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

가다 보면 언젠가 사랑을 만나지 않을까요?

2022.12.06 | 조회 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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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나는 생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았던 기억이 많지 않기 때문이고, 나도 모르게 의미를 부여하고 기대해 버리기 때문이다. 기대는 실망을 부른다. 적어도 최근 몇 년 간의 생일에 이불 속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울지 않은 적이 없는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서러웠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거창한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살아남았다는 미안함, 살아 있다는 막막함. 그걸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날이 생일이어서 나는 1년이 364일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타인의 생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나는 어떻게든 그가 자신의 탄생을 덜 슬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분주해진다. 그날이 가까워지는 걸 즐겼으면 해서 한 달 전부터 생일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사소한 선물들을 안겨 준다든가, 당일의 열두 시 땡!과 열한 시 오십구 분을 챙기는 건 기본이다. 지금 가까운 이들과 영영 가까우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가까울 때 좋은 기억을 많이 심어 주고 싶다는 것이 나의 욕심이다. (물론, 그러다가 부담스럽다고 차인 경험도 있다.) 

나는 늘 사랑이 고픈 사람이었다. 굶주린 마음을 부둥켜 안고 우는 것은 일상다반사였고, 애정 공산주의를 외칠 만큼 사랑받는 이들에 대한 열등감이 심하기도 했다. 『인생의 역사』에서 신형철이 말했듯, "우리를 평생 놓아 주지 않는 물음은 '나는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이고, 그 물음은 깊은 곳에서 '나는 네가 욕망할(인정할) 만한 사람인가?'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므로 우리는 타인에게 받는 마음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사실 생일이라는 건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을 받고 있다는 것을 가장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날에 불과할 뿐, 그 외의 날들에도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사회적인 동물로서 당연한 본능이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의 그 본능을 충족시켜 주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외로워 본 적이 있기 때문일까. 최소한 내가 아끼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그들이 당장 누군가의 사랑을 필요로 할 때 나를 그들의 손에 쥐여 주고 싶다. LOVE WINS. 내 사랑이 언제나 이겨. 좌우명과도 같은 말이다. 그만큼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에 진지하고, 진심이다. 내가 유일하게 끈기를 가지는 일 또한 사랑이다. 나는 모든 유형(?)의 사랑을 사랑한다.

자신 있게 외치고는 있지만, 때로는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다. 내가 아무리 사랑을 쏟는다고 해도 상대방과 어떤 의미로든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내 사랑은 그에게 부담이 되거나 거치적거릴 뿐일 테니까. 하지만 그런 걱정이 들수록 내가 할 수 있는 건 마음을 더 빳빳하게 다리는 일이다.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으므로. 

사랑이 모든 이의 모든 순간에 정답일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사랑뿐이라서 나는 오늘도 사랑을 한다. 나의 사랑하는 이가 나에게 기대서 끝까지 갈 수 있도록. 그래서 그와 나만의 튼튼한 사랑과 만날 수 있도록.

 


 

<미지의 2022년 결산>

1월: 선한 마음으로,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을 글을, 천천히.

2월: 모든 것은 그냥 일어나기도 한단다, 내겐 부리밖에 남지 않았지만 나의 부리로 네 깃털을 가다듬고 윤을 내어 줄게, 그럴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싶어도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니까, 그 일들이 너를 미워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니까, 이제 너를 아프게 하는 것으로 세상을 벌주려 하지 말아, 올겨울에는 연탄난로 곁에서 같이 얼린 홍시를 나눠 먹어야지. (박상수,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기도 하지」 中)

3월: 눈을 맞추면서 곁에 누가 있는지 확인한 우리에게 다가올 아침은 오늘과 같지 않을 거야. 더 단단한 아침이겠지. 여기서부터 다시 뛰자. 서로 바톤을 넘기기도 하면서.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를 믿어. 아름답고, 유연하고, 여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우리를.

4월: 무엇보다 낭만을 잃지 말 것.

5월: 한번이라도 채워지고 싶으니 나를 추앙해요. 사랑으로는 안 돼.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中)

6월: "미지 씨는 참 꿈결 속에 사는 사람 같아요."

7월: 계속해 보겠습니다.

8월: "언니는 왜 다른 사람이 궁금해?"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물음을 오래 생각했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내린 답은 "믿고 싶어서"였다. 결국의 결국에는 선한 의도가 남는다는 것을 믿고 싶어서. 그리고 그걸 확인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타인을 궁금해하고 들여다보는 것이다. 참으로 이기적인 믿음과 호기심이 아닐 수 없지만, 세상에는 이런 마음이 있을 자리도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9월: 사랑이 언제나 제철이기 위해서, 그리하여 끝물이 없는 문장들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할 것.

10월: 침잠에는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11월: 결국 나를 깨우고 키우는 것은 사랑이다.

 


 

정다연 시인의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를 주연에게 선물하며.
정다연 시인의 『서로에게 기대서 끝까지』를 주연에게 선물하며.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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