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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면서 느낀 점

2022.06.19 | 조회 5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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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을 슬기롭게

소설과 에세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토박이로 살아왔다. 한 동네에서 이십 몇 년간을 살아오면서 죽기 전까지 다른 동네로 가 벗어날 수 있는 건가. 아니면 이대로 살아갈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왔다.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전학을 가본 적이 없다. 친구와의 관계가 나빠졌어도 좋아졌어도 아무런 변함따위가 없던 나였다. 평탄하면서도 곡선이 있는 인생으로 살고 있는 나였다.

그러던 내가 여행을 가면서 생각한 거였다. 살아가는 것은 그저 판타지라는 거였다. 신기루 같은 존재라는 거였다.

캐리어에 짐을 가득 실고 여행을 갈 생각에 들뜬 감정이었을 때였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수선한 분위기와 낯선 새벽 공기와 같은 것이 나를 더 들뜨게 만들었다. 비행기는 사진으로 볼 때나 영상으로 볼 때와 다르게 무척이나 컸고 저 물건이? 하늘을 날 수 있다고, 라는 의문을 가졌을 때였다. 자리에 앉아서 승무원들이 안전에 관한 안내를 해주었다. 고막이 터질 듯한 느낌이 드는 이륙 그리고 안정감을 갖고 대류권 및 성층권을 다니는 그 느낌. 창밖을 내다 볼 때면 모두가 작아 보였다. 구름과는 더욱 가까워졌다. 내 몸은 허공에 떠 있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이 아까웠다. 구름을 이렇게 쉽게 만나 볼 수 있다니. 도화지에 비행기 그림을 그리면 항상 그 옆에는 구름이 있었다. 구름도 있었고, 해도 있었고... 그저 신기한 일이었다. 물론 과학적인 일이겠지만 그 순간에는 신기하다 그런 뻔한 생각을 했다.

나와 같은 시간대에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도 여행을 가는 것이겠지만 어떤 목적으로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살아가고 모두 다른 목적으로 떠나가는 비행기 안. 그저 신기했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혈육이랑 떠나는 여행이었다.

우리는 수 많은 시간을 지내 버린 후에 착륙을 했다. 땅으로 향해 내려 가는 느낌도 이상했다. 내 몸이 저절로 의자 등받이로 가 닿는 느낌.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항에 모였다. 한 손에는 캐리어를 끌고 우리 가족들은 공항 밖으로 향했다. 캄캄한 밤이었다. 순식간에 후덥지근하고 끈적거리는 공기가 살 곳곳에 닿았다. 혈육의 한 손에는 번역기를 들고 있었다. 간단한 의사소통은 할 수 있었지만 복잡한 말을 하고 싶을 때엔 말이 안 통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 작은 물건에 의지를 했어야 했다. 한 리조트에 픽업차를 불러서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 이 순간에도 어수선하고 낯설었다.

픽업차가 왔다. 픽업차에 타고 있던 분이 차에서 내려와 우리의 짐을 트렁크에 집어 넣어 주었다. 그런 후에는 차 안으로 타라는 안내를 해주었다. 밤은 무척이나 캄캄했지만 보이는 장면들은 우리 한국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낮고 높은 건물들이 배치 돼 있었다. 시차는 났지만 살아 가고 있는 것은 똑같았다.

그 곳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했다. 배에 타서 연등을 띄웠으며 코코넛 보트를 타보기도 했다. 사람 의식하지 않고 머리에는 화관을 한 채로 돌아 다녔으며 쉽게 먹어보지 못하는 음식들을 먹었다. 때론 따분하면서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 곳에는 한국인들도 많았다. 딱 하나 기억나는 대화였는데, 그건 우리 엄마의 말이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경기도에서 왔어요."

나는 이 말을 듣고선 웃겨서 속으로 마구 웃어 버렸다. 먼 나라에 와서도 같은 나라 사람을 마주쳐 이런 대화를 나누다니.

시간이라는 것은 참 무서운 단어라고 생각했다. 많은 곳을 떠돌아 다니고, 걸어다니고, 차를 타고 했던 우리가 벌써 한국으로 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판타지라는 것은 영화나 드라마, 책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여행이라는 단어가 삶에서 판타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뭔가가 허전했다.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 버린다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 가야한다는 것이 내겐 큰 파동이 왔다.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다니는구나. 평범한 삶에서 파동이 있기를 원해서 비행기를 타고 배를 타고 차를 타서 먼 곳으로 떠나는구나.

떠나야 하는 그 전 날 밤에 침대에 누워서 나는 눈물을 흘리곤 했다. 가고 싶지 않았다. 여유롭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이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는구나, 싶었다. 이제 또 그 평범함을 위해서 살아 가야했다. 지겹고 재미도 없는 인생을 위해서 나는 또 그 곳에서 적응해 나가야했다.

여름이라는 계절을 보냈고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했던 우리. 시간은 참 너무했다. 집에 있던 온갖 물건을 넣었던 캐리어에 우리는 또 다른 물건을 합쳐 정리했다. 이 물건이 이 시간을 기억해주는 거겠지.

나는 그 날의 후유증이 생겼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몸살에 걸려 앓았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못했고, 먹었던 약이나 음식들을 게워내기도 했다. 덕분에 살은 빠져 나갔고 그 시간 속에서 서서히 적응해나갔다. 그저 신기하고 신기한 판타지를 겪었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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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ㄱㅈ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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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most 2 year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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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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