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여자들의 극장 허시어터가 다양한 공연 리뷰와 현장의 흥미로운 기사들을 모은 리뷰&뉴스 편으로 인사드립니다.
먼저 리뷰로는 국립극단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공동제작한 <로제타>, 극단 달과아이의 <초록빛 목소리>, 성폭행 피해자의 법정 싸움을 다룬 화제의 1인극 <프리마 파시>, DAC아티스트 박주영 연출의 <마른 여자들>, HJ컬처의 트라이아웃 뮤지컬 <잔 다르크>, 국립극장과 전주세계소리축제가 공동제작한 요나 김 연출의 ‘판소리 시어터’ <심청>까지 모두 여섯 편의 공연 리뷰를 준비했습니다.
기사로는 70세에 연기를 시작하며 인생 2막을 열어온 배우 이향란 씨의 ‘2025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 신진문화인상’ 수상 소식, 창작집단 LAS를 이끄는 이기쁨 연출의 에세이 ‘생계형 연출가 이기쁨의 생존기’, 홍콩위크를 맞이해 <로미오+줄리엣>으로 고국 무대에 오르는 홍콩발레단 김은실 씨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
이 외에 뮤지컬 <번 더 위치>에 출연 중인 배우 홍성원 씨가 공연 중 애드립으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는 소식, 서울미술관이 천경자 작가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준비한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소식, 1920년대 활동한 여성 신파연극단 동광단의 활동과 부단장으로 활약한 기생 심화경 이야기를 담은 기획기사를 소개합니다.
허시어터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이며, 10월에도 더욱 재미있는 공연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한보은 드림

조선에 온 이방인 여성 의사, 연극 '로제타 Rosetta' 이숙정 기자, 민중의소리, 25.08.27
무대 위로 8명의 배우들과 연출가 김정한이 등장한다. 연극이라기보다 관객과의 대화로 시작해, 앞으로 100분 동안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 설명한다. 이내 배우들은 춤을 추며 자기소개를 시작하고, 각자가 '로제타' 역을 맡았음을 밝힌다. 모든 배우가 한 인물을 동시에 연기하면서도 또 다른 인물이 되는, 앙상블 형식의 실험극이다.
이번 작품은 국립극단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재단이 공동 기획해 재연 무대에 오른 연극 '로제타 Rosetta'다. 작·연출을 맡은 김정한 연출가는 오래된 일기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1890년, 미국에서 조선으로 건너온 여성 의사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삶은 곧 작품의 제목이 되었다.
6명의 한국 배우와 2명의 미국 배우, 4명의 여성과 4명의 남성. 성별과 나이, 국적을 넘나들며 연기하는 '로제타'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싸운 그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서도 여성이 의사가 흔치 않던 시대, 낯선 조선 땅에서 로제타는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원형 무대 위의 회전 구조물은 거대한 배가 되었다가 병원이 되고, 시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화상을 입은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자신의 피부를 떼어 이식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를 세워 최초의 한글 점자를 만들었던 의사. 아이와 남편을 차례로 잃고도 조선을 떠나지 않았던 사람. 8명의 배우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로제타 셔우드 홀을 완성해 간다.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은 도깨비가 되었다"…극단 달과아이의 ‘초록빛 목소리’ 정수진 연극평론가, 스마트경제, 25.09.05
다섯 인물들의 목소리로 청소년들의 다성성(多聲性)을 구축하려 했던 초연의 시도는 이번 공연에서 배우들의 몸과 호흡을 거쳐 입체적인 극적 리듬으로 거듭 났다.
경지은(신비), 김의태(영준), 양대은(지선) 등 초연 배우들에 손혜정(인화), 윤희민(수혁), 이다은(수민) 등이 새로 합류하면서 각 인물의 개성이 살아났고 인물 관계는 초연보다 다각화되었다.
배우들이 직접 연기하는 6명의 인물들은 모두 청소년이고 동시에 도깨비다.
마치 뮤지컬의 아이엠송(I am song)처럼 연극은 명랑하고 다채로운 인물들의 자기소개로 막을 연다.
신비는 손에서 불을 뿜어내는 도깨비다. 인간을 홀리는 재주가 있고 달리기를 잘한다. 꿈은 시인이다.
학교에서는 ‘도깨비가 되고 싶다’며 이해받지 못할 말을 하는 문제아지만 도깨비 땅굴에서는 누구보다 유능한 도깨비다.
