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고독

2021.07.05 | 조회 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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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겹의 음악

일상의 여러 순간에 깊이를 더해줄 음악을 소개합니다.

 머릿속에 뒤죽박죽 엉긴 수많은 음악이 환청처럼 쏟아졌다. 아주 오랜만의 디제잉 공연을 준비하느라 시간과 정신을 잔뜩 쏟은 탓이다. 지난번엔 아무것도 듣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음악을 들었지만 이번에는 그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대신, 마음을 추스리려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언젠가부터 휴식을 위해 피아노를 치는 빈도가 늘었다. 곡을 쓰기 위해서나 좋아하는 곡을 연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음들을 짚고, 묵은 감정들을 토로하듯 아무 말이나 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무책임한 연주를 하다 보면 많은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지금 느끼는 감정과, 그것과는 별개로 습관처럼 움직이는 손가락. 나 홀로 아무렇게나 하는 즉흥 연주이기에 일단은 홀가분한 자유가 느껴지지만 그 자유는 금세 방향을 잃고 증발해버리고 만다.

 누군가 목적도 의도도 정해주지 않은 텅 빈 시간을 채우는 독백은 그 자체로 뜻깊다. 온전히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갖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누구도 해결하지 못할 것들을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는 것들을 스스로 알아주기 위해서는 인내가 필요하다. 빠르게 뒤섞여 스쳐가는 수많은 소음 속에서 정작 자신의 목소리는 덜 흥미로운 것이 되기 십상이니까.

Fred Hersch - Both Sides Now

 혼자 있는 순간에 몰입하기가 힘들 때면 피아노에 머리를 파묻은 피아니스트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때때로 나지막이 흥얼거리거나 거친 숨을 모아 건반을 누르는 연주자들은 수많은 청중 앞에서도 지극히 고독해 보인다.

 어쩌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기 위해 그들은 되려 더 큰 고독으로 들어간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동시에 말하기 위해. 또 온전히 혼자인 모습을 마음껏 들킬 용기와 확신을 갖기 위해. 부단하고 성실한 고독의 시간이 지금의 말 없는 대화를, 그들의 세계를 만들었음을 되새겨 생각한다.

 성실한 고독은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연습이다. 그건 때때로 외롭거나, 외롭다기보단 낯설거나, 낯설다기보다 어설플 수는 있다. 그래서 지루하고 또 조바심이 나더라도 고독을 외로움으로 오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온전히 가져본 적 없는 나의 목소리를 더 잘 알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을 혼자 있는 시간으로 바꾸는 연습을 해본다. 그렇게 나의 얄팍한 자유를 조금 더 살찌울 성실한 고독과, 고개를 떨구고 피아노 앞에 홀로 앉은 이들의 마음을 생각해본다.

Fred Hersch - Solitude

*혹시 오늘 글을 읽고 떠오르는 피아니스트가 있으시다면 저에게도 많은 추천 부탁드려요! 

*더 들어보면 좋을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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