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별일 없이 산다

별일이 없어도 마음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2023.08.15 | 조회 2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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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입추가 지났다. 나무를 간지럽히는 바람이 한결 가벼워졌다. 햇빛은 아직 강렬해서 이따금 얼굴이 따갑다. 오늘은 오랜만에 카페모카를 마셨다. 사실은 아니다. 내가 마신 커피의 이름은 ‘코코런라떼’였다. 생초콜릿이 들어간 라떼였으니 카페모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이 아닐 뿐.

무탈하게 산다고 하는 것과 별일 없이 사는 것은 얼마나 같고 다를까. 요즈음의 나는 무탈하다기보다 별일 없이 사는 것에 가깝다. 별일이 없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없다는 것, 즉, 대단히 나쁜 일도, 대단히 좋은 일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 나날들을 무탈하다고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탈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별일이 없어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움직이지 않는 마음은 곧 글을 쓰고 읽을 수 없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나는 더욱더 ‘없음’에 가까워진다. 생각도, 감각도 없이 그저 살아지고 있는 상태. 나는 그런 상태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싸움을 반복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략법을 알지 못한다.

사실 이 상태는 무적에 가깝다. 선택하지 않으므로 책임을 질 일도 없고, 충동적이지 않으므로 후회할 일도 없으며, 어떻게든 흐름에 맞춰 살아가고는 있기 때문에 손가락질 받을 이유도 없다. 말하자면 내 마음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가장 편안하고 평온한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마음이다. 그 빌어먹을 영혼.

마음, 그러니까 나를 이루고 있는 영혼은 별일 없는 하루들을 멸시한다. 언제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어째서일까? 나는 게으른 사람이고, 게으름을 즐기기까지 한다. 그런데 마음이 게을러지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재미없고, 교훈도 없으며, 평탄하게 이어진 길을 보면 되려 막막하게 느낀다. 그 길 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나의 몫이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다. 나는 그것을 견디지 못한다. 쓸모가 없는 나를.

별일 없이 살기보다 차라리 슬픔에 복역하고 싶다.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고 바라고 싶다. 어떤 감정을 충실히 누리고 싶다. 그럴 때 가장 쉬운 방법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상대방에게, 상대방을 향한 나의 감정에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부지런하게 만들고, 공허함을 없애 준다. 그것이 비록 짝사랑이라고 할지라도.

산문집 원고를 받아 본 편집자님이 “사랑을 통한 존재의 증명”을 말씀하셨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삶의 태도를 정확하게 알아봐 주었다는 것에 쑥쓰러움과 뿌듯함을 동시에 느꼈다. 이런 사람이 나의 첫 편집자라니! 정말 그렇다.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부단히도 사랑해 왔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찾아 헤매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에 빠져 있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나에게도 밀어내고 거절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러니까, 사랑할 수 있다면 아무나 괜찮은 것이 아니다. 애초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나‘가 될 리 없기도 하고. 대신, 이미 사람 대 사람으로서 좋아하고 있는 사람을 연애 감정으로 바라보는 게 좀 더 수월한 타입의 사람이기는 하다. 어떤 의미로든 한 번 좋아한 사람을 다시 좋아하고 더 좋아하기는 너무 쉬운 일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별일 없이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은 사랑 없이 살고 싶지 않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란 언제나 대단히 별일이니까. 그래서 요즈음의 나는 사랑에 빠지기 위해 여기저기 발걸음을 옮겨 보는 중이다. 내일이라도 당장 발을 헛디뎌 ‘별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면서.

 

 


 

안녕하세요, 여러분! 미지입니다.

폭염이 조금 사그라든 요즈음,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저와 주연은 심신의 컨디션 이슈로 지난 한 주 휴식을 가졌는데요. 주연이 아직 회복되지 않아 제가 먼저 인사를 드리게 되었답니다. 오늘의 글처럼 저는 별일 없이 살고 있어요. 그럴 때의 저는 보통 두 가지 단계로 나뉘는데요. 한없는 무력함에 잠겨 있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뭐라도 나랑 맞부딪혀라! 하면서 밖으로 나가곤 합니다. 지금은 2단계를 겪고 있는 중이고요. 쉽게 말하자면, 사랑을 찾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대상이 사람이 되었든, 어떤 이야기가 되었든, 혹은 물건이 되었든, 무엇이든 간에요. 그렇습니다. 저와 사랑에 빠져 보실 분들은 010-7***-***0으로 연락 주세요. 장난이에요.

저는 대구에 위치한 <아무의 방>에서 오프라인으로 편지를 쓰는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기도 하는데요. <아무의 방> 인스타그램에 저와 아무의 방 지기님 둘이서 책을 추천하는 콘텐츠가 주기적으로 업로드될 것 같아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책을 읽고 싶은데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베스트셀러보다 좀 더 특색 있는 추천을 받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아무의 방>을 팔로우하시고 지켜봐 주시면 좋을 것 같기도 하네요. 링크 남겨 둘게요.

주연이 회복되는 대로 함께 찾아뵐 수 있도록 할게요. 가능한 저라도 자주 뵐 수 있도록 해 볼 거구요. 언제나 읽어 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외롭지 않게 쓰고 있어요.

‘별일’은 있더라도 탈은 없는 하루들 보내시기를! 사랑해요!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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