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망방지위원회장의 당부말씀

잠꾸러기 네 살 고양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졸고 있다.

2022.01.15 | 조회 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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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하루에 열네시간씩 자는 고양이가 부러운 까닭은 무엇인가. 하루, 스물 네시간이 고양이에게 충분할진 몰라도 인간에겐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이 제대로 진화했다면, 하루에 필요한 일은 하루 안에 소화할 능력이 주어져야 한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수시로 밤을 새우는 도시의 인간들이 밤하늘의 별보다 많다. 해가 지면 지구는 태양을 등지건만 야근과 전기가 있는 한 도시는 낮처럼 밝다. '내 몸이 여러 개라면' 신드롬은 이제 지겹기까지 하다. 뭔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할머니, 또다시 그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조상들은 여유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사냥과 채집을 하고, 부락 생활을 하고, 잠을 실컷 자고. 그래도 시간이 남았다. 물론 식량을 보존하고 보금자리를 지키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안전한 보금자리와 배부르게 먹을 식량이 있는데도 끊임없이 바쁜 동물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우리의 육신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구에 어울리지 않게 된 것이다. 그 증거로 목은 거북처럼 변했고 다시 네 발로 걸으려는 것인지 허리가 점점 굽고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미래 세대에 대한 배려없이 플라스틱을 마구 써대는 것처럼 머나먼 과거부터 조상들이 시간을 남용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간, 우리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에도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다행히 인간은 도구를 다룰 줄 알지 않는가? 우리는 하루를 더 길게 쓰는 도구를 발명했다. 인류 최대의 발명품, 쓴 맛을 시간으로 치환하는 마법의 음료, 커피 말이다.

한국인은 하루 평균 거의 2잔의 커피를 마신다. 미니 왕뚜껑 컵라면에 물 대신 넣으면 딱 좋을 양이다. 라면처럼 카페인도 후루룩 - 하고 빨아들이고 있다. 홀 - 짝이 아니라. 증가하는 카페인 소비량은 너무 부지런한 지구의 자전 속도에 대한 지구인들의 시위처럼 보일 지경이다. 

서울경제(2020-01), 거북이<br>
서울경제(2020-01), 거북이

이 상태가 지속한다면 곧 인간의 혈관에 커피만 흐르게 될지도 모르는 암울한 지구의 미래를 바꾸기 위한 슈퍼히어로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그가 하루를 엿가락처럼 쭉 늘려서, 하루를 48시간으로 늘려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하루에 16시간이 아닌 32시간을 일할 수 있게 되고 더 강력한 슈퍼 커피가 발명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점점 할 일이 많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져서 또다시 하루가 모자라 질 것이다. 그러면 또 슈퍼히어로는 하루를 72시간으로 늘리고, 슈퍼-메가 커피가 나오고.. 이게 맞는 걸까?

 

도시 표준 인간으로 의무를 모두 준수하기란 도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 활동. 출근 - 업무 -퇴근의 도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업무는 보통 9시부터 6시 사이에 이루어진다. 무려 하루의 37.5%의 시간을 차지한다. 당연히 여기엔 출퇴근 시간은 포함되지 않는다. 남은 하루는 집안일, 연락, 수다, 회식 등 사회적 동물의 의무로 가득 찬다. 또한 이제는 취미도 자기계발의 영역이므로 경쟁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게을리하면 안된다. 아 참, 지구인이라면 인류 복지와 환경, 지구 체제에 관한 공부는 필수이다. 무한 이기주의에 빠지고 싶지 않다면 늘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을 나눌 준비를 해야 한다. 열거한 목록 모두, 하나라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들이다. 솔직히, 이 모두를 동시에 잘 해낼 수는 없다. 

요컨대 핵심은 삶을 너무 복잡하게 설계하고 있는 나머지,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 바로 움직이는 것 말이다. 과거에 사람들은 뇌가 생각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요즘 신경과학자들이 내놓는 의견은 조금 다르다. 뇌야말로 운동하는 생물의 특권이다. 우렁쉥이는 바위에 붙어 성체가 되면 움직일 필요가 없으니 스스로 뇌를 삼켜버린다. 움직임이 적어지도록 진화된 동물은 뇌도 점점 작아지거나 기능이 약해진다. 꿈을 꾸기 위해서 존재하기엔 너무 많은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도시 표준 인간으로서 성공하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지끈하다. 그러나 움직이기 위해 산다고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얼마나 명료한가. 침대에 누워 직장 상사와 가상의 언쟁을 벌이는 것은 우리가 섭취한 에너지를 완전히 낭비하는 일이다. 고차원적 원인 생각을 하느라 머리를 쥐어뜯는 것보다 생각하지 않고 죽어라 달리기를 하고 훌륭한(맛있는)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다. 작살을 들고 매머드를 사냥하던 수렵 생활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불필요한 생각은 줄이고, 너무 오래 침대 위에 있지만 말고, 그리고 필요한 만큼 움직이자는 것이다. 우리는 문명에 적응하는 것만큼이나 주어진 본능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게다가 세상일이란 마음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지만 적어도 몸은 다소 뻣뻣하지만 원하는 대로 척척 움직이지 않는가.

 

우리는 왜 움직임에 소홀해졌을까. 돌처럼 가만히 있다가는 간밤에 침대가 내 뇌를 삼켜버릴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쓸데없는 생각에 낭비하지만, 않는다면, 사랑과 우정을 나누며 희로애락을 감지하며 삶을 충만하게 해주는 바로 소중한 뇌다. 어느 날 키스가 무감각해지거나, 가슴이 두근대는 미래가 그려지지 않는다면, 그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인들에게는 뇌가 사망하지 않도록 운동하라고 잔소리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동안은 '수상한 초코파이(본인이 그렇게 부른다)'가 바쁘다는 핑계로 다니던 체육관을 그만두려고 하는 것을 내가 출석이라도 하라며  방해하자, 나더러 뇌 사망 방지위원회냐며 놀리기도 했다.

 

위원회니, 뭐니 하는 건 나랑 인연이 없지만, 감히 뇌사망방지위원회 회장으로서 당부드린다. 당신의 지구인으로서 역할을 다하고자 한다면, 오 분이라도 좋으니 단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볍게 뛰라고. 열을 내고 뛰고 움직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충분히 잠을 자기 위해 살아가라고. 멈추어선 그것보다 죽음에 가까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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