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청주

청주해장국은 어쩌다 유명해졌나

2022.01.22 | 조회 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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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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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은 청주다. 고향이 어디세요? 라는 질문에 청주라고 답하면 열에 여덟은 이렇게 말한다.

충주요?

아뇨. 청주요. 둘 다 충청북도에 있는 건데... 충주는 사과가 유명하고..

 

인구가 100만에 가까운 것 치곤 인지도가 낮다. 알만한 사람만 알고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도시, 다른 말로는 교육의 도시, 최초의 금속활자 직지를 보관했던 도시, 대전이나 광주광역시와 지역 내 총생산이 같은 도시, 그리고 또 뭐더라.. 내 친구네 할머니가 운영하는 쫄쫄 호떡이 유명한 도시다.

그렇다. 인지도가 낮은 가장 큰 이유는 볼거리가 없다. 아무도 청주 여행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지역 내 사람들조차 주말이면 교외로 나가지 않고는 갈 곳이 없다.

그래도, 청주 이야기가 나오면 꼭 한 번씩 자랑하는 것이 있다. 바로 뜨끈한 선지해장국. 전주에 비빔밥, 영광에 굴비, 군산에 짬뽕이 있다면 청주엔 해장국이 있다. 다른 지역을 방문하다 보면 종종 ‘청주 해장국’이라는 프랜차이즈 가게가 보인다. 해장국이야 이제 워낙 국민 음식이 되었으니 향토성은 아주 옅어졌고 물론 이곳이 해장국의 원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청주는 유독 해장국집이 많다. 과장 좀 보태서 서너 걸음마다 하나씩 있다.

그 중에도 내가 가장 좋아하고, 단연 돋보이는 것은 올해로 79년 차를 맞은 ‘남주동 해장국’의 선지해장국이다. 그리고 이곳이 명성을 얻은 것엔 의외의 사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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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65년으로 거슬러 간다. 광복 직후부터 시작된 통금령 때문에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정부터 새벽까지는 집 밖을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젊음에는 낮과 밤이 없다. 자정 사이렌이 울릴 때쯤이면 아쉬운 한 잔을 두고 집에 돌아가기 싫은 젊은이들이 북새통을 이뤘는데, 그 해 마침 충청북도에서만 통금령이 풀렸다. (제주도와 울릉도도 예외긴 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충북에는 바다가 없어서 간첩이 밤에 도망갈 곳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전국의 술꾼들은 밤이 되면 자정을 넘기기 전에 ‘2차’를 위해 죄다 충북으로 모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취기를 끊지 않고 동틀 때까지 술을 마시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곳엔 3대 우시장 중 하나인 청주 우시장이 있었다. 우시장에서 나오는 소뼈, 양, 선지는 해장국에 소주를 안부를래야 안부를 수 없는 재료였고, 농사꾼, 소 장수, 청년과 중장년이 우시장의 해장국집에 모든 것이다. 지금은 그곳의 해장국이 하나둘 사라지고, 오래된 철물점만 남았지만 그래도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이 남주동의 ‘남주동 해장국’이다. 나도 이곳의 해장국을 먹으며 자랐다.

이 가게를 드나든 지 어연 25년이 되었는데, 세월이 흘러도 모든 것이 늘 한결같다. 70년 된 테이블 두 개, 국물을 펄펄 끓는 솥단지 두 개. 그리고 아무리 변칙 해장국이 등장해도 이곳의 메뉴는 변하지 않는다. 늘 소고기 부산물만 고집하고, 소고기 해장국과 선지해장국 두 가지 메뉴만 고집한다. 물론 맛도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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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프랜차이즈를 몇 개 냈다가 품질관리를 못 해서 망하기도 했고, 등뼈 해장국을 냈다가 손님들에게 잔소리를 듣고는 다시 쏙 뺀 적도 있다. 뭔가 바꿔보려고 하지만 잘은 안 되고, 그런대로 유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서 그대로 살아가는 것. 청주 토박이 부모님과 남주동 해장국은 그런 면에서 똑 닮았다.

나와 누이가 태어나고 나서 두 분은 청주에서의 삶을 자리 잡기 위해서 바빴기 때문에 이곳 밖의 삶을 누리지 못했고, 지금은 청주 밖의 삶이 무서워서 나가지 못한다. 비행기를 타는 것에도, 새로운 일과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는 것에도, 심지어는 서울에 오거나 건강검진을 하는 것도 이제는 큰 모험이 된다. 말끝마다 붙는 “나이가 들어서.. “ , “난 이미 늦어서.. “ 주름이 덮어간 것은 이마가 아니라 자신감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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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과감함을 잃어버린 부모님을 시대의 패배자처럼 여겼던 적도 있었다. 그들은 왜 지나간 시간에 연연할까. 제2, 제3의 인생을 향해 과감히 발을 내딛지 못할까. 젊음은 20대에만 있는 것은 아닌데.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도전과 혁신을 과대평가하고 보편과 일상, 고유성을 과소평가하는 나의 오만함에서 유래했다. 1년 365일, 언제 찾아가도 남주동 해장국의 두 테이블에는 항상 손님이 있다. 변하지 않는, 맛있고 따뜻한 국밥이 있고, 빨간 앞치마를 두르고 4대째 손님을 맞이해주는 직원들과 맛있다를 연발하며 뿜어져 나오는 입김이 가게를 채운다. 부모님이 찾아가는 단골 고깃집은 20년째 항상 된장찌개를 서비스로 내온다. 친척도, 사교 모임의 친구도 아닌데 서로 명절 선물을 주고받는다. 집 앞의 카페부터, 5분 거리의 친척, 거래처, 아는 병원 의사까지. 부모님이 머리가 희끗희끗해질 때까지 이 지역에서 쌓아온 온정이 있다.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는 이라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절대 아니다.

혁신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뒤처진다고 말하는 세상에, 변화나 속도는 너무 과대평가된 것일지도 모른다. 변화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진국’을 유지하는 것임을 나는 왜 몰랐을까.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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