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11월 네 번째 위클리 허시어터는 공연과 관련된 리뷰와 뉴스를 모아 인사드립니다. 이번 호에서는 배해률 작가의 신작 <시차>, 이자벨 위페르의 1인극 <메리 스튜어트>, 이여진 작가의 SF연극 <어느 물리학자의 낮잠>, 국립현대무용단의 <내가 물에서 본 것>까지 모두 네 편의 공연 리뷰를 준비했습니다. 연극과 무용은 뮤지컬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연기간이 짧아 자칫 방심하고 있다 놓치기 쉬운데 지면 리뷰를 통해서라도 공연의 분위기를 느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드라마 <정년이> 방영 전후로 여성국극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기사로는 먼저 여성국극 원로들이 다시 의기투합해 준비하고 있는 특별공연 <한국 최초 여성 오페라, 전설(傳說)이 된 그녀들> 소식과 여성국극제작소에서 선보인 <화인뎐> 초연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 외에 영화로 제작된 뮤지컬 <위키드> 개봉 소식과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천경자 화백의 기념 전시회 ‘찬란한 전설, 천경자’ 소식, 그리고 최초의 여성 작곡가 힐데가르트 폰 빙엔을 조명한 진회숙 음악평론가의 칼럼도 함께 소개합니다.
11월은 다섯 번째 금요일이 있는 달이라 위클리 허시어터는 다음 주는 한 주 쉬고 12월에 더욱 알찬 공연 소식을 가지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이수아 드림
연극 <시차>는 20년의 시차를 둔 두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두 이야기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참사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배경으로 부조리한 죽음과 불완전한 선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극은 20년이란 ‘시차’와 다른 상황과 처지에 놓은 인물들의 ‘시차’가 불규칙한 시간의 흐름과 함께 파편적으로 전개된다.
한 대학병원의 병실에서는 성수대교 붕괴 참사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TV를 보고 있는 윤재와 희영은 병원에서 만난 사이다. 윤재는 피떡이 되도록 맞은 자신을 누군가 업고 병원으로 데려왔다고 말한다. 희영 역시 심하게 다쳐 병원에 왔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윤재는 희영이 무언가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고 느낄 뿐이다. 갑자기 희영은 남편 몰래 윤재에게 자신의 아이를 잠시 부탁한다. (중략)
서로 다른 참사의 기억을 간직한 관객들은 130여 분 동안 1994년에서 2014년의 시간을 오고 간다. 그때 우리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어떤 시간을 살고 있었을까? 참사를 기억하는 모습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저체온증을 이겨가며 바닷속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으로, 어떤 이는 골목에서 끌려 나온 이에게 옷을 입히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모습으로, 어떤 이는 길거리 탄원서에 떨리는 손으로 이름 석 자를 적는 모습으로. 그렇게 각자의 모습으로 우리는 그 수많은 시차 속에서 선의의 손을 맞잡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연극 ‘시차’는 서로에게 내민 선의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한다. 때론 감동적이고 때론 미안하고 때론 창피하다.
흔히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여왕 하면 마리 앙투아네트를 떠올리지만 비슷한 이름의 또 다른 비운의 여왕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 메리 스튜어트다. 태어난 지 6일 만에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추대됐고, 16살에는 프랑스의 왕세자빈이 됐다. 왕관을 쓰고 태어났지만, 후에 귀족들의 반란으로 왕좌에서 쫓겨나 18년간 망명 생활을 한다. 결국 반역을 꾸몄다는 죄를 쓰고 도끼로 참수형 당하는 끔찍한 죽음을 맞는다.
연극 '메리 스튜어트'는 이 비운의 여왕을 주인공으로 하는 1인극이다. 주연은 '칸의 여왕' 이자벨 위페르. 1971년 데뷔해 40여년간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한 프랑스 국민 배우다. 칸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각 여우주연상 2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까지 받아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한 전설적인 배우. 홍상수 감독의 '다른 나라에서', '클레어의 카메라', '여행자의 필요'로 한국 영화에도 출연했다.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한국 관객을 만났다. (중략)
공연은 메리 스튜어트의 횡설수설하는 독백이 90분 내내 이어진다. 수많은 대사를 쏟아내지만, 일관된 이야기가 없다.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하는 것 같다가도, 누군가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는 듯 들린다. 어린 시절 추억, 자신을 따르던 4명의 시녀의 이야기, 자신의 죽음에 대한 감상을 늘어놓지만, 주제가 쉴 새 없이 방향을 튼다. 누구에게 말하는지 확실하지 않고 때로는 같은 말을 빠르게 반복하기도 한다. (중략)
횡설수설하는 메리 스튜어트를 이해하려는 관객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마치 감옥에 갇혀 사형선고를 받아 미쳐버린 여왕의 악몽에 들어가는 듯한 경험이다. 추억과 감정이 파도치고 뒤섞여 갈피를 잃은 여왕의 의식이 흘러가는 대로 관객은 몸을 맡길 수밖에 없다.