장래희망을 묻는 선생님에게 ‘꾜꾜뿡이 되겠다’는 그의 엉뚱한 대답은 자기만의 상상과 정체성을 지켜내겠다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그는 꿈꿀 수 있는 권리, 자기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한다. (중략)
‘초록빛 목소리’의 인물들은 현실의 질서를 강요당하다가 스스로 ‘도깨비’가 된다.
여기서 도깨비는 기이함의 상징이 아니라 본래적 자아의 회복이라는 은유로 이해돼야 한다.
마주 보는 객석 가운데 마련된 기다랗고 좁은 무대 위에서 인물들은 ‘우리는 도깨비, 도깨비불은 초록색’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종일관 명랑하게 질주한다.
쿵쿵대는 도깨비들의 발소리에 단단한 현실, 완고한 규범의 벽은 어느새 허물어지고 무대는 청소년의 가능성을 긍정하는 초록색 빛과 소리로 활기가 넘쳐난다.
그리고 어른 관객들로 가득찬 객석까지 초록빛으로 물들인다.
연출가 이래은은 ‘보이는 소리/들리는 빛’이라는 역설(paradox)을 연출의 토대로 삼아 장면을 조직했다.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 놀이를 연출 콘셉트로 뚜렷하게 차용한 것이다.

당하고서야 알았다… 부메랑이 된 ‘법 기술’ - 연극 ‘프리마 파시’ 최여경 기자, 서울신문, 25.09.10
의사에 반해 성적 행위가 이뤄졌으니 성폭력이 맞다. 그런데 이전에도 성관계한 사이라면 ‘거부 의사’를 인정받을 수 있나.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던가. 성폭력 피해자의 행동은 적절했나.
연극 ‘프리마 파시’는 중반부터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공연장 밖을 나오면서도 질문은 이어진다. 배우는 어떻게 저 많은 대사와 감정을 토해 내면서 연기할 수 있는 것인가.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상연 중인 1인극이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고 명확하다. 라틴어에서 유래한 법률 용어인 프리마 파시(prima facie), ‘그럴듯해 보이는 표면의 증거’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면서 사법 시스템의 모순을 꼬집는다.
자신만만한 형사 전문 변호사 테사에게 재판은 게임이다. 법률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승리를 거머쥔다. 성폭력 사건 재판도 마찬가지. 가해자의 변호인으로서 ‘상대가 성관계를 허락한 것으로 생각하게 한 증거’를 찾고 ‘피해자가 거짓말쟁이로 보이도록 하는 전략’으로 승소를 이끌었다. 승승장구하며 왕립 변호사가 될 길이 열린 테사는 동료 변호사와의 술자리 후 성폭행을 당하면서 하루아침에 피해자가 된다.
가해자와의 관계, 만취 상태의 기억, 거부 의사의 적극성과 가해자의 인지, 사건 이후 피해자의 행동 등 벌어진 모든 정황에는 자신이 파고들었던 허점이 있다. ‘가해자를 변호했던 자신’이 던진 질문이 ‘피해자가 된 자신’을 위협하고, 갖고 놀았던 법은 자신을 상처 내는 무기가 됐다. 승소가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어디선가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하므로 782일에 걸친 법정 싸움을 이어 간다.

‘먹고 토하고’ 스스로 자살특공대라 부르던 여자들의 진짜 이야기, 연극 ‘마른 여자들 김세운 기자, 민중의소리, 25.09.16
"그러나 거식증 환자들은 무리를 지어도 쓸모가 없다. 다른 이들이 굶주릴 때 우리는 빤히 쳐다본다. 다른 이들이 먹은 것을 게워내면 우리는 환호한다. 우리는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자살특공대이며, 우리의 마름 이외에는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 -다이애나 클라크 소설 '마른 여자들' 중에서-
깡마른 여자들. 깡마른 것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들. 더 나아가는 여자들. 그런 그들을 보며 누군가는 너무 자기파괴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자기를 파괴해 세상에 내몰리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알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신의 몸에 치명적이라는 것을 말이다. 결국 머리카락이 빠지고 생리도 멈춘다. 죽음과 가까워진다는 것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미세하게 줄어드는 킬로그램(kg) 수에 보람이 차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마른 나를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질 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희열을 느낀다. (중략)
원 중심부터 바깥까지 곳곳에 놓여 있는 마른 여자들은 자기의 언어를 말할 뿐이다. 극에선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나 입장 같은 것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른 여자들의 메마른 언어를 지켜보고 있자면, 오히려 관객은 극장 밖의 사회를 대면하게 된다.
