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은 어딜 가도 주식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나도 주식 이야기를 해 보겠다. 주식에 얽힌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몇 달 전 나는 하이닉스 주식이 90만 원쯤 하다가 70만 원 대로 떨어지기에 충동적으로 몇 주 매수했다. 몇년 전까지도 하이닉스 주가는 10만 원도 안 됐기에 '70만 원'은 턱 없이 높은 가격이었다. 70만 원에 산 주식은 며칠 만에 80만 원이 됐고 나는 그걸 팔았다. 80만 원이 최고가라고 생각했다. 또 떨어지면 사서 되팔아야지 하면서. 하지만 그 후 하이닉스의 주가는 80만 원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 자고 나면 4만 원 오르고, 3만 원 떨어졌다가 6만 원 오르고, 어떤 날은 10%씩도 오르더니 금세 100만 원이 됐고 절대 더 안 오를 것 같은 가격에서도 끝없이 올라 한 달 만에 200만 원이 돼버렸다. 이제는 내가 절대 살 수 없는 '저 세상 주식'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하이닉스 주식이 계속 오를 것 같다고 예상했다. 기세가 장난 아니고 반도체 수퍼사이클이 왔으니까. 하지만 70만 원 대에 매수한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100만 원에 살 수 없었고 120에는 더욱 살 수 없었으며 150, 170에는 쳐다 보지도 않았다.
심리적으로 더 많은 이유가 있었다. 이 정도 올랐는데 더 오르겠어? 하는 의구심도 있었지만 더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도 80에 판 주식을 100에 되살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그럴 거면 왜 팔았나? 80에 판 것을 100에 산다면 과거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내가 바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못 샀다.
아예 하이닉스 주식을 처음 사는 사람이라면 200만 원이라도 미래 가치를 보고 매수할 수 있다. 하지만 하이닉스를 100에 판 사람은 그 가격에 사기 어렵다. 100에 매도했던 과거에 매몰되고 그 기억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기 희소식이 있다. 바로 과거는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란 불분명한 기억의 파편일 뿐, 그 실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이 사실을 기반으로 주식 매매에 적용해 보자. 어제는 없다. 어제의 주가도 없다. 있는 것은 오직 현재의 주가다. 내가 얼마에 샀든, 혹은 팔았든 그건 모두 '없는' 과거의 기억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현재의 주가만 보면서 이 주식이 오를 것인가 내릴 것인가만 판단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 내가 100에 팔았던 주식이 200만 원이 돼도 못 살 이유가 없다.
실제 외국인이나 기관의 주식 매매가 합리적인 이유는 기억도 없고 감정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알고리즘과 원칙에 따라 그 순간의 여러 수치에 따라 팔만큼 팔고 살만큼 산다. 반면 우리 같은 개인은 기분에 좌우된다. 증권 계좌에 있는 돈은 매도하지 않는한 시시각각 변하는 숫자에 불과한데 지금 얼마 벌었다고 좋아하고, 오늘 얼마를 잃었다고 우울해 한다. 그 즐겁고 우울한 기분에 휘둘려서 주식 거래를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리 만무하다.
"제발 지금의 기분에 휘말려서 중요한 결정을 하지마!"
주식뿐 아니다. 우리는 '없는'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일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표적으로 인간관계가 그렇다.
"네가 먼저 잘못했잖아!"
싸워서 소원해진 사람과 화해하고 싶다면 화해해야 한다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과거는 없기 때문에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는 영원히 판단 불가능하다. 어거지로 상대의 사과를 받아낸들 그게 무슨 소용있나? 재발 방지? 타인의 행위나 말투, 논리가 잘못됐다는 것을 지금 깨우쳐 준다고 해서 상대가 승복할까? 다시는 안 그럴까? 깨우치기나 할까? 당신을 생각해 봐라. 당신은 남의 한마디에 '아, 내가 잘못했구나' 생각하나? 상대도 똑같다. 어떤 이유로 져주면 져줬지 진심으로 납득하지는 않는다. 그게 인간의 본성이다.
먼저 사과를 받지 않으면 화해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과거 싼 가격에 매수했던 주식을 이제 와 비싼 값에 못 사는 심리와 유사하다. 화해해야 한다면 없는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다가올 미래를 고려하라. 그게 정답이다. 만약 미래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면 사과 받을 필요도 없고 화해할 필요도 없다. 미래 가치 없는 주식은 아무리 싸도 사지 않는 것과 같다.
어제는 없다. 과거는 없다. 있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슬픔이나 분노, 수치심 모두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심지어 원형 그대로 있지 않고 엄청나게 변형돼 원본이 무엇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그러니 연연할 필요 없다. 가끔은 어제의 나를 부정해도 된다. 어제의 내가 한 잘못을 외면해도 된다.
심리적으로 인간이 현재라고 인식하는 시간은 3초 정도다. 하나, 둘, 셋. 이 시간이 지나면 현재는 과거로 재편되고 없어진다. 과거에 집착하고 있는 동안 현재는 3초 만에 사라진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제로 현재에 집중해 살기는 쉽지 않다.
현재에 집중하라. 과거의 기억에 붙잡히면 현재를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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