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men in Sydney

'기쁨도 슬픔도 다 함께할거야'

2026.11.01 | 조회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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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fryhard

#1.

 

어제 할로윈이었어요.

 

저녁 약속 있어서 전철(train)타고 시드니 시내엘 다녀왔는데 기괴한 분장한 애들 여럿 보이더라고요.

 

한 스무살 언저리나 되었나, 두어칸 앞 자리에 앉은 여자애들 둘이도 얼굴에 잔뜩 색칠을 해 놓았는데 한 애는 얼굴에 어설프게 빨간칠, 다른애는 검은 칠 범벅을해 놓고 연신 서로 깔깔대는거야. 둘이 셀피 찍는데 웃느라 정신없어서 뒤에서 얼핏 봐도 핀트 안 맞는 사진들이 찍히고 있는걸 알겠더라고. 전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 노트북 가져왔던 나는 귀마개를 하고 이 글을 쓰느라 얘네들이 서로 무슨말 하는지 제대로는 못 들었지만 아마도 hahaha so much fun, we are damn so stupid but I love you이런 얘기들 했겠지.

 

전철에서 내리면서 이런 생각 들더라고. 너네들 지금 둘이 인생 샷 찍고 있는거야. 할로윈 끝나고, 다시 학교와 일터에서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너희들은 이제 나이가 들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남자를 만나 살림을 꾸리고, 애를 낳고, 애기들 유모차에 태워 다시 서로 종종 만나고, 애들은 커가고, 또 지루한 일상이 이어져 세월은 구름같이 흐르고, 중년의 나이가 되어도 서로 종종 만나 ladies night에서 또 wild party를 하기도 하고, 50세가 되어 우리 우정 기념 둘이 이태리로 여행가서 whatever happens in Italy stays in Italy로 비밀스런 추억 남기기도 하고, 이렇게 그들의 프렌드십은 평생 이어질 것입니다. 서로 만날때마다 오늘 할로윈날 분장했던 그 어설픈 코스프레 얘기 울궈먹으면서.

 

#2. 

 

시드니에는 할로윈 코스프레로 유쾌한 추억 만들고 있는 소녀들도 있지만 stupid party없이 지나가버린 회색빛 학창 시절을 뒤로하고 묵묵히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여자들도 있을 것이에요. 금요일에 그 중 한 분의 스토리를 들었어요. 

 

비지니스 관계로 금요일 오후에 작은 IT 서비스 업체 대표 부부를 만나서 술을 몇 잔 했어요. 여자분 이름 Meg이고 폴란드 출신이야. 나이는 대략 50대 중반. 아들 Felix, 딸 Maya 둘 다 대학생입니다.

 

이런 저런 주제를 넘나들며 대화를 이어가다가 이 분 어린 시절 얘기가 나왔어. Meg이 할 얘기가 많았는지, 와인잔을 비우며 자신이 겪은 소련 체제에서의 폴란드를 동유럽 여자다운 내러티브로 전해줬어요. 체코와 헝가리처럼 큰 민중봉기 없이 공산세계 안에서 나름의 평화로운 시기를 구가하던 폴란드는 1980년대에 들어서 체제 붕괴를 감지하기 시작한 소련의 철권 통지 압력이 바르샤바에서도 행사되어 그 시절 우리나라처럼 통금령이 내려지고 시내엔 탱크가 등장하였으니 시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감시하게 되었고, 하루하루 생면부지를 걱정하는 이외에 다른 것들을 돌보기 힘든 생활이 이어졌다 합니다.

경제 사회면으로는 우리가 알 듯 소비에트 사회주의 시스템이 영원불멸 근간으로 제창하던 계획경제의 결사수호, 그리고 여기에 동반하는 유토피아적 완전고용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 인민(comrade) 모두가 통계적 허상의 인민 모두를 위해 필요 여부에 관계없이 일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구조였으니, Meg도 스스로 기억하기를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들 낳고 육아휴직이고 뭐고 그런 것도 없이 휴가 며칠 뺀 거의 일년 내내 일터로 나갔다고 합니다.

이렇게 멍에 물린 소처럼 일하는 사회에서 청소년기를 보내고 호주로 넘어온 Meg. 이미 자아는 형성되었고, 이민지인 그녀는 그 결과로 강한 직업 의식(work ethic)이 몸에 배어 있음을 치즈와 와인 곁들인 저녁 대화에서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얘기도 하더군요. '아침에 출근하는데 라디오에서 요즘 젊은 여자 애들이 애 낳기 싫어한다 하더라. 집 값도 올라서 걱정이라던데. 그게 왜 걱정이지? 내가 자란 바르샤바의 소비에트 공동 주택은 좁고 비루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고, 그래도 잘만 살았는데? 그리고 우리 엄마는 나하고 언니 낳고도 일 잘만 하던데? 뭐야, 그리고 또 뭐야, 요즘 여자애들 그 Me Too인지 뭔지, I don't get it이야.'