작품은 물리학의 개념을 차용하여 단일한 우주가 아닌 여러 우주가 공존하고 교차하는 세계를 그려낸다. 물리학도를 꿈꾸는 학생 차연과 자신이 물리학도였다고 주장하는 기억을 잃은 노파. 마치 장자와 나비 같은 두 인물은 시공간은 다르지만 서로의 옆에 공존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연극 초반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차연과 노파의 서사는 같은 인물의 과거와 미래라는 암시를 풍긴다. 멀티버스라고 하기엔 다소 평면적인, 즉 선형적인 시간에서 재현되는 것 같은 연극의 질서는 점점 붕괴된다. 다른 시공간에서 같은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시공간이 통합된 듯 모든 인물이 나란히 대사를 읊는다. 극을 이끌었던 이야기의 인물, 서사, 관계가 변형되어 전혀 다른 이야기로 펼쳐지다가 모든 것이 한 순간의 꿈이었던 것처럼 갈무리 된다. (중략)
자신에 대한 인지가 실은 매우 우연적으로 결정된다는 가설은 그런 면에서 해방적이다. 지금보다 더 적극적인 상상 속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꿈꿔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직 꿈으로만 머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더없이 허무한 진실이기도 하다. 현재 세계에 대한 인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은 단순히 이론에만 머무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을까.
문득 멀티버스를 현실화하려는 시도는 정의와 공정을 논하는 담론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티버스는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이고, 현실에서 또 다른 ‘나’는 새로운 언어를 찾을 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멀티버스의 가능성은 곧 언어를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안타깝게도 언어 사이엔 위계가 존재한다. 어떤 것은 쉽게 발견되고 체화될 수 있는 반면, 어떤 것은 각고의 노력을 동반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언어 역시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어 가시화되거나 은폐되고, 때론 차별과 처벌까지 동반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페미니즘에, 퀴어가 퀴어 이론에 접근하는 것이 물리학에 접근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처럼. 결국 멀티버스를 실현한다는 건, 언어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를 적극적으로 해체하는 일과 같다. 누구든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언어에 접근 가능해야 하는 것. 그것이 멀티버스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세계가 그 구성원에게 제공해야 할 가능성이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은 난임 시술을 통해 존재가 느낀 몸의 낯섦을 계속하여 표현하고자 한다. 내가 느끼고 감각하는 몸, 내가 차마 다 감각할 수는 없지만 분명 존재하는 몸 안의 몸, 나라는 존재에서 벗어난 나의 몸과 그 몸이 부딪히는 외부의 또 다른 몸들. 그 모든 것은 마치 부레 같은 세포들을 덕지덕지 단, 무대 위 무용수들의 몸으로 변하여 계속 움직이고 섞인다. 부딪히고 질척댄다.
감각할 수 있는 어떤 것과 전부를 감각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것들의 마찰과 섞임은 이성이 만들어낸 피상적인 ‘말’로는 다 표현될 수 없기에, 무대 위의 몸들은 전혀 조화롭지 않은 방법으로, 다시 말해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서로의 존재를 온몸으로 감각한다. (중략)
<내가 물에서 본 것>은 난임 시술의 성공, 실패, 또는 수치화된 모든 피상적인 평가와 언어들 안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몸을 포착한다. 인간성의 범위에서 해석되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의 일들과, 비인간성의 영역에서 말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들. <내가 물에서 본 것>은 이러한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영역을 오가며 진정한 인간의 몸을 탐구하고자 했다.
난임 시술과 여성의 몸, 그리고 어머니와 아내, 결국 여성이라는 정체성. 구태여 언급하지는 않겠으나, 이와 관련한 일반적인 반응을 떠올려 본다. 어떤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은 실제 그를 겪어낸, 또는 겪어내는 과정의 당사자에게 있어선 무릇 어색하고 왜인지 해명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시술에 성공했든, 실패했든. 그 단일하고도 피상적인 도달점에 대한 여부가 아니라, 그 이면의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돌연 발설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공연을 통해 불쾌함을 느꼈다면, 이들은 그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다. 그 불쾌와 낯섦의 과정을 통해 다다르게 된 몸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그들의 몸짓이 ‘고발’이 아닌 ‘발설’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영원히 여성국극 사랑하리라....” 화려한 의상에 번뜩이는 눈빛, 우렁차게 노래하며 그들이 등장했다. ‘여성국극 원로’ 이옥천(78), 이미자(79), 남덕봉(79) 배우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나이에도 시원스런 발성, 묵직한 성음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왕년의 스타들이 오는 12월 다시 한 무대에 선다. 국가유산진흥원이 오는 12월3일 서울 강남구 국가무형유산전수교육관 민속극장풍류에서 여는 여성국극 특별공연 ‘한국 최초 여성 오페라, 전설(傳說)이 된 그녀들’에서다. 원로·신진 배우가 함께 ‘20세기 아이돌’ 여성국극단을 재조명한다. 공연을 앞둔 여성국극 원로들이 지난 14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여성국극은 1950년~1960년대를 풍미한 공연예술이다. 오직 여성만 무대에 선다. 영웅 설화·남녀 간 로맨스 등을 연기, 소리, 춤과 화려한 볼거리로 표현한다. 남성과는 다른 여성 배우들의 섬세하고도 박진감 넘치는 남성 연기, 여성들끼리의 대담한 로맨스 연기는 유교문화를 벗어나 자유연애를 꿈꾸는 여성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임춘앵(1923~1971), 조금앵(1930~2012) 등 스타들은 아이돌 수준의 인기를 누렸다. ‘한국 최초 여성 오페라’라지만, 성(性)의 경계를 흐트러뜨렸다는 점에서 서구보다 더 앞섰다는 평도 있다.
