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月 7日] 강아지 귀처럼 접힌 낡은 책장에 숨었던 이야기들🐶

재영 책 수선가, 그리고 에세이집『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2026.10.07 | 조회 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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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레터>는 책과 영화를 아끼는 구독자  님께 띄우는 텍스트 기획자 임유청의 ‘읽고 쓰고 공유하기’ 활동 일지입니다. 온라인 레터 서비스를 통해 텍스트 사이에서 건져 올린 문장과 생각을 소개하고, 인터뷰 모임으로 작가와 독자가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조직합니다. 질문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대화를, 멈춤 없는 글쓰기를 시작할 당신 작은 용기의 모티브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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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님, 

10월 첫 번째 레터를 준비하면서 

업무 메일함을 열어보았습니다. 

 

보낸 메일함:  2026년 1월 5일 오후 2:48 

 제목: [정기용의 스페인 여행] 책 수선 문의드립니다.

 

재영책수선 수선가님께.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영화 도서 전문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임유청이라고 합니다. 

(중략)

수선을 상담드리고자 하는 책은 '정기용의 스페인 여행(가제)'을 위한 원본 도서입니다.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이 70년대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여행기인데요, 직접 손 글씨로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인화한 사진을 붙여 만든 100쪽가량의 수작업 책입니다. 단 한 부만 제작된 책으로, 정확한 제작 연도는 다시 확인해 봐야겠지만 거의 50년 가까이 나이를 먹은 책입니다. 유족들이 소중히 간직하고 계시다가 이번에 플레인아카이브를 통해 정식 발간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올해 1월,

저는 재영 책수선에 한 통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 1973년 여름, 건축가 정기용의 스페인 여행 일기』의 본격적인 발간을 준비하던 참이었습니다. (책이 궁금하시다면, 9월의  <인터뷰&레터>를 참고해주세요!) 

  젊은 정기용이 직접 그린 1973년 스페인 여정.『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중에서  
  젊은 정기용이 직접 그린 1973년 스페인 여정.
『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중에서  

 

사실, 선생의 남겨진 가족들은 

이 책의 출간을 망설였습니다. 이유는 한 가지.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이 책이 파손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은 선생이 두고 떠난 프랑스 파리 자택의 방대한 아카이브 중에서도 『Carnet de voyage en Espagne, Chung Guyon, été 1973 (스페인 여행 공책, 정기용, 1973년 여름)』 란 제목이 붙은 이 책을 몹시 아꼈습니다. 저도 그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페이지마다 젊은 정기용의 시선의 풍경이 담겨 있었습니다. 파리의 작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사진을 붙이는 그의 뒷모습이 어른거리는 듯도 했습니다. 

 

얇은 종이, 절취선, 스테플러 자국, 정기용 선생의 프랑스어 필체
얇은 종이, 절취선, 스테플러 자국, 정기용 선생의 프랑스어 필체

그러나 이 책은 연약해 보였습니다. 1973년, 가난한 유학생 정기용은 흔한 기성품 공책에 무전여행의 시간을 갈무리했습니다. 건축과 학생들이 많이 썼다는 이 공책은 아주 얇아서 뒷면이 다 비칠 정도였고, 페이지마다 절취선이 있었습니다. 종이 가장자리는 낡았고, 직접 찍고 인화한 사진이 붙은 페이지는 접착제와 세월로 우글우글해져 있었습니다. 책등에 붙은 테이프도 헐거웠습니다. 

 

너무 소중해서

가족조차 쉬이 열어 보지 못하던 책. 하지만 출판을 위해선 책을 낱낱이 분해하고 스캔하여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과정이 꼭 필요했습니다. 파손의 위험을 무릅쓰고 책이 보다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꾹꾹 눌러쓴 펜 자국에 선명한 남편과 아버지의 손길을 오래오래 곁에 두는 것.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저라도 쉽게 결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책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
기로에 놓인 편집자(=저). 

