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야 참 세상 좁다 what a small world 라고 느껴질 때 있지요.
작년 이맘 때, 지금 다니는 회사에 입사한 지 반 년 즈음되어 나는 한국과 일본의 고객들에게 우리 제품 하나만 사줍쇼~ 하고 여기저기 구걸하고 있었어요. 한국 고객중에는 내가 지사장으로 부임하기 전 우리 서비스를 해지한 고객이 있었으니, 저는 얼른 그 분 연락처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 선생님 이제 사령탑 바뀌어 더 나은 품질과 고객 케어 제가 확실히 약속 드리겠습니다 애원했겄만 고객은 한 마디로 거절하더군요. '서비스 실망스럽습니다' 뚝.
그리고는 이 고객 잊고 있었는데, 지난 달 한국 출장 갔을 때 친구가 마침 니 주말 시간되면 골프 치자, 한 사람 자리 빈다 해서 야 야 나 실력도 돈도 안된다 사양하려했으나 누구누구 나오는지 이름이나 알자고 물어봤더니 어라 어라 어라, 작년 매몰차게 나의 전화와 메일을 거절했던 그 고객이 나온다네? 친구의 아는 후배라고. 세상에 이럴수가.
골프장은 강원도 문막에 있었어요. 제가 한국에서 주로 묵는 곳은 어무이 댁 용인 수지이므로, 차를 렌트하여 한 시간 반 원주까지 갔다 왔지요. 아직 초짜라 골프는 거지같이 치긴 했지만 더할나위 없이 쾌청한 날씨에 친구와 고객과 아름다운 자연 감상하며 정말 잘 놀다 왔어요.
복된 하루 보내고 차를 몰며 돌아오는 길에 이런 저런 생각이 드는거야. 우연이 필연 되기도 하는 인생, 어제의 해지 고객이 내일 재가입으로 돌아올지 모르니 인생은 살면서 계속 알아가는 것이야.
상념에 잠기다 보니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더라.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향하는데 20년 전 시드니 살던 때가 갑자기 오버랩 됩니다. 그 때도 주말 오후였을 것이야. 교외로 나들이 나가 해질 무렵 되어 차 몰고 돌아가던 중이었어. 8차선 도로의 종단 끄트머리로 자취를 흐려가는 석양을 보면서 Sydney I am coming home! I am young, I am ambitious, I will make my dream come true in this loveable city 의 다짐을 노을과 함께 날려 보냈던 기억이 있어.
그 때와 변함없이 아름답게 저녁 하늘 물들인 고속도로 용인 톨게이트의 노을을 보며, 이번에는 또 생각이 깊어지며 오히려 우울한 감정 들더라고:
My youth is over, just like the sunset.
희망이 책망 되기도 하는 인생, 같은 노을을 두고도 젊었을 때의 환희에 찬 감상이 중년의 회한으로 바뀌기도 하니 인생은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에요.

인생은 살면서 계속 배워가는 것이에요.
남성으로 태어나 학교에서, 사회에서 여성과 교류할 기회 적지 않고 결혼한 후에는 여성과 한 가정을 꾸려 생활도 하게 되지만 결정적으로 딸을 낳아 키워가는 과정이 남성으로 하여금 여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혀주는가 봅니다.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이코노 기사에 떴길래 공유합니다. 1992년부터 2017년까지 덴마크 회사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입니다.
왼쪽 표: 남자 상사가 첫 애를 딸로 두었을 때, 이 남자 상사의 여자 부하 직원들은 남자 부하 직원들에 비해 4% 월급 올라갑니다. 반대로 첫 애를 아들로 두었을 때, 이 남자 상사의 여자 부하 직원들은 남자 부하 직원들에 비해 2% 줄어듭니다.
오른쪽 표: 남자 상사가 첫 애를 딸로 두었을 때, 이 남자 상사의 여자 부하 직원 수는 남자 부하 직원 수에 비해 4% 더 늘어납니다. 반대로 첫 애를 아들로 두었을 때, 이 남자 상사의 여자 부하 직원 수는 남자 부하 직원 수에 비해 약간 줄어듭니다.

인생을 알아가는 경험 하나 더 말씀드리고 오늘 뉴스레터 접겠습니다.
다시 저의 이번 회사 재직 초창기인 2024년 말로 돌아갑니다. 일본에 적을 두고 있으나 한국도 맡게 되었으므로, 부모님 댁이 용인에 있긴 하지만 회사 일로 보면 비지니스 출장이 되어 초창기에는 주로 호텔에서 묵고 했었단 말이죠.
나는 우리 회사가 이렇게 돈 없는 회사인 줄 모르고 여느 실리콘 밸리 회사 다녔을 때처럼 서울 시내 5성급 호텔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어요. 출장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주로 Marriott계열에 묵으실 걸요? 저도 똑같습니다. 그래서 시청 앞의 플라자 호텔과 바로 맞은 편 웨스틴에 한 차례씩 묵었어요. 이 호텔들, 숙박비 싸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회사 매출 제대로 올려주지도 못하면서 비용만 축내는 저(低)가성비 사원이었던 셈인데 당시 회사 사정 잘 몰랐던 나는 어깨에 힘 이빠이 주고 고객들 만날 때는 택시만으로 이동하며 팔리지도 않을 제품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요. 가끔 밤에는 또 택시로 이동, 친구들 만나 늦게까지 술 먹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서 본사에는 오늘 고객 만나 회식 잘 했다고 얼버무려 보고하기도 했어요.
그날도 강남 어디에서 친구들 만나 술먹고 자정 무렵에 호텔로 돌아오는 길이었어요. 아마 연말이었을 거야. 세모(歲暮)의 서울 도심, 23시 55분을 알리던 그 시각은 눈발이 선선히 나리는 가운데 신세계 백화점의 큼직한 전광판을 통해 Happy New Year의 메시지가 영화 장면 한 컷 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가고 있었어요. 명동 한국은행 지나 남대문 시장 좁은 도로를 향하던 택시 안에서는 마침 FM 라디오로 흘러간 가요가 방송되고 있었고요, 누구누구 노래 나비소녀, 이 곡이 들려왔어. 한 번쯤 들어봤을 거야. 가사는 몰라. 사~랑의 나비소녀, 아마 이렇게 끝나.
취기를 품은 듯이 느릿느릿 지나가는 사람들 몇몇만 빼면 늦은 밤의 시장통은 인적 없이 조용했고, 상인들이 일 마치고 덮어 놓은 매대 위 모포로 떨어지는 눈발이 정중동(靜中動)의 대비를 선명한 여운으로 남기고 있던 그 때, 라디오 속 나비소녀는 산업화 한창이었던 60년대 70년대 풍운의 꿈을 안고 상경한 서울의 첫 겨울을 나며, 각박한 삶이었으나 그 속에서도 미래가 이따금씩 보이곤 했던 남대문 시장에서 도시 생활의 제 1막을 열었을 것이리라.
술에 취해서였나 아니면 그 때 그 시각의 몽환적 스테이지에 취했나, 나에게는 지금도 그 당시 묵었던 메리엇 호텔의 기억보다는 회현역에서 숭례문까지의 그 3분 구간이, 마치 박제된 필름처럼 흐릿하면서도 오히려 뚜렷한 것이야. 김승옥의 소설 주인공이 열차에 내려 맞이한 무진의 안개가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싶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