사회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떤 몸을 원하고 있는지, 수많은 매체와 SNS가 여성들에게 어떤 인형 같은 몸을 종용하고 있는지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그들의 섭식장애는 무지막지한 사회 속에서 자신을 존재하기 위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뮤지컬 ‘잔 다르크’ 트라이아웃, ‘라이브’의 힘…관객을 역사 속 그날로! 정아람 기자, 에너지코리아뉴스, 25.09.16
무대는 프랑스의 작은 캬바레. 조명이 한 명의 배우를 비추자 700년 전 소녀 영웅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지난 8월 15일 대학로 예스24아트원 3관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잔 다르크’ 트라이아웃은 1인 5역을 통해 한 인물의 서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2023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후보에 오르며 일찍이 주목받은 이 작품은 ‘빈센트 반 고흐’와 ‘라흐마니노프’ 등 인물 탐구극에 강점을 보여온 HJ컬처의 색깔이 잘 드러나는 무대다.
쇼케이스에 이어 트라이아웃 공연에 합류한 배우 제이민은 쇼의 호스트였다가 순식간에 신념에 찬 소녀 ‘잔 다르크’로 분한다. 이어 그를 심문하는 ‘코숑 주교’의 냉철함과 왕관의 무게에 짓눌린 ‘샤를 7세’의 나약함을 오가며 극의 밀도를 높인다. 목소리 톤과 미세한 표정, 제스처의 변화만으로 캐릭터를 명확히 구축해 관객이 다섯 명의 인물이 실재한다고 믿게 만든다.
80분이라는 압축적인 런타임은 이 작품의 또 다른 강점이다. 익히 알려진 이야기지만,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 대신 끝까지 신념을 지켜내는 잔 다르크의 핵심 서사에 집중해 주제를 선명히 드러낸다.
이는 쇼츠 등 간편간결한 영상 매체에 익숙한 현 세대에게 ‘라이브 공연’이 가진 고유의 힘을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배우가 실시간으로 옷을 갈아입고, 무대를 정리한다. 눈앞에서 펼쳐내는 인물의 고뇌와 신념은 어떤 디지털 콘텐츠보다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하며 폭넓은 관객층을 역사의 한복판으로 이끈다.

우리가 죽여 온 세상의 모든 딸을 위하여: 국립창극단 <심청> 윤단우 공연칼럼니스트, 댄스포스트코리아, 25.09.20
요나 김은 그동안의 <심청> 재해석에서 ‘폭력’ 혹은 ‘인간’을 조명하느라 놓친 ‘딸’의 가족 내, 그리고 사회 내 위치성을 작품의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공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별도로 출간한 작품 해설집을 펼치면 가장 먼저 “딸은 억압의 가장 작은 단위이다”라고 쓴 엘프리데 옐리네크의 문장이 나오고, 요나 김의 연출 노트는 “아빠, 아빠, 이 개자식아, 이젠 지긋지긋해”라는 실비아 플라스의 시어로부터 출발한다.
이처럼 심청의 정체성을 ‘딸’로 분명히 못박아두고 있는 것은 그동안 원전을 비롯해 그 수많은 해석본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약자성을 면죄부 삼아 꽁꽁 숨겨놓았던 심학규의 가해자성을 드러내는 매우 드문 시도다. 오입질과 노름에 빠져 아내와 자식을 돌보지 않은 무책임한 아버지를 증오하는 간난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이강백의 희곡 <심청>이나 심청과 장승상 부인, 뺑덕어멈을 중심으로 여성 간 연대와 사랑을 그려낸 웹툰 <그녀의 심청> 정도를 제외하면 심학규는 언제나 가난과 장애, 그리고 홀아비의 몸으로 어린 심청을 젖동냥해 키워낸 부성으로 인해 쉽게 동정과 연민을 얻는 존재였다.
그러나 요나 김이 아비에게 효도하는 유교 윤리의 수행자로서의 ‘딸’이 아니라 옐리네크가 말했듯 ‘억압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가족 내에서 착취당하는 피해자로서의 ‘딸’이라는 심청의 정체성을 드러내자 아비로서 자식을 지켜내지 못한 심학규의 가부장으로서의 실패, 즉 창작자들이 여태까지 쉬쉬해 왔던 심학규의 식민지 남성성이 함께 드러나게 된다. (중략)
요나 김은 이러한 환생과 왕비 간택의 판타지 로맨스 결말을 폐기하는 대신 제4의 벽을 허물어 이야기 속에 갇혀 있던 심청을 현실로 나오게 한다. 원전의 부녀상봉 장면에서 심청이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하고 노래하는 눈대목은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 가장 극적인 장면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무능하고 무책임한 아비를 질타하는 새로운 맥락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질타는 심학규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눈 먼 자들에게로 향한다. 그렇기에 심청의 노래는 언제까지 눈을 감고 못 본 척할 거냐는 노호로 들리며, 이 장면은 공연 도입부 어린 심청들의 등장과 다시 겹쳐진다. 이는 심청이 맹목적이었던 자기희생을 돌아보는 뼈 아픈 깨달음이기도 하다.