 

일민미술관 전시 당시 표지가 사방이 잘려나갔는데, 가족들은 이 점을 무척 아쉬워하셨습니다. 프랑스 자택에 액자로 걸려 있던 이 표지를 서울의 연남동 재영 책수선 작업실로 직접 가지고 오셨어요. 
일민미술관 전시 당시 표지가 사방이 잘려나갔는데, 가족들은 이 점을 무척 아쉬워하셨습니다. 프랑스 자택에 액자로 걸려 있던 이 표지를 서울의 연남동 재영 책수선 작업실로 직접 가지고 오셨어요. 

그런데 제겐 믿을 구석이 있었습니다. ‘재영 책수선’의 존재였습니다. 그를 찾아가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불안이 있다면 그의 SNS 계정 업데이트가 어느 순간부터 멈춰있었다는 점이었는데요, 다행히도 SNS 바깥세상에서 재영 책수선은 여전히 바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도서 정보로 이동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도서 정보로 이동합니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은

 ‘재영 책수선’을 찾아온 망가진 책과 의뢰인들의 사연을 모은 에세이입니다. 노란 표지를 열어봅니다. 페이지마다 각양각색으로 망가진 책의 사진과 사연으로 와글와글합니다.

어쩜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이랬는데,
이랬는데,

책등은 뜯겨 나가 제본실이 다 드러났고, 책장은 와르르 쏟아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닳고 찢어지고 곰팡이에 벌레 자국들이며…. 그야말로 산전수전 겪은 모양새였습니다. 우리가 의뢰한 책은 그에 비하면 무척 얌전해 보일 정도였죠. 그런데 참 재밌죠, 재영 책수선을 찾은 책들은 망가져도 애처로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양들이 그 책이 받은 사랑, 지나온 시간의 인장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장면엔 이 책을 아끼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려있었고요. 

요렇게 됐습니다! 
요렇게 됐습니다! 

이런 책들이

재영 책수선 작업실에 도착했습니다. 

한국 전쟁도 겪으며 70년 넘게 보관해 온 할머니의 일기장, 습기를 먹고 곰팡이가 가득 핀 33년 전 결혼 앨범, 2005년에 떠난 친구와의 우정 여행 일지, 아이가 어릴 적 닳도록 읽던 ‘해리 포터’ 전집….  손때 묻은 곳마다 추억과 이야기가 담긴 책들입니다.

한편, 수집용 책, 고가의 희귀본도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빨강머리 앤’ 번역본, 프랑스 헌책방에서 구한 파리의 오페라 극장에 관한 145년 전 책, 한 권에 700만 원 가까이 되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한정판 책, 한 귀퉁이가 고작 1cm 정도만 찢어진 얇디얇은 잡지,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인이 담긴 포스터, 책, LP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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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도 수선 범위, 목적도 

천차만별인 책을 살피는 책 수선가. 재영 작가는 북 아트와 제지(paper making)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가 대학의 ‘책 보존 연구실’에 취업합니다. 전공 공부를 위해 3개월 정도만 수련하려던 계획은 인생의 행로를 변경시키고 맙니다. 그때부터 그는 연구실에서 3년 6개월간 일하며 1,800여권의 책을 수선했고, 한국에 돌아와 2018년부터 지금까지 8년 넘게 재영 책수선을 운영하며 책을 수선하고 있습니다. 

 

책 수선가는 기술자다. 그러면서 동시에 관찰자이자 수집가다. 나는 책이 가진 시간의 흔적을, 추억의 농도를, 파손의 형태를 꼼꼼히 관찰하고 그 모습을 모은다. 책을 수선한다는 건 그 책이 살아온 삶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런 모습들을 존중하는 마음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수선 전 찢어진 책장 -> 감쪽같이 수선 된 책장!  
  수선 전 찢어진 책장 -> 감쪽같이 수선 된 책장!  

책 수선가의 작업실을 혹시,

헌책이 여기저기 수더분하게 쌓여있고 훈훈한 먼지 냄새가 나는, 구운 빵 색깔의 아늑한 공간으로 상상하시나요?