동시에 외면받고 잊힌 여성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국극에 ‘여성들만의 사이비 예술’, ‘동성애 조장’ 딱지를 붙였다. TV·영화의 시대가 열리자 여성국극은 더 변두리로 밀려났다. 결혼·출산·생계난으로 배우들이 떠나가고 전문 국극인 양성 기관도 부족해 맥이 끊길 지경에 이르렀다. 무형유산에도 오르지 못했다. ‘해방 이후 창작돼 전통 유산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등 이유로 2018년에 등재 심사에서 탈락했다. (중략)
이번 공연은 총 2부로 구성됐다. 1부는 홍성덕, 이옥천, 허숙자 등 원로 배우들이 참여하는 토크 콘서트다. 여성국극의 태동과 전성기, 원로 배우들의 활동 시절 에피소드 등을 들려준다. 김혜정 판소리학회 회장이 진행한다. 2부는 여성국극 ‘선화공주’ 무대다. 백제 설화 ‘서동요’를 바탕으로 한 1950년대 인기작 중 하나다. 감자를 캐서 팔던 서동이 신라 선화공주를 만나 결혼해 백제 무왕이 되는 이야기다. 김금미 국립창극단 창악부 악장이 서동을, 그의 딸 박지현 배우가 선화공주를 연기한다. 이미자, 남덕봉 배우는 각각 악역 ‘석품’과 감초 역할 ‘길치’로 분한다.
"여성국극이라는 게 있는지 몰랐는데, 요즘에 드라마 '정년이'를 보면서 관심이 생겼어요. 여성 배우들의 소리, 연기, 춤 모두를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기대되죠."('화인뎐' 관객 유혜지씨·34)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tvN 드라마 '정년이' 영향으로 여성국극이 새로이 조명받고 있다. 주연 배우들이 연기하는 와중에 직접 판소리를 펼치는 장면이 화제가 되며 '원조 K-뮤지컬'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여성국극은 판소리·연극·무용이 한데 어우러진 공연으로, 주연부터 조연까지 모든 역할을 여성 배우가 맡는다. 지난 1948년 남성 중심의 국악계에 반기를 들며, 여성 소리꾼들끼리 모여 '옥중화'를 선보인 게 그 시초였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여성국극의 르네상스였으나, 1960년대 이후 영화 산업의 발전 등으로 점차 쇠퇴해갔다. 전성기 당시 극장은 '니마이'(남역 주연배우를 뜻하는 일본어)와 '가다키'(남역 악역으로 조연을 뜻하는 일본어)를 맡은 배우를 보기 위해 모여든 여성 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한다. 이들의 인기는 지금의 아이돌 못지 않았다.
이런 여성국극 재조명에 힘입어 덩달아 경기도 내에서 활동 중인 극단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5일 안산문화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에서 펼쳐진 여성국극제작소의 '화인뎐' 초연 현장에서 그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중략)
'화인뎐'을 무대에 올린 여성국극제작소는 안산문화재단 상주단체다. 안산이라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극단으로, 지난 2020년부터 일찌감치 지역 사회에 자리를 잡고서 여성국극의 계보를 이어왔다.
여성국극제작소의 박수빈(39) 대표는 안산에서 자란, 여성국극 3세대 계승자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라져 가던 여성국극을 활성화하고자 지난 4월 직접 배우를 공개 모집하기도 했다. 이렇게 모인 1기 단원들과 의기투합해 '화인뎐'을 선보인 것이다. 무대 밖에서는 안산 지역 청년들과 협업해 홍보 포스터 등을 기획하며, 안산이라는 지역색이 담긴 여성국극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박수빈 여성국극제작소 대표는 "여성국극제작소를 안산에 설립하고서 저희가 5년여 동안 '여성국극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고 부단히 알려왔다"며 "이제 여성국극에 관심이 많아지는 만큼 더 좋은 공연, 또 보고 싶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끈 뮤지컬 원작 <위키드>가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은 2020년 기준 브로드웨이 가장 흥행한 뮤지컬 2위를 기록한 인기 소설이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2012년 초연 이후 꾸준히 사랑받은 작품이다. 자신의 진정한 힘을 발견하지 못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본성을 아직 발견하지 못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가 각자의 결핍을 채워가는 이야기다.