[2025 양성평등문화상] 배우 이향란 “연기로 인생2막…엄마·아내 아닌 ‘배우’타이틀 기뻐” 신다인 기자, 여성신문, 25.09.02
70세에 연기를 시작하며 인생 2막을 열어온 배우 이향란이 ‘2025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 – 신진문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향란은 전업주부로 살아온 삶을 뒤로 하고, 60대 후반 모델 아카데미 수강을 계기로 연기에 도전했다. 2021년 단편영화 ‘단칸방’ 주연을 시작으로, 2023년 ‘퀸메이커’, ‘뿌리이야기’, 2024년 ‘개소리’, ‘눈물의 여왕’, 2025년 ‘트리거’ 등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상이라 놀랐다. 응원과 격려의 의미라 생각해 감사히 받겠다”며 “저와 비슷한 연배의 분들에게 동기부여나 다시 열정을 끌어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연기 시작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시니어 모델 활동을 준비하며 듣게 된 연기 수업이 계기가 됐다. 코로나로 수업이 중단됐지만, 당시 선생님의 권유로 오디션에 도전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져서 정말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떨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오늘도 연기 연습을 했다’고 생각하며 버텼다”며 “70세에 시작했지만 10년은 더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딸이자 배우인 문소리의 반대도 있었다. “70세에 새벽부터 추운 날씨에 촬영을 다니는 게 너무 힘들지 않겠냐”며 걱정했지만, 단편영화 주연을 맡은 뒤에는 진심을 인정하고 응원하게 됐다. 이향란은 “결국 제 힘으로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딸과 사위와 언젠가 함께 작품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생계형 연출가 이기쁨의 생존기] 시대와 현실을 잇는 다리 이기쁨 연출가, 더뮤지컬, 25.09.03
얼마 전,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소리극 <죄와 벌>을 짧게 공연했다. 이 작품은 2019년 산울림 소극장에서 열린 <산울림 고전극장>을 통해 초연되었다. 공연을 만드는 대부분의 창작자들이 그렇듯, 나 역시 고심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 좋은 성과를 얻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무대에 오르길 바란다. 연출을 업으로 삼고 소규모 극단을 운영하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단순하다. “극단과 작품의 생명력은 공연을 통해 증명된다.” 가능하다면 초연에서 멈추지 않고 후속 기회를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알리는 것. 그것이 창작자이자 극단 대표로서 내가 걸어야 할 방향이며, 의무이자 책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사비를 털어서라도 공연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슬프지만 종종 빚도 진다. <죄와 벌>도 마찬가지였다. 정지혜 소리꾼의 초안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초연 이후 6년 동안 “다시 공연할 수 없을까?”라는 말을 해마다 되뇌게 만들 만큼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렇게 바라고 버텨 기회를 만들어낸 덕분에 <죄와 벌>은 다시 관객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소리극 <죄와 벌>’이었을까? 내 손을 거쳐 간 여러 작품 중, 왜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고 싶다고 생각한 걸까? 더운 여름, 짧았던 2회의 공연을 마친 뒤에야 비로소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질 여유가 생겼다. (중략)
<죄와 벌>이 내게 ‘소리극’의 시작이었다면, <체공녀 강주룡>은 이 형식이 어떤 사회적 의제를 담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자 대답이었다. 강주룡은 1931년 평양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조선 최초로 고공 농성을 벌였던 인물이다. 생계를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했던 조선의 여성 노동자가 자기 몸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 사실은, 그 자체로 극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실존 인물을 토대로 픽션으로 그려낸 소설 『체공녀 강주룡』을 홍단비 작가와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와 함께 소리극으로 재창작하였다. <체공녀 강주룡>을 준비하며 ‘소리극’이라는 형식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다. 판소리를 단지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판소리라는 전통의 언어를 빌려 동시대의 이슈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는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라는 단체와 함께 지속적으로 고민하던 것이다. 강주룡의 이야기 역시 단지 역사적 인물로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외침을 지금의 무대 위에서 살아 있는 ‘말’로 되살리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판소리의 구조는 매우 유용했다. 서사와 감정이 동시에 분출되는 이 형식은, 강주룡이라는 인물의 고단한 삶과 불타는 저항을 단순한 ‘재현’이 아닌 ‘재구성’으로 만들 수 있게 해주었다. 판소리는 원래 민중의 언어였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큰 울림을 전하는 형식이었다. 그 원형의 정신이 강주룡의 서사와 만났을 때, 나는 이 형식이 지닌 힘을 다시금 체감할 수 있었다.

