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사는게 꿈이야

만화, 맹꽁이 서당과 훈장님

2022.01.15 | 조회 3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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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언젠가 한 번 언급을 했지만, 편지를 쓰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에게도 솔직한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한 글을 쓴다는 것은 우리가 대단한 비밀을 나눈다기보다는 그저 저의 꾸밈없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리고 종종 당신의 답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좀 더 현명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라 편지를 통해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면 좋겠습니다만, 제가 겪은 일들과 생각을 두서없이 적다 보니 글의 모양새나 완성도가 늘 부족합니다. 요리에도 영 소질이 없는지라, 얼마나 신경을 쓰든 간에 밥솥이 해주는 밥조차도 늘 대충 지은 것처럼 돼버리곤 합니다. 물 조절을 잘못해서 너무 고들고들해지면 씹는 맛이 덜해지고, 아니면 자꾸만 주걱에 눌어붙어 솥에서 밥그릇으로 옮겨담을때마다 남은 밥풀을 떼려고 한참이나 밥그릇에 주걱을 두들겨야 합니다. 그래도, 남의 손을 빌리지 않는 서투른 밥에도 온기가 있습니다. 저에겐 밥알이 따뜻하면 그걸로 되었습니다. 제가 전하는 편지도 그저 당신의 하루 끝에 읽을 짤막한 솔직한 이야깃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저는 오늘 일주일간 틈틈이 적어두었던 편지의 초고를 모두 지웠습니다. 원래는 지난주에 번개장터에서 중고 거래를 하다가 사기당할 뻔한 이야기도 가볍게 풀고, 요즘 꾸준히 하는 운동 이야기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고 태풍이 지나 간다 하니, 이불 뒤집어쓰고 노래나 들으며 들을만한 다른 이야기가 하고 싶어져서요. 

조금은 무거울지도 모르지는 오늘도 편지도 두서없이 적어보겠습니다. 늘 그랬듯이, 제가 편지를 쓰면서 들었던 음악을 오늘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같이 들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습니다. 

 

Keren Ann - Not Going Anywhere

 

이야기꾼, 공맹서당의 맹꽁이 훈장님.

저는 만화 보는 걸 참 좋아합니다. <웹툰>이라는 말이 유명해지기도 전부터 웹툰을 접해왔고, 어릴 땐 동네 만화방에서 하루 종일 지낼 정도로 만화를 참 좋아했습니다. 한 번은 그 당시 굉장히 유행하던 <그리스 로마 신화> 신간을 먼저 사서 읽고 용돈으로 쓰기 위해 책방 주인에게 판 적도 있습니다. 그 돈은 결국 만화 대여비로 쓰이게 되었지만요. 정말로 좋아하는 책들은 부모님을 졸라서 두고두고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모든 책을 사주신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유익하거나 교육용에 가까운 책들은 기꺼이 사주셨습니다. 덕분에 집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포함해서 위인전 시리즈나 살아남기 시리즈 같은 책들이 책장에 빽뺵히 꽂혀 있었습니다. 

 

<맹꽁이 서당> 도 그중 하나입니다. 공맹서당이라고 정식 명칭이 엄연하게 있는 서당이지만, 말썽꾸러기 학동들은 맹꽁이 서당이라고 부르며 항상 사고를 칩니다. 훈장님은 아이들에게 혼쭐을 내준 후에, 잠잠해진 아이들이 옛날 이바구를 해달라고 노래를 부르면 못 이기는 척 조선왕조 시절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주는 역사 학습 만화입니다. 역사를 다룬 교육용 만화가 대부분 그렇듯, 고증이나 사관이 엄밀하게 검증되진 않았지만 다시 떠올려봐도 책장을 넘기는 재미는 굉장히 쏠쏠했습니다. 

제게 가장 큰 재미를 느끼게 해 준 요소는, 이야기보따리가 끊이질 않는 훈장님 캐릭터였습니다. 학동들에겐 항상 엄하지만 그들을 한 차례 혼내고 곰방대를 뻐끔뻐끔 피우며 들려줄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서 미워할 수 없습니다. 한 때 소설가가 꿈이었던 저는 만화나 영화, 소설 속의 만담꾼들을 아주 좋아했고 그들에게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날 찾았습니다. 그들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을 다양하게,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맹꽁이 서당의 훈장님에게도 많은 손님이 찾아옵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다른 동네 이야기를 전하는 보따리상이 붓을 팔러 오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면 빠질 수 없는 스님이 시주를 오기도 합니다. 학동들의 집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소동 또한 놓칠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러 온 누군가는 대신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나씩 두고 갑니다. 거기에 훈장님의 감칠맛 나는 조미료가 더해지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수밖에요. 누군가에겐 귀찮고 번거로운 숙제처럼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저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만담꾼 훈장님처럼 누군가에게 풀어놓을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것도 물론 좋지만,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제 생각 사이에 차이점이 만들어내는 간지러운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마 처음 그러한 간지러움을 느낀 것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집에 놀러 갔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매일같이 도어록이 없는 친구의 집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친구의 집을 찾아가긴 쉽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걸어서 십오 분 정도 거리에 있는 향교를 지나 높은 경사의 도로를 타고 올라가면 낮은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는데, 입구에 가기 전 도로 옆에 난 시멘트로 대충 포장되어 있는 작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찾을 수 있었습니다. 도어록이 없는 대신에 도둑이 드는 것을 막기 위해 벽 위의 시멘트를 따라 깨진 병이 잔뜩 꽂혀 있었고 문 바로 옆에 있는 담 근처에 조심히 손을 뻗으면 숨겨진 열쇠가 있었는데, 그 열쇠를 통해 집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페인트가 벗겨진 검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보도블록 같은 것들이 대충 어질러진 마당이 있었는데 저는 그곳을 참 좋아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뛰어놀면 항상 혼났지만 친구의 집 마당에서는 아무리 뛰어놀아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집에 들어서면 항상 친절하게 맞아주시는 아저씨가 자주 집에 계셨고, 부엌에는 항상 라면이 가득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맞벌이 가구였기 때문에 부모님이 자주 집을 비우셨고, 그 맛있는 라면은 자주 못 먹게 했기 때문에 저는 그 점 또한 매우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친구는 어느 날 저에게 그러더군요.

 

"난 커서 너처럼 아파트에 사는 게 내 꿈이야"

 

저는 그 친구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했습니다.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친구의 아버지는 일거리가 없어 집에 오래 머무르셨고 어머니는 일이 많으셔서 항상 집에 없으셨으며 값싼 라면이 끼니를 때우기 좋았기 때문에 부엌에 가득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저는 라면을 먹을 수 없었지만 그 집에서는 라면을 먹어야만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친구의 발언이 가난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고 저와는 정말 다른 생각에 알 수 없는 간지러움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나고 나서는 저희 집 또한 가난이라는 결핍이 주는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지만, 여전히 그 친구와의 만남에서 느꼈던 간지러운 마음은 여전히 제게 남아있습니다. 이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긁어보고자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글도 쓰게 됩니다. 최근에는 <힐빌리의 노래>라는 빈민가에서 무너지는 가족과 사회 속에서 성장한 사람의 에세이를 읽고 있습니다. 저와는 다른 삶은 산,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저에게 알 수 없는 삶의 영감을 주곤 합니다. 

 

당신이 언젠가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시다면, 저는 언제고 환영입니다.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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