그 반대입니다.

갓 청소한 실험실 같습니다. 먼지 한 톨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재영 작가는 결벽 있는(작가님 죄송합니다) 과학자처럼 일합니다. 이를테면 테이프 자를 때만 쓰는 가위가 있는 식입니다. 그런데 실을 자를 때만 쓰는 가위도 있습니다. 심지어 얇은 종이를 자를 때만 쓰는 가위도 있습니다. 그뿐인가요? 두꺼운 종이를 자를 때만 쓰는 가위도… 딴 가위도… 또 다른 가위도…(중략)……. 그에게 지옥을 묘사해 보라고 한다면, 그곳은 “남의 칼이나 가위를 빌려 가서 양면테이프를 자르고 날에 묻은 끈적임을 닦지 않고 그대로 돌려주거나, 가위로 철사 같은 단단한 걸 잘라 이를 다 나가게 만들어놓고도 그냥 돌려주는 무신경한 사람(p.147)”으로 가득차 있다 말할 것입니다. (저는 지옥의 유황 온천에서 비명 지르는 역할로 등장할 예정.) 

 

책이란 인생, 책들의 사연

찢어진 종이를 붙이고, 무너진 책등을 바르게 세우고, 사라진 조각을 채우면서 책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회복시켜 주고, 새로운 커버나 지지대, 혹은 케이스를 만들어주며 책에게 새로운 시간을 약속하다 보면 사람의 인생처럼 책에도 한 권 한 권 각자만의 책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사연들과 파손된 책과 주인의 추억, 그 책이 지나온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p.165,  「무너져가는 책의 시간을 멈추다」 중에서 


재영 책수선의 도움 덕에 『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는 무사히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세상 단 한 권이었던 책은 이제 가족, 동료, 제자 등 정기용 건축가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이들의 책장에 꽂히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로의 모험도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운 ‘책생’이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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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인을 대신해 미팅을 하고, 메일을 주고 받으며 저는 책 수선하는 사람들의 망설임과 마음을 조금은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멀리서 동경했던 책 수선가의 일과도 조금 더 자세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재영 책수선과의 마지막 미팅은 서울을 방문한 프랑스의 정기용 선생님 가족들과 함께했습니다. 넓고 깨끗한 책상 위에는 낡고 빛바랜 책 한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책 한 권을 앞에 두고, 우리는 책등 테이프에 튄 잉크 한 방울, 뜯겨나간 사진 일부, 스테이플러를 제거 할 것인지, 곰팡이 자국을 어떻게 할 것인지 같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반가움과 기쁨, 놀라움과 신뢰의 말들이 오가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서 참 좋다고.   

 

책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줄로만 알았지, 그 자체로도 이야기인 줄을 몰랐습니다. 아무렇게나 접어둔 책 귀퉁이에서 오래된 이야기를 읽어 내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여러분의 오래된 책이 궁금해지는 10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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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님, 

구독자 님의 이야기는 어떤 책에 깃들어 있나요?

책 수선가께 보여주고 싶은 책, 

혹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지요?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재영 책수선 인스타그램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재영 책수선 인스타그램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인터뷰&레터] 시즌2, 10월엔

망가진 책의 곁에서 이야기하는 재영 책 수선가와

그의 에세이집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이야기합니다. 

 


INFO!

재영 책 수선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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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와 시간: 10월 25일 (일) 오후 4시

장소: 망원동 바 사뭇

 

* 구글폼을 제출하신 후 입금 완료해주시면 자동으로 신청 완료가 됩니다. (매진 시 구글폼 자동 종료) 모임 참석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2~3일 내에 메일로 안내드립니다. 

 

 


p.s

강아지 '단체'의 기분 좋은 귀, 접힌 책장을 닮지 않았나요?

(혹시 10월 인터뷰 모임에... 단체도 올까요?) 

재영 작가님의 반려견 단체!
재영 작가님의 반려견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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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14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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