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묘하게 위로되는 말이 있다.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이 말은 이성적인 추론의 결과가 아니다. 기대 섞인, 희망 섞인, 어쩌면 자조도 조금 섞인 위로의 말일뿐이다.
언젠가부터 나도 희망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이 돼 있었다. '희망'이라는 거창한 단어까지는 아니라도 뭔가 작은 기쁨이라도 줄 수 있는 변화, 이를테면 새 가방이라든지, 새 폰이라든지, 아니면 3일 연휴라도.. 살아가는데 아주 조금의 예정된 즐거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실제 이 같은 기대나 희망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는데 이제 그 어떤 작은 기대나 희망도 없는 일상에 맞닥뜨리게 됐다. 자주 먹는 진통제에 내성이 생긴 것처럼 새 폰이나 3일 연휴 같은 작은 기대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제 나빠질 일만 남았다. 더 이상 좋은 날은 없을 거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나'를 어찌하면 좋을까?
"우린 살고, 우린 죽는다. 그건 어쩔 수 없다."
디즈니+ 오리지널 드라마 <쇼군>의 여주인공 마리코가 한 말이다. 처음 들었을 때, 운명에 순응하는 일본 특유의 정서가 담긴 대사라고 생각했다. 죽음이라는 사건에 대한 체념, 아무리 억울해도 죽는 건 어쩔 수 없다는. 하지만 다른 뜻이 숨겨져 있었다. '사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더는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봐야 좋은 꼴 볼 게 없어도, 아무 희망이 남지 않아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죽는 것뿐 아니라 사는 것도 어쩔 수 없다니.. 그걸 놓쳤다.
삶과 죽음은 어쩔 수 없기에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숙연히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삶도 받아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살아야 한다. 그만 살 수 없다.
능력 있고 젊고 창창해서 희망이 펑펑 터진다면 사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현재 일상이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아무 희망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꼼꼼히 따져보면 잘될 가능성 거의 없고 전부 망상에 불과하다면? 건강이고 재산이고 이제부터 내리막 길이고 까먹는 것만 남아있다면? 그런 사람은 무엇을 동력으로 살아가야 하나?
그냥 툭툭 살아라. 그냥 툭툭 살자.
다 잘될 거라는 말처럼, 이 역시 논리적인 정답은 아니다. 그냥 위로의 말일뿐이다. 툭툭 사는 게 어떤 것이냐고 묻는다면 진지하게 골몰하지 않고 되는 대로 '툭툭' 사는 것을 의미한다. 반드시 정답을 맞히겠다고 머리를 싸매는 것이 아니라 대충 생각해 보고 맞을 것 같은 답을 고르는 방식이다. 맞으면 좋고, 틀리면 어쩔 수 없고.
우리가 정답을 맞히려고 애쓰는 이유는 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정답을 모르겠으면 1이라도 나은 답을 찾아서 영혼을 갈아 넣는다. 이제 그러지 말자. 내일은 나아지지 않는다. 가능성 제로다. 그런 내일을 위해 오늘을 왜 갈아 넣나? 그냥 오늘을 위해 오늘을 살면 된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커피를 마시고, 넷플릭스나 웹툰 보고, 글 좀 쓰다가, 하기 싫으면 미루고, 사람 만나도 되고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는다. 툭툭.
내일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오늘까지 망칠 건 없다.
희망이 없으니 무법천지로 막살자는 말도 아니다. 다만 희망이 없으니 삶에 거창한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된다. '의미'라니..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다. 여태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보라. 나의 인생이 그리 의미 있었나? 이만큼 살아도 없던 의미가 나머지 인생에 생길까? 삶의 의미는 삶의 필수조건이 아니다. 의미 따위, 이제 잊는다.
어쩌면 희망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잘될 거라고 믿지 않으면서 툭툭 살아가는 것.
정답을 모르면서도 일단 하나 골라보는 것.
좋아질 거라고 기대하지 않으면서 오늘 하루를 소소하게 살아보는 것.
희망이 없으니 꼭 살아야 할 이유도 없지만, 더 이상 하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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