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카메라에 보이는 게 영화의 한 장면 같아.“
“언니, 우리 인생이 영화지!”
맞지, 현실감각이 다 떨어질 만큼 신기한 일이야. 간만에 산책길을 나섰다가 돌아오는 길, 우리 아파트가 깜깜한 숲과 하늘 사이에 끼어 금빛 창문을 뽐내고 있었다. 설명하기도 어려운 낯선 곳에서 내가 먹고 자고 누울 곳이 있다니.
요 며칠 멍때리는 일이 좀 많았다. 수영장에서 눈코입만 내놓고 물에 떠있다가 벽에 머리도 박았다. 그 정도로는 아프지가 않다. 주변에 감기 걸리는 사람들이 많고 공기도 차가워져서 나도 감기에 걸리려나 걱정했는데 아직은 끄떡없다. 미국에 온 이후로 아직까지 크게 아픈 적이 없다. 내가 갑자기 튼튼해진 걸까? 한국에서는 꼭 6개월에 한 번씩 아팠는데.
손으로 연구노트를 좀 길게 쓰기 시작했는데 좋다. 라인 속지가 필요한데 여기와서 주구장창 수학만 손으로 쓸 줄 알고 죄다 모눈종이만 갖고왔지 뭐야.
이번주는 비교적 소셜지수가 높았다. 해외에 사는 친구들과 통화로도 줌으로도 만나고, 단톡에도 좀 참여를 하고. 밀린 DM도 답장을 좀 했다. 토요일에는 예상치 못하게 이 곳의 친구들과 약속을 두 탕 뛰었고, 금요일에도 복싱 후에 치킨까지 같이 먹었다. 어쩌다 이렇게 00년생 친구들을 두게 되었나. 어릴 때부터 언니오빠들을 참 좋아했는데 내 운명은 언니누나인가봐.
오랜만에 J와 통화를 길게 했다. 우리의 대화를 위해서는 내가 눌러둔 감각을 꺼내야 했다.
남들 사는 걸 보면 나만 멈춰있는 것 같은 기분, 사실은 매일 느낀다고. 부러운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라고.
그러나 내 것이 아닌가보다 하며 모난 마음들이 자리잡기 전에 글로 토하는 거라고.
그리고 누군가는 또 우리를 부러워할 걸?
나는 너를 부러워하고 너는 나를 부러워하고.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길래 장기하 노래 가사인가 했는데 그 노래엔 부럽지가 않다는 말밖에 없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에 들었는지 Suno AI를 결제해서 오래된 메모들로 노래를 만들었다. 딸깍.
제법 내 목소리와 닮은, 들어줄 만한 노래가 나왔다.

운전할 때 들었다. 드디어 내가 내게 써주는 편지였다.
OO, 뭐가 두려워.
어차피 후회한다는 생각으로 여기왔지?
떠나왔잖아, 그럼 된 거야.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지금 찾지 말자.
철 들지 말고 너무 똑똑하게 살지도 말자.
벌써 겨울 비행기를 끊었다는 소식을 전하며,
Poem Kim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