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제주의 밤에는 비밀이 있다

맑은 밤과 밝은 밤의 차이

2022.01.31 | 조회 5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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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한 잔

매일 자정, 제주 한 달 살이를 같이 하게 됩니다.

제주의 맑은 밤이 찾아왔다

제주에 왔음에도 밤하늘을 올려다 본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로등도 몇 없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지는 제주의 밤이기에,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서둘러 들어가는 게 일상이었다. 숙소가 동쪽에 위치했기에 저물어가는 해를 보는 대신, 분홍과 보라빛을 띄는 하늘을 잠깐 바라보다가 커튼을 쳤다. 오션뷰 숙소에 테라스까지 딸려 있는 숙소를 잡았는데도 밖으로 나가 본 건 몇 번 그치지 않는다. 창문을 열어 테라스에 나갈 의지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따끈한 보일러를 틀고 이불에 누움과 동시에 먼지처럼 흩어진다. 어떻게든 손으로 쓸어모아야 겨우 모이는 의지였기에 온기와 이불, 마감과 설거지 등의 쉴새없이 늘어나는 핑계들을 붙잡고서 땅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보일러 하나는 따끈했다.

나를 붙잡은 제주의 밤하늘
나를 붙잡은 제주의 밤하늘

그러다 오늘, 처음으로 제주의 밤을 만났다. 일주일만의 맑은 날씨 덕분이었다. 숙소로 들어오는데 투숙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강아지와 함께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추운 날에 왜 굳이 밖에 나와 서성이고 있나 싶어 시선을 따라 움직였다. 고개를 들자 그제야 머리 위에 수없이 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다는 걸 알았다. 누군가의 서성임 덕분이었다. 집에 들어가지 말라고 붙잡는, 맑은 밤이었다.

맑다와 밝다의 차이점은 타인 혹은 바깥의 개입에 있다. 서울은 밝은 밤을 지니고 있다. 바깥의 가로등과, 빌딩의 형광등으로부터 일궈낸 밝음이다. 반면 제주의 맑은 밤은 하늘 스스로 먹구름을 걷어내고서 나온 성질이다. 별의 반짝임을 방해하는 빛들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이 밝아보인다는 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왔으며, 정신이 맑다는 건 온전히 자신이 느껴야 하는 영역이다. 방이 밝은 건 스탠드나 다른 조명들의 밝음으로부터 온 것이고, 시냇물이 맑은 건 그 어떤 방해물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밝은 걸 찾기는 쉬우나, 맑기는 어렵다. 불을 켜면 밝게 되나, 하늘이 맑으려면 기도를 하는 수밖에 없다. 소풍 전 날처럼 중요한 날에 제발 하늘이 맑기를, 간절히 기도하게 만드는 것들이 '맑음'이다. 그래서일까. 별이 보이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소원을 빌고 싶어진다.

 

나의 소원은 화성에 가는 것입니다

밤바다와 바다에 흩어지는 조명
밤바다와 바다에 흩어지는 조명

별을 보면 어떤 소원을 빌까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별이니까. 화성에 가고 싶다고빌어야지. 어쩌면 내가 빈 별들 중에서 정말 화성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별 보는 법은 모르기에 저중에 무엇이 화성이고 금성인지는 구분할 수 없지만 말이다. 우주에 가고 싶다는 소원은 어린 시절부터 품고 있었다. 한때 우주 비행사가 꿈이었는데 시력이 나쁘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서는 바로 포기했다. 우주란 게 수학적인 영역이 커서 천성 문과인 나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기도 했다. 차라리 테슬라에 투자를 하는 편이 더 가능성 있어 보인다.

왜 가고 싶느냐면, 거기에 우주가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겠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있는 게 우주니까.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을 보고, 유튜브에서 유튜버를 보면서 연예인이나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는 초등학생마냥, 나 역시도 우주를 보면서 막연하게 꿈꾸는 거였다. 이미 집과 수십 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제주에 와있는데도,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이 많았다. 아이슬란드, 캐나다, 몽골, 사하라 사막, 북극까지도. 나는 아직도 가야 할 곳이 많구나. 아무래도 머무른 곳에서 만족하며 살아가는 재주는 가지지 못한 거 같다. (그만큼 성실함도 같이 타고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고 싶은 곳을 하나하나 꼽아보다가도 결국 마지막 정착지는 우주가 될 거 같다는 막연한 기대를 해본다.

