부끄러운 것이라고 여기듯, 날 것과 같은 커다란 행복이나 슬픔, 분노와 고통을 표현하는 데엔 먼저 부끄러움이 앞선다.

 결국 얼마나 깊이 느끼고 얼마나 드러낼 것인지는 각자의 생존 방식에 달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무언가를 느끼는 것 그 자체는 현실에서의 살아남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꾸 숨기다 보면, 들여다보기를 멈추다 보면 결국 무언가 하나 잃어버리게 될 것만 같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들킬 수 있을까? 영원히, 안전한 것으로, 남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까? 그래서, 매 순간, 살아있을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Nina Simone - Feelings

니나 시몬의 1976년 라이브 영상. 사랑을 하고 또 사랑을 잃는 것이 더 이상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고통일지라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겠다고, 자신이 느끼는 모든 것을 노래하겠다고 이야기한다. 


*이제니 <유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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