치파오 입고 토슈즈 신은 발레리나 김은실, 고국 무대 선다 이해원 기자, 한국경제, 25.09.25
홍콩발레단 솔리스트 김은실(29)이 단원들과 함께 한국 무대를 찾았다. 갈라 공연으로는 여러 차례 국내 무대에 올랐지만, 자신이 소속된 발레단과 전막 작품을 올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팬데믹으로 한차례 무산됐던 공연이라 그의 마음은 한층 들떠 있다. 홍콩발레단은 26~27일 서울 국립극장에서 셰익스피어 고전을 재해석한 무대 '로미오+줄리엣'을 선보인다. (중략)
현재 그가 활동하는 홍콩발레단은 국제적 색채가 뚜렷하다. 다양한 국적의 단원들이 모여 있으며, 아시아적 정서를 담은 창작 발레를 꾸준히 시도한다. 중국 고전 <양산백과 축영대>를 재해석한 '버터플라이 러버'(2024), 홍콩 정서를 입힌 '로미오+줄리엣' (2023) 등이 대표작이고 미국 뉴욕에 소개됐다. 관객과 평론가들은 '색다른 발레'라며 호응했다. 러시아식 바가노바 기법 대신 즉흥적이고 재즈적인 움직임을 가미한 점이 신선하게 여겨진 것이다.
이번 내한에서 김은실이 맡은 역할은 로미오의 옛 연인 ‘페이노이’다. 줄리엣을 만나기 전 로미오와 함께 등장하는 인물로, 원전에도 존재하는 캐릭터다. “정서적 교감을 나누지 못하는 캐릭터라 유혹적이고 관능적인 동작이 많습니다. 쉽지 않은 배역이지만, 더블 캐스팅 동료들의 표현을 보면서 저도 새로운 감정을 탐색하게 됐습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동료들과의 교류가 그에게 큰 자극이 되고 있다.
그는 '로미오+줄리엣'의 매력으로 홍콩적 정서를 담은 장면들을 꼽는다. 마작 게임장을 재현한 무대, 붉은 치파오와 토슈즈를 매치한 무도회 장면 등이 그렇다. “토슈즈에 치파오는 춤추기엔 불편하지만, 무대에서는 드라마틱한 효과를 극대화해요.”

'뮤지컬 배우' 홍성원 "암탉 울면 망해" 비하 발언 사과…"더 신중 기할 것" 장아름 기자, 뉴스1, 25.09.23
뮤지컬 배우 홍성원이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홍성원은 지난 22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뮤지컬 '번 더 위치' 9월 20일 토요일 8시 공연의 프리쇼에서 제가 한 부적절한 표현으로 불편함을 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글을 게재했다.
그는 이어 "관객 여러분과 동료들께 실망을 안겨드린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앞으로 언행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다"라며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
앞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홍성원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이 있다"며 "암탉 역할을 해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후기가 확산됐다. 문제 제기를 한 누리꾼은 "공연을 다 보고 나서도 꼭 필요한 말이었는지 이해가 안 갔다"며 "극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불호였다"고 남겼다.
한편 홍성원은 1999년생으로 만 26세다. 지난 2019년 뮤지컬 '엑스칼리버'로 데뷔한 후 다수 무대에서 활동했다. 지난 7월부터 공연을 시작한 '번 더 위치'는 '마녀사냥'을 소재로 톱스타 '러브'가 마녀 '마마'를 만나 변화하는 여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이자 창작 뮤지컬이다.