작품은 <오즈의 마법사>와 연결된 서사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프리퀄이자 스핀오프로 생각하면 된다. <오즈의 마법사>는 토네이도에 실려 오즈로 오게 된 소녀 도로시와 허수아비, 사자, 양철 인간, 강아지 토토가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알고 있던 선악 구도를 뒤집으며 판타지의 이면을 들추어낸다.
<오즈의 마법사>가 꿈과 환상의 디즈니 같은 동화라면 <위키드>는 종종 냉소적인 어른들의 잔혹 동화로 비유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다소 어둡고 무겁게 흘러간다. 오즈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위대한 마법사의 진실, 선민의식에 빠진 글린다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 남들과 다른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엘파바의 궐기 등.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현실 세계의 축소판을 볼 수 있다. (중략)
뮤지컬 넘버를 몰라도 줄거리를 몰라도 상관없다. 극장에서 즐기는 뮤지컬 공연 VIP 좌석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어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시기하다 룸메이트로서 묘한 우정을 나누는 과정이 파트1에서 펼쳐진다. 올해 파트1을 개봉하고 2025년 파트2가 선보일 예정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파트 2에서 풍성하게 다룬다.
가창으로 실력이 검증된 뮤지컬 스타 '신시아 에리보'와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가 각각 엘파바와 글린다를 맡아 최고의 재능을 발휘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브리저튼>으로 단숨에 스타로 떠오른 '조나단 베일리'의 춤과 노래뿐만 아니라, 속내를 알 수 없는 쉬즈 대학교 총장 역에 '양자경', 오즈의 최고 권력자인 마법사 '제프 골드브럼'까지 환상의 캐스트를 뽐낸다.
한평생 방랑한 한 화가의 얘기다. 연이은 전쟁으로 일본 도쿄와 부산을 옮겨 다녔고, 지독한 생활고로 이른 나이에 여동생을 잃었다. 두 차례 결혼과 이혼도 겪었다. 자기를 돌아보기 위해 대학 교수직을 내려놓곤 유럽과 아프리카, 중남미로 떠났다. 말년에 눈을 감은 곳도 고향이 아니라 미국 땅이었다.
'100년 방랑' 천경자, 마침내 고향에 돌아오다천경자 화백(1924~2015·사진)이 100년에 걸친 여행을 마치고 고향인 전남 고흥에 돌아왔다. 작가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찬란한 전설, 천경자’가 그의 생전 생일이던 11일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삶의 고달픔을 꽃과 여성, 모성으로 승화한 그의 회화 58점을 중심으로 유품 등 총 100여 점을 전시한 회고전이다.
이번 전시는 천 화백의 차녀인 수미타 김(김정희·70)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교수가 직접 기획했다.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을 선정하고 관련된 사진과 친필 편지 등으로 설명을 보탰다. 김 교수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딸이 바치는 꽃다발이자, 화단의 거물로 거듭나 돌아온 작가를 고향이 맞이하는 잔치”라고 말했다.
12세기 독일에 힐데가르트 폰 빙엔(사진)이라는 수녀가 있었다. 힐데가르트는 최초의 여성 식물학자, 최초의 여류 작가, 최초의 인권주의자, 최초의 여성 작곡가 등 여러 분야에서 ‘최초’를 기록한 위대한 여성으로 꼽힌다. 그녀는 뛰어난 예지력과 지칠줄 모르는 지적 호기심으로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수녀이자 뛰어난 예술가, 작가, 카운셀러, 언어학자, 자연학자, 과학자, 철학자, 의사, 약초학자, 시인, 인권운동가, 예언자, 작곡가였다. (중략)
명했던 그녀는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악보를 읽고 쓸 줄 알았다. 힐데가르트가 전례시와 음악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나이 42살 때부터였다. 성무일도를 위해 작곡한 그녀의 음악은 주로 성자들의 일생을 그린 것이었는데, 나중에 이것을 모아 ‘하늘의 계시에 의한 교향곡’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 중에 ‘성덕의 열’이라는 것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역할을 나누어 부르는 음악극인데, 가사와 곡이 모두 남아 있는 유일한 중세 음악으로 꼽힌다. 중세에도 물론 다양한 음악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중세라는 시대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의미에서 기록이 남아있는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성덕의 열’은 중세라는 암흑시대를 비추는 한 줄기 찬란한 빛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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