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호] 아카데미의 초상

💌 뉴스레터 49호

마흔 아홉 번째 인디&임팩트는 모두에게 큰 상실감을 안긴 원주 아카데미극장 철거 이후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

🎬 시민들의 힘으로 다시 문을 연 아카데미극장이 폭력적으로 철거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남은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아카데미와 친구들' 활동에 함께 했던 '미자 리'님에게 들어봅니다.

📢 철거를 막기 위해 나섰던 26명에 대한 고소 고발 대응을 위한 온라인 탄원과 모금도 진행 중이니 함께 힘을 모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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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슈] 아카데미의 초상

원주에 60년 된 단관극장이 있었다. 1963년에 문을 연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에 남은 유일한 단관극장이자, 화재 등으로 소실된 곳 없이 원래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단관극장이었다. 오래도록 닫혀 있는 극장을 폐건물이 아닌 문화유산으로 바라본 이들 덕분에 2020년, 극장은 14년 만에 다시 문을 열게 되었다. 이다음부턴 행복한 이야기다. 극장을 경험한 시민들은 극장이 전처럼 곁에 있어주길 바랐다. 염원은 아카데미극장을 살리기 위한 모금 운동으로 이어졌다. 모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시민들의 반응에 원주시는 극장을 사들였으며, 문화체육관광부의 '유휴공간 문화재생 활성화 사업'으로 39억 원의 예산까지 안게 되었다.

그리고 2022년, 원주시장이 바뀌었다. 이다음부턴 행복하지 않은 이야기다.

2023년은 아카데미극장의 마지막 해였다. 연초에 철거 이야기가 들리더니, 10월의 어느 날 철거됐다. 시에서 극장을 철거할 거라는 말이 나왔을 때, 아카데미를 지키려는 이들은 ‘아카데미의 친구들(앞으로 이 글에선 ‘친구들’로 칭하고자 한다.)’이 되어 반응했다. 시 의회에 가고, 국회에 가고, 시청엔 밥 먹듯이 갔다. 사람들이 몰리는 곳을 곧잘 찾아다니던 친구들은 이윽고 극장 앞에 노란 텐트를 쳤다. 친구들이 건축, 법, 문화재,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동안 철거를 처음 입에 올린 이는 뭘 했을까. 그는 ‘건축물 안전 등급 D등급’, ‘혈세 낭비’, ‘(극장을) 툭 치면 무너진다’ 등 몇 안 되는 말들을 방패 삼아 휘두를 뿐이었다.

언젠가 여름날, 친구들은 극장 물건을 빼기 위해 시청에서 몰려온 공무원 남성들(왜 남성들이어야 했는지는 원주시에 물어야 할 것이다)을 막아냈다. 극장 물건들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곧 철거를 의미했다. 친구들은 그다음 몰려온 이들은 막지 못했다. 다부진 신체의 용역 업체 직원들이었다. 그날 극장엔 비계가 세워지고, 가림막이 쳐졌다. 극장 주변은 흔한 철거 현장이 되어버렸다.

아카데미극장은 이 도시에서 몇 안 되는, 시간을 품고 있는 건축물이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안을 곳. 어린이들이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의 극장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극장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곳. “예전엔 여기가 극장이었어”가 아니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극장인 곳. 누구든 접근하기 쉽도록 보수 공사를 한다면 공공건물로 이보다 제격인 곳이 있을까. 60년 된 공간의 포용에 기대어, 나는 아카데미극장이 누구도 내치지 않는, 누구나 당당하게 들어설 수 있는 곳이 되어주기를 기대했다. 이런 곳이 내 고장의 랜드마크이길 바랐다.

이제 극장의 철거는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것으로 읽혔다. 원주시장이 시정 토론 요구와 자신에게 불리한 법을 가뿐히 패스해버렸으니까. 친구들은 더 많은 친구들을 불러 모았고, 함께 도로 위를 걸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텐트를 지키고, 시청 앞에서 노숙 농성을 하며 몸과 마음을 극장에 쏟았다. 단식을 이어가던 위태로운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들이 지나 10월 30일, 아카데미극장이 정말로 철거됐다. 극장 옥상에서 농성 중인 친구들이 경찰과 공사장 인부들에 의해 끌려 내려오자, 기다렸다는 듯 중장비는 극장을 향해 돌진했다. 손쉽게 극장을 처리한 원주시는 타깃을 바꿔 업무방해, 건조물침입 명목으로 26명의 친구들을 고발했다. 원주시가 아카데미의 친구들에게 보인 최초의, 성의 있는 반응이었다.

아카데미극장은 사라지고, '아카데미의 친구들'은 남아 있다. 극장만 바라보고 한뜻으로 활동을 이어가던 친구들은 조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어떤 친구는 주저하고, 어떤 친구는 다시 힘을 낸다. 어떤 친구는 상담을 받고, 어떤 친구는 이 도시를 떠날 생각을 한다. 어떤 친구는 온갖 뉴스를 멀리하고, 어떤 친구는 어디에서나 비슷한 모습으로 일어나는 못난 일들을 예의 주시한다. 어떤 친구는……. 친구들은 이제야 조금 다른 모습이 되었다.

서로 구별된 개인으로서, 친구들은 올해엔 다른 이야기를 하려 한다. 눈에 보이는 극장이 아닌 마음속에 자리한 저마다의 극장 이야기를. 친구들의 목소리가 담긴 기록집, 그림책, 다큐멘터리 등은 또 다른 아카데미극장의 초상이자, 올해의 저항이 될 것이다.

잠깐 시선을 내게로 돌려, 원주시장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 잠시 맡긴 것 뿐인데 원주시를 통째로 들고 가려는 그에게. 외침이 있는 곳을 떠돌 것. 지역의 경계를 지우고 원주로 달려와 준 친구들을 생각하며. 사라진 극장이 내게 남긴 숙제다.

지금 아카데미극장을 떠올리면 친구들이 재빨리 머릿속을 채운다. ‘이제 어떡하지’ 싶을 때마다 친구들의 눈빛을 살폈다. 나와 똑같이 답을 찾는 눈빛들이었지만, 그것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극장을 위해 살았던 지난 시간엔 그렇지 못했으니, 다가올 시간엔 친구들이 꼭 건강했으면 좋겠다. 초상이 내릴 때쯤 우리 곁을 떠난 아카데미극장도 그걸 바라지 않을까. 🎞️

🎈글쓴이. 미자 리

- 원주에서 내 맘대로 책을 만드는 메이커

🌀원주시의 위법적인 철거를 막기 위해 나섰던 아카데미의 친구들 26명이 원주시와 철거 업체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한 상태입니다. 지역의 마지막 단관극장을 지키고자 했던 친구들에게 힘을 보태주세요. 보내주신 힘은 또 다른 힘으로 발산될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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