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하지 않은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예술가든, 전략가든, 모두 필요한 인재입니다.

2022.01.15 | 조회 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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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김 레터

이불 밖은 위험한 시대, IT회사 디자이너가 쓰는 에세이

2주만에 사라진 가을

가을옷 쇼핑을 게을리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을이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덥다고 계속 반팔을 입고 헬랑펠랑 손부채질하며 다녔는데, 다음 주 터 낮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진다고 하네요. 이렇게 잠깐 왔다가는 가을, 계절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손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참으로 고민입니다.

가을! 아주 잠깐만 왔다 간다 한들, 저는 가을이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무더운 폭염과 오들오들한 겨울 사이에 무언가 기분 좋은 것이 끼어있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니까요. 따져보면 가을이 가진 것은 다른 계절도 가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바람도, 햇빛도, 비도, 구름도. 그런데도 가을이 좋은 점은 그 모든 것들이 '적당하게' 어우러진다는 것입니다. 선선한 바람. 따스한 햇볕. 너무 촐싹거리지 않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 구름과 하늘이 싸우지 않고 조화롭게 섞여 있는 모양들.

유능한 직장인, 유능하지 않은 직장인

회사에 다녀보니, 모두가 유능해지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브런치나 커리어리, 전현직 전문직들의 강연, 유튜브에는 '유능해지는 법'이 미신처럼 떠돌아다닙니다. '미신처럼'이라고 말을 붙인 이유는 믿는 사람은 많지만, 실효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유능함의 모습은 대략 이러합니다. '혁신가처럼 행동하기, 마치 스티브 잡스처럼.', '조리 있게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빈틈없는 (완성도 높은) 작업물 만들기.'

세상에, 정말 유능함이란 그런 걸까요. 사실은 스티브 잡스처럼 과감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때로는 소심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를 두려워할 때도 많죠. 그러나 그만의 영감으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말로 정리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남들에게 말했다가는 자잘한 빈틈에서 공격받을까 봐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월트 디즈니는 리더십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각각이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의 프로젝트에 대해, 몽상가(아이디어를 내는 사람), 현실주의자(어떻게든 해내는 사람), 비평가(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사람)와 같은 여러 리더를 두는 방식을 썼습니다. 각각의 고유한 특성을 인정하고, 그에 맞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디즈니는 리더십을 위한 다양한 모델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팀에서 맡은 임무 중 하나는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문제 해결입니다. 문제 중 하나는 팀이 너무 전략가 위주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이들만 발언권을 갖고, 크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즉, 감이 좋은 예술가들이 활동할 무대가 부족하다는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저희 팀은 <회의>라고 이름 붙은 모든 것들은 분석가를 위한 무대로 정의하고, 예술가들을 위한 나머지 공간을 발굴하는 노력을 시작했습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필요했죠. 상시로 활용할 수 있는 화이트보드를 주문했고, 아이디어를 베이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워크숍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금요일 오후는 회의 대신에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Play day>를 만들려고 합니다.

예술가든, 전략가든, 모두 필요한 인재입니다. 너무 덥기만 하거나, 너무 춥기만 한 것도 별로인 것처럼 무엇이든 적당한 것이 좋습니다. 서로를 인정할 수 있는 적당함.

대학원생에서 직장인으로

무기한 휴학 버튼을 누르고 직장에 온 것이 벌써 4개월이 넘었습니다. 회사 생활은 만족스럽습니다. 똑똑한(전략가들이 그렇습니다.) 동료들, 반짝이는(예술가 면모를 가진) 동료들을 보고 있자면, 뭔가 대단한 것이 꿈틀거리는 기분이 듭니다. 멋진 동료들과 일하는 것은 정말 행운입니다. 저에게는, 상급자나 고객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그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더욱 기분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서울의 집값은 정말 어마무시하더군요. 내일이 월세날인데.. 눈물이 앞을 가리는군요. 내 집이 없어 언제 떠나야 할지 모르는 월세유목민의 인생은 참으로 '한'이 가득합니다. 구독자 여러분도 모두 내 집 마련하기를 기원하면서 편지를 마칩니다! 모두 돈쭐나시길 ~

 

답장은 jyee5001@gmail.com 으로 주세요. 답장에는 항상 또 답신의 편지를 써드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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