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는 그 자체로 위안이 된다

2021.07.26 | 조회 6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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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겹의 음악

일상의 여러 순간에 깊이를 더해줄 음악을 소개합니다.

 며칠 전 조그만 계곡에 갔다가 어린아이들 여럿이 물놀이 하는 걸 구경했다. 얕은 물가에 한참을 앉아 지켜본 아이들의 모습은 잊고 있던 것처럼 생소하면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화로워서, 이상할 만큼 차분한 마음이 들었다.

 어떤 아이들은 킥판을 가져와 물을 밀쳐 파도를 만들며 놀고 있었는데, 그중 특히 왜소했던 한 아이가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하자 '너가 하기엔 좀 힘들 것 같은데' 하면서도 그 애에게 순순히 차례를 내어줬다. 

 조그만 아이의 가느다란 팔로는 그게 쉽지 않았는지 물은 파도가 되기는커녕 되려 아이를 밀어냈다. 생각처럼 되지 않자 이내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진 아이가 겨우 용을 써서 조그만 물살을 만들어내자 다른 아이들은 큰 파도라도 맞듯 열심히, 물 위로 쓰러져주었다.

 그제야 웃음을 찾은 아이의 모습과 웃음소리, 그리고 그날 내가 목격한 작은 배려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서 마음이 헛헛해질 때마다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걸 떠올릴 때마다 정말 이상하게도 내가 본 것이 특정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자연의, 풍경의 일부라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원래 그런 것, 그저 있을 뿐인 것. 아무것도 목적하지 않는 듯한 순수한 자연은 텅 빈 것도, 그렇다고 가득 찬 것도 아니기에 풍경이 된다. 그곳엔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기에 다만 잊고 있던 마음을 가져다 심는 것이다.

 풍경은 나를 모른 체 해주는 것으로 품을 내어준다. 그리고 나 스스로 묻게 하는 것으로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 아이들의 배려심이, 얕은 물살 위로 쓰러지던 모른 체가 그날 본 자연의 어떤 풍경보다도 순수를 떠올리게 했다.

 꾸밈없는 마음은 그 자체로 풍경이 된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순수는 그것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는 것도. 수많은 이유와 목적으로 얼룩진 마음속 무언가가 그날의 풍경으로 조금은 씻겨간 듯하다. 커다란 아름다움과 커다란 반성이, 잊고 있던 순수가 거친 물살로 요동친 하루였다.


  • WASABI HOTEL - Daily Castaway (2020)
  • North Americans - Rivers That You Cannot See (2020)
  • Khotin - Water Soaked in Forever (2019)
  • AOKI,hayato - HA - Chapter On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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