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과 햇볕

2021.06.28 | 조회 904 |
0
|

한 겹의 음악

일상의 여러 순간에 깊이를 더해줄 음악을 소개합니다.

 우리말에서 햇빛은 '해의 빛'을, 햇볕은 '해가 내리쬐는 기운'을 말한다. 다시 말해 햇빛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햇볕은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햇빛은 환하게 비쳐들거나 나뭇잎 사이로 흩어져 부서지는 것이고, 햇볕은 머리 위에서 뜨겁게 내리쬐거나 버스 창가에 걸쳐놓은 팔등을 온기로 지그시 누르는 것이다.

 요즘처럼 한낮에 난데없는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면 조그만 웅덩이마다 햇빛이 멍울져 반짝이고, 비에 젖은 땅은 초여름 햇볕의 후끈한 열기로 금세 덥혀진다. 한 번 젖었다 마른 해는 유난히 붉게 저물고, 그런 날엔 해를 가린 구름까지 잔뜩 분홍으로 물든다.

 햇빛과 햇볕은 언제나 한 몸처럼 공존하지만 그것들이 내게 낱말로써 다가오는 순간들은 각각 다르다. 분명한 건 햇빛과 햇볕은 언제나 세상을 가득 메워왔기에 되려 그 존재와 의미를 자세히 느끼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그림자로 일렁일 때나 물 위에서 쪼개지는 햇빛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지만 그저 환할 뿐인 대낮의 햇빛은 너무 커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저 모든 것을 밝힐 뿐이다. 햇볕도 그렇다. 그늘을 품고 몸에 닿는 햇볕은 소박한 만큼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메마른 땡볕을 쬐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저 덥다는 생각만 든다.

 그러나 온 세상을 비추고 덥히는 햇빛과 햇볕이 딱 단어 하나 만큼의 자그마한 조각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것들의 이름을 부르고 마음에 품을 여유가 생긴다.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되는 것, 애초에 가질 수도 없는 것을 딱 한 움큼만 손에 쥐어본다. 흐드러진 햇빛과 볕뭉치들. 마음에 심은 낱말들은 영영 자라고, 만질 수 없는 것은 닳지도 않는다.


  • Felbm - Brunnengasse (2020)
  • Susumu Yokota - Azukiiro No Kaori (팥색의 향기) (2000)
  • Domenique Dumont - People On Sunday (2020)
  • Sora - Revans (2003)
  • Andrew CS - Two Minutes For Crystal (2020)
  • Noviembre - Juice (2021)
  • Nujabes - Modal Soul (feat. Uyama Hiroto) (2005)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한 겹의 음악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4 한 겹의 음악

일상의 여러 순간에 깊이를 더해줄 음악을 소개합니다.

뉴스레터 문의 : glamgould@gmail.com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