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책 작업을 끝내고 나서 에너지를 다 쏟아서일까. 밑바닥까지 모두 긁어모아 꺼내놓았기 때문일까. 사실은… 그 글에 스스로가 자신 없었기 때문일까.
내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까. 책을 낼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매번 글을 내보이고 독자를 만날 수 있을까.
아무도 내 글을 읽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누구라도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하다가, 쓰고 싶어도 더 이상 아무것도 쓰지 못할 때. 글 주위를 서성대다가 동시가 되지 못한 어떤 것을 한 편을 썼다.
나는 고릴라도 사자도 무섭지 않지
할매귀신이나 강시는 우습고
숙제 안 해서 혼나는 것도
혼자 주사 맞으러 가는 것도
하나도 안 무서운데,
네가 울던 날
나는 덜컥 겁이 나서 조그만해지고 말았지
어깨를 웅크리고 울던 네 뒤로 가
가만히 숨죽이고 있으면
나는 네 발끝에 매달린 어둡고 컴컴한 그림자
나처럼 네가 우는 것이
세상 제일 무서운 사람들이 모여
너의 그림자가 되지
작은 그늘을 드리우는
그림자 되지
그림자가 되어주는 사람, 그래서 그늘이 되어주는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그림자는 내면의 어둠과 아픔, 상처의 다름 아닌 말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어둠 위로 겹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그늘이 되기도 한다. 그림자를 덮는 사람들. 그림자를 안아주는 사람들. 우리의 그림자들이 겹치고 섞일 때 그 그림자는 나의 모습이 아닌 우리가 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쉴만한 그늘이 되어주기도 한다.
위로가 어려웠던 나는, 그리고 여전히 어려운 나는 그림자에 대해 생각한다. 그 그림자에 가만히 나를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뜨거운 볕 아래 작은 그늘이 되어줄 수 있다면.
내 글의 자리는 그런 자리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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