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의 연결' 주광입니다.
지난 뉴스레터에서 우리는 "도구보다 방식이 먼저다"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화려한 앱의 기능에 현혹되지 말고, 어떤 환경에서도 작동하는 '나만의 시스템'을 설계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도구를 선택하고 나면, 곧바로 또 다른 유혹이 찾아옵니다. 바로 '만능 템플릿' 에 대한 환상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생산성을 10배 높여주는 노션 템플릿", "제텔카스텐을 위한 완벽한 옵시디언 설정" 같은 매력적인 파일들이 넘쳐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유명한 생산성 전문가가 만들었다는 복잡하고 멋진 템플릿을 다운로드받아 적용했지요.
화면 가득 채워진 속성값, 태그, 상태 표시줄을 보며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요?
정확히 3일 뒤, 저는 그 템플릿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노트 하나를 쓰려고 열 때마다, 채워야 할 빈칸이 너무 많아 숨이 턱 막혔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남들이 좋다고 하는 템플릿이 왜 나에게는 짐이 되는지, 그리고 '나를 돕는 진짜 템플릿' 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남의 옷을 입고 달릴 수는 없습니다
왜 누군가에게 '완벽한' 템플릿이 나에게는 '독'이 될까요?
그 템플릿은 그 사람의 '사고 과정' 에 맞춰진 옷이기 때문입니다.
템플릿을 만든 사람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는 저자 이름, 출판일, 독서 시작일, 완독일, 평점이 꼭 필요해"라는 결론을 내렸을 겁니다. 그에게 그 칸들은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
하지만 이제 막 제텔카스텐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그 수많은 빈칸은 '생각의 도구'가 아니라 '서류 작성을 위한 숙제' 가 되어버립니다.
- 독: 템플릿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정보를 찾고 있다면, 그것은 주객전도입니다. 생각할 에너지를 '입력 노동'에 쓰고 있는 셈이죠. 특히 집중력이 쉽게 흩어지는 분들에게 이런 '마찰'은 습관 형성을 막는 가장 큰 적입니다.
- 약: 좋은 템플릿은 생각을 덜어줘야 합니다. "다음에 뭘 적어야 하지?"라고 고민할 필요 없이, 생각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가드레일' 역할을 해야 합니다.
템플릿 다이어트: '최소 기능'으로 돌아가기
"그럼 어떤 템플릿이 좋은가요?"라고 물으신다면, 저는 단호하게 말씀드립니다.
"가장 헐거운 템플릿이 가장 오래 살아남는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데이터베이스 관리'가 아닙니다. 내 '생각의 포착' 입니다.
따라서 템플릿은 데이터를 관리하는 형식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형식/ 이어야 합니다.
- (나쁜 예) 분류 / 날짜 / 태그 / 상태 / 중요도 / 관련 링크 / ... (행정 업무)
- (좋은 예) 이 정보가 왜 흥미로운가? / 내 삶의 어디에 적용할 것인가? (사고 촉진)
여러분의 템플릿에서 지난 1주일간 한 번도 채우지 않은 항목이 있다면 과감하게 지우세요.
단순할수록 생각은 자유로워집니다.
실습: 실전 템플릿 3종 (읽기 / 아이디어 / 프로젝트)
이제 거품을 쫙 뺀, 제텔카스텐을 위한 실전 템플릿 3가지를 소개합니다.
이것을 그대로 쓰셔도 좋고, 여러분의 입맛에 맞게 더 줄이셔도 됩니다. (늘리지는 마세요!)
1. 읽기 노트 템플릿 (입력용)
책이나 아티클을 읽고 나서 쓰는 노트입니다. 서지 정보나 요약보다 중요한 건 '나의 반응' 입니다.
제목: [책/글 제목] - [나를 사로잡은 핵심 키워드]
- 3줄 요약 (Source) (저자의 주장을 원문 그대로 베끼지 말고, 내가 이해한 언어로 3줄만 요약합니다.)
- 나의 생각 (Insight) (이 내용이 왜 나에게 중요한가요? 동의하나요, 반대하나요? 내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나요?)
- 실천 포인트 (Action) (이 지식을 바탕으로 당장 오늘 내 삶에서 바꿀 수 있는 작은 행동은 무엇인가요?)
2. 아이디어 노트 템플릿 (숙성용)
샤워하다가, 산책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잡는 노트입니다. 핵심은 '맥락 저장' 입니다.
제목: [결론부터 한 문장으로 강력하게]
- 배경 (Context) (왜 이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나요? 나중에 봤을 때 '내가 왜 이런 메모를 했지?' 하지 않도록 당시의 상황을 적습니다.)
- 확장 (Elaboration)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다면? 반론은 없을까? 덧붙일 살은?)
- 연결 후보 (Link) (내 노트 저장소에 있는 다른 어떤 노트와 연결될 수 있을까?)
3. 프로젝트 노트 템플릿 (출력용)
일의 진행을 위한 노트입니다. 자료 수집보다 '다음에 할 일' 이 중요합니다.
제목: [P] 프로젝트 명
- 목표 (Goal) (이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을 때의 모습은? '완료 조건'을 명확히 적습니다.)
- 작업대 (Resources) (관련된 원자적 노트들의 링크를 여기에 모으세요. 창고에서 재료를 꺼내오는 과정입니다.) - [[관련 노트 1]] - [[관련 노트 2]]
- 다음 행동 (Next Action) (지금 당장 해야 할 물리적인 행동 하나는? 예: '자료 조사하기' (X) -> '김 대리님에게 메일 보내기' (O))
과제: 나의 템플릿 '부수기'
이번 주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대신, 기존의 것을 부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 점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노트 템플릿이나 형식을 꺼내보세요. (만약 없다면, 인터넷에서 좋다고 해서 받아두었던 것을 꺼내보세요.)
- 삭제: 그 템플릿에서 "솔직히 이건 귀찮아서 잘 안 쓴다" 싶은 항목을 빨간 줄로 그어버리세요.
- 질문: 남은 항목들이 "행정적 정보"인지, "나에게 생각을 시키는 질문"인지 판단해보세요. 질문형으로 바꿔보세요.
그렇게 살아남은 앙상하지만 단단한 뼈대,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진짜 시스템입니다.
마지막으로,
템플릿은 주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주인이고, 템플릿은 그 생각이 새지 않게 담아두는 그릇일 뿐입니다.
그릇이 너무 화려하면 음식이 보이지 않습니다.
오늘부터는 투박하더라도 내 손에 딱 맞는 그릇에, 여러분만의 맛있는 생각을 담아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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