 

아차 내가 괜히 술자리 토크 분위기 띄울려고 막스 엥겔스 레린 스탈린 몇 마디 던졌다가 이거 밤 새겠구나 싶어서 우리 폴란드 잔다르크 어머니들 얘기는 그만 접읍시다, 자리 털며 일어났는데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 드는거야.  아마 1985년 이 여자 Meg이 호주에 영구 거주를 목적으로 입국했을때, 이민청에서는 이미 그녀의 눈빛을 보고 '너같은 사람 우리나라에 필요해 합격' 판단되어 바로 비자 도장을 찍어줬을 것이야.

 

#3.

 

강한 직업 의식으로 일해온 여자들이지만 무너질 땐 대책없이 무너지는 모습도 봤어요.

2008년부터 알고 지낸 지인이 있어요. 당시 시드니에서 야간으로 통역반 1년 과정 수업 다니면서 만난 후배에요. 2005년 넘어온 나도 아직 호주 생활 적응하느라 땀 빼고 있던 차였지만, 혼자 건너와 시행착오 거듭하던 후배는 본인 얘기로 내가 학업과 정착 면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하네요. 내가 그랬나, 기억은 없어.

과정이 다 끝나 통역사 자격을 받고, 나는 원래부터 시간 남으면 주말 같은데 아르바이트 격으로 활용하리라 생각해서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후배는 차곡차곡 통역 경험을 쌓아 지금은 전문 통역사로 이름을 날리며 시드니에서 잘 살고 있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2010년 이후로 일본에 적을 두고 있는 지라, 후배와는 일 이년에 한 번 정도 연락 주고 받나 하는 정도였지만 얘가 중요한 일 있거나 하면 꼭 소식을 전해오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나의 비지니스 동업자인 천재 친구를 통역 업무 건으로 후배에게 소개해 준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이 만나기 시작했다는 거에요. '야 참 잘 됐다 축하해'의 인사말을 전해 주며 시드니 타향에서 외로운 사람들끼리 정 붙이고 잘 살기를 바랬는데, 아아 몇 년 못 가고 그 사랑이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지. 어느 날 밤엔가 일본으로 국제 전화가 걸려왔는데 엉엉 우는 소리 들리더라. '이 남자 미워요' 소리를, 둘 사정 다 아는 나 말고는 시드니 어디에서도 하소연 할 길이 없었으리라.

 

후배는 그 후로 남자 복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40대 후반이 되었고,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며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던 어느날, 이번에는 한국에 있는 후배 가족의 형제 자매중 한 분이 사고를 당해 세상을 뜨게 됩니다.

이번에도 나는 일본에서 전화를 받았어. 지금 부랴부랴 짐 싸고 있고, 급히 비행기표를 끊어 한국을 가야 하는데 도움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다며 나한테 연락이 온 것이지.

우리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영안실에서 입관을 맞으며 통곡하시던 우리 어머니 울음 소리를 제외하면, 사람이 사람이 이처럼 서럽게 우는 건 처음 들었어. 이빨 악물고 정신 차려 인터넷으로, 전화로 항공사에 전화해 출발 한 시간 전 비행기 예약해 주고 후배에게 티켓 번호 알려주면서, 가족 친지의 죽음은 인간이 경험하는 희로애락의 범주중 최악의 것이기에 주님께 부디 이 비극이 후배의 기억에서 빨리 사라지기만을 기도드렸지.

 

시간이 또 흘렀고, 아직 아픔이 다 가시지는 않아서 어떤날은 가족 두고 멀리 떨어진 나라에 혼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지, 이 삶 살아 뭐 하는지, 물음에 답을 구하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니 후배는 나에게 여전히 연락을 해 오곤 합니다.

 

그 후배와 지난 목요일 낮, 저는 햇살 따스히 비치는 시드니의 어느 야외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썰어 나눠먹고 있었던 것이지요.

 

낼 모레 히말라야 간다고, 오늘은 기분이 좋은 모양이야. 한참 들떠 있더라. 엊그제 나 머리 했다. 이쁘지, 하면서.

 

어 이쁘다, 말해줬더니 이번엔 또 한술 더 떠, 케빈 니는 행운아다. 나같이 이쁜 애랑 같이 밥도 먹고 있고, 이러더라. 

 

얘 아주 신났어. '나 히말라야가서 새 남자 만날거야. 따른 남자가 나 채어가기 전에 오빠 빨리 말해 나 좋아한다고.' 

 

아 불편해 제발 ㅎㅎ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며, 우리는 앞으로 또 몇년 후에, 과연 만나게나 될 지 모르겠으나 바로 내일 다시 볼 사람처럼 정겹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서로 방향을 달리하여 헤어졌지요.

 

한 몇 보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봤어.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로 얘도 고개돌려 나를 잠시 쳐다보더라.

 

커트한 짧은 머리결로 반사된 햇살이 내 홍채로 여과없이 흡수되는데 나 눈 부셔서 실명하는줄 알았어요. 

 

이 장면 앞으로 한 50년 동안 기억하게될 것 같은 예감 들더라. 어디 홍상수 영화 마지막 씬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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