그림으로 꿈을 꾼 그녀…천경자 작고 후 최대 특별전 김현경 기자, 헤럴드경제, 25.09.24
“꿈은 그림이라는 예술과 함께 호흡을 해왔고, 꿈이 아닌 현실로서도 늘 내 마음속에 서식을 해왔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해 준 것이 사랑과 모정이었다.”(천경자 ‘해뜨는 여자’)
엄혹한 시대, 여성으로 태어나 운명을 개척한 화가 천경자가 세상을 떠난 후 가장 큰 규모의 전시가 열린다. 서울미술관은 천경자 작가의 작고 10주기를 맞아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를 24일부터 내년 1월 25일까지 개최한다.
천경자의 채색화 80여 점을 집대성한 이번 전시는 2006년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생애 마지막 전시 ‘내 생애 아름다운 82페이지’ 이후 약 20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전시다. 194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그의 주요 작품과 함께 저서, 도서 장정, 작업 과정, 사진과 편지 등 아카이브를 소개해 그의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천경자를 상징하는 여성 초상화들이다. 그는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현실에 밀착한 생동감 넘치는 인물화를 통해 운명에 맞서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했다.
대표작 ‘고(孤)’(1974)는 작가의 트레이드마크인 ‘머리에 꽃을 얹은 여인’의 모습이다. 우수와 고독이 서린 눈망울의 여인은 노란 옷을 입고 만개한 꽃을 머리에 쓰고 있다. 자발적으로 고독을 즐겼던 작가는 슬픈 외로움이 아닌, 자기 내면을 진정으로 마주한 행복한 고독을 담았다.
‘사슴’을 쓴 근대 여성 시인의 초상 ‘노천명’(1973)은 이어령이 창간한 월간 문학지성의 1973년 12월호에 실린 표지를 위해 그린 작품이다. 천경자의 영원한 주제인 꽃과 여인으로 표현된 노천명의 모습에 인품, 감수성, 사상 등이 응결돼 있다.
초기작 ‘춘우(春雨)’(1966)는 고향 고흥을 몽환적 분위기로 표현한 풍경화다. 바다, 마을, 산을 배경으로 파도와 어선, 아낙들과 좌판, 꽃나무를 그려 넣어 유년 시절의 기억을 설화적으로 풀어냈다.

여성 신파연극단 동광단과 기생 심화경 조종안 기자, 오마이뉴스, 25.09.12
기미년(1919) 만세운동 이후 일제는 총독을 문관 출신('사이토 마코토')으로 교체하고 신문과 잡지 발행을 허가하는 등 문화통치를 표방한다. 이후 한글 신문사가 창간되고, 각종 공연과 전국 규모 구기대회가 개최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군산에도 야학을 비롯해 노동단체, 체육단체, 예술단체 등이 출범한다. 그중 여배우로만 이뤄진 동광단(東光團)이 눈길을 끈다.
'동광단'은 여성 신파연극단(新派演劇團)으로 1921년 8월 군산에서 조직된 것으로 전해진다. 단원은 10~20대 여배우들과 김춘교(金春交) 단장, 심화경(沈和卿) 부단장, 김춘자(金春子) 간사 등으로 이뤄져 있었다. 이후 신파극 계에서 명망 높은 김순한(金順漢) 지도하에 전국 순회공연(대전, 해주, 평양, 개성, 인천, 서울 등)을 다녔으며 가는 곳마다 환대받았다.
신파극(新派劇)은 서양식 연극을 기반으로 쓴 희곡으로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수 지식인이 사회교육에 필요한 요소로 여겼다는 것. 그래서인지 동광단은 중앙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군산보다 외지 공연이 많았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찍이 시대 흐름을 체감한 여배우들 공연은 호기심과 흥미를 자아냈으며, 1921년 12월 평양의 가무기좌(歌舞技座)에서의 일주일 (12월 1일~7일) 공연 역시 절찬리에 흥행했다. (중략)
김춘교, 심화경, 김춘자 등은 한국의 우먼파워(woman power)를 몸짓으로 보여준 신여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 인터뷰 때도 '여자도 인생이니 남자와 동등하다'며 남녀평등을 강조하였다. 이어 그들은 '훌륭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하고자 배움을 중지하고 극단에 나서게 됐다'고 하였다. 이는 오랫동안 젖어온 그릇된 인습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미로 이해되었다. (중략)
당시 기생들은 신여성의 상징으로 모순된 식민지 근대화를 받아들이며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해 갔다. 초창기 미술전람회 모델은 기생 출신이 장악했고, 리뷰 댄스 대중화도 기생의 기여가 컸다. 여배우 트로이카를 이뤘던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과 왕수복, 선우일선 등이 기생 출신이었다. 이들에 의해 유성기판(SP)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극장이 흥행을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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