디지털 노마드가 꿈이기도 하다. 디지털, 즉 노트북만 있다면 어디서든 일 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한다. 디지털 노마드는 제주도에서 살아도 되고, 외국에서 살아도 된다. 인터넷만 연결이 되어 있다면 말이다. 디지털 노마드가 된다면 우주에서도 일할 수 있을까. 그곳에 와이파이가 과연 터질지. 그렇다면 마감일자 보다도 일주일 전에 메일 전송을 눌러야, 마감일자에 맞춰서 겨우 메일이 보내질지도 모르겠다.

 

제주의 밤에는 비밀이 있다

바다와 밤과 별 
바다와 밤과 별 

테라스에서 별 사진을 찍으려고 애썼다. 휴대폰 카메라에서 '프로' 모드로 들어간다. (참고로 나의 휴대폰은 갤럭시 S21+이다.) 셔터스피드를 30초 이상으로 설정하고, 조리개를 최대로 높인다. 카메라는 절대로 움직이면 안되기에 손으로 잡지 말고 삼각대를 설치해야 한다. 30초 정도 기다리면 야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도 미세하게 빛나는 별들이 사진 안에 담겨 있었다. 보다 신기했던 건 어둠에도 색채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같은 하늘인데도 색감의 차이가 뚜렷하게 나있었다. 카메라를 잘 아는 사람들은 설정이나 렌즈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어둠에도 색채가 있구나.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동경한다. 자연이 숨겨둔 비밀이다. 비밀이 많을 수록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건 비단 사람뿐이 아닌가보다. 명탐정 코난에도 비밀과 관련된 명대사가 나온다. "A SECRET MAKES A WOMAN WOMAN" 비밀은 여자를 아름답게 만든다. 비밀이 많은 사람이고 싶다. 워낙에 속내가 뻔히 잘 보이는 편이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깊은 생각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별을 보고서 눈시울이 붉어진 이유는 찬바람 때문만은 아닐 거였다. 끊임없이 성장과 변화를 갈구하는 열등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기를.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 속에서 온전히 변하지 않는 걸 찾을 수 있기를. 맑은 밤이 오지 않더라도 너머에 반짝이는 볓들이 있다는 걸 믿을 수 있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기를. 이만큼이나 별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 정도는 내 소원을 들어주겠지, 싶다. 구독자의 소원도 내가 같이 빌어줄 수 있기를.

유튜브를 보고 따라 그린 오일파스텔 그림
유튜브를 보고 따라 그린 오일파스텔 그림

 

제주라는 주제를 핑계로 오늘은 제 넋두리를 많이 한 거 같습니다. 별을 보니까 감성적이게 됩니다. 이런 생각, 감성을 가질 수 있는 건 늘 여러분의 덕분입니다. 소원을 아래 링크를 통해 올려주면 제가 읽고 같이 빌고 싶어요. 소통을 하기 위한 소소한 롤링페이퍼이니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됩니다. 익명으로 쓸 수 있어요. https://rollingpaper.site/rolls/88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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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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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라니

    0
    over 2 years 전

    무척 철학적인 내용의 에세이네요 이런 글 언제나 좋습니다! 맑다와 밝다의 차이를 하늘에 빗대어 표현한 부분에서 많은 생각을 일게 한 글이었어요 제가 사는 곳은 항상 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곳이어서, 별에 대한 감흥이 잘 들지 않았는데 가끔 서울의 밤하늘을 볼 때면 별 보는 것이 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곤 했습니다 제주도의 별도 참 아름다울 것 같아요! 맑은 하늘이 귀하니까 꼭 밤하늘을 올려다보아야겠군요! 화성에 가는 꿈이 있는 줄을 몰랐는데...! 정말 테슬라 주식을 사야만 갈 수 있는 꿈의 공간일까요? 언젠가 세상이 좋아진다면 우주여행쯤은 소풍가듯 가는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우주에 대한 환상은 없지만, 우주를 비행하는 인공기능이 탑재된 위성들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무한한 공간에서 지구에 사는 인간과 소통하는 그 거리감이 좋았는데... 우주라는 키워드는 문학을 취급하는 작가들에게 놓을 수 없는 실마리 같아요! 화성 갈끄니까... 좋은 에세이를 매번 읽을 수 있어서 정말 좋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작가님의 소원도 함께 빌겠습니다! 이뤄질 거라는 희망은 언제나 가슴 속에 남아있을테니까요💕

    ㄴ 답글 (1)
  • 김하물

    0
    over 2 years 전

    화성에 가고 싶다는 소제목에 경기도 화성을 생각하며 입이 근질거려서 씰룩 거린 나는.,,? 우와 그림 완전 잘 그렸어유 히히 카메라는 역시 갤럭시?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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