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 Rest Energy

Marina Abramovic

2022.12.16 | 조회 4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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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나는 동정도의 구간을 모두 마을이라고 부른다 하품과 한숨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

너무 쉽게 사람으로 태어나서 나는 내가 무서웠고

그러나 내가 사람이고 너 역시 사람이라, 돌담이 높게 쌓인 섬이나 원형으로 도는 배 위에서 중력을 견디는 방식으로, 네 생일을 두 번씩 챙겨줄 수 있어 좋았다 얼룩을 토하는 헌 노트에서도 네 이름이 번식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디선가 들은 말을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는 하루에 하늘을 몇 번씩 봐?

하늘을 자주 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래

세상에 있는 모든 길은 포장되었거나 포장되지 않음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나에게 사랑은 어느 정도 위치적이라

도로 한가운데에 누운 너와 내 친구를 바라보던 그날, 나의 빈손과 두 발이 땅을 밀어내던 힘을 잊을 수 없지만

고등학생 시절 평생을 이 건물에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곳의 근방에서 나는 애인과 함께 이 년을 살았다 중문이 있는 원룸에 머무른 지 일 년이 더 지나서야 여기가 거기,인 걸 알았다 나는 학생 시절과 키가 같지만 굽이 높은 신발을 신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시선의 높낮이가 조금 달라졌고 무엇보다 그 아이를 내려다보느라 아이를 업고 여러 번 그를 던졌다 받느라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기뻐서 여기가 거기여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동정도의 구간을 모두 마을이라 부르고 눈 속에 점이 있고

사랑해를 일찍 말하는 사람이 싫고

마라탕보다 마라샹궈가 좋은데

술을 마신 뒤 마라를 먹으면 삼 일을 내리 아프다

 

그 아이는 우리가 처음 만나 함께 커피와 베이글을 먹은 지 일주일 만에 내게 사랑한다 말했다 흰자위가 지저분해 보여서 충혈도 점도 싫었으나 너 눈에 점 있네라고 걔가 말하는 순간

나는 그때부터 더 이상 싫은 것들이 싫지 않아졌다

동기들이랑 마라탕 먹으러 왔어

너 어제 술 마셨잖아 먹지 마

 

그래 나는 네가 걱정했으면 해서 부러 다치기도 한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트롤리 베이커에는 여덟 개의 베이글과

네 개의 크림치즈가 종류별로 맛있고

 

라는 문단으로 시작하는 시를 적은 적도 있다

 

우리 선대, 엄마의 엄마나, 너무 진보적이어서 이상한 미래관을 가질, 아이의 아이들은

바다나 이야기를 어떻게 여길까? 타행성에서도 사랑해는 여전히 사랑해인지, 라는 중학생의 어느 시처럼, 그때에도 마름모는 여전히 마름모 환승역은 여전히 환승역 레코딩은 여전히 레코딩 보고 싶다,는 여전히 볼 수 없어, 인지

 

서로를 경찰에 신고하고 네 달이 지났다

 

일 년 전의 오늘에 우리는 태풍이 불던 우도에 가서 뿔소라를 깨 먹었고

일 년하고도 한 달 전의 나는

가족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이를 울렸고

너를 위로하며 동시에 위로받았고

네가 내 삶에서 언제까지 크겠어 늘 기억의 소모는 있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내가 너를 만나려고 그렇게나.

라는 문장의 재수 없고 본격적인 일기를 적었다

내 일기에는 친구들이 몇 등장한다 나만 볼 수 있어서 혼자 자주 열어보는 노트에 그들이 적힌다는 건

아주 나중과 만약에 친구가 죽거나 싫어져도 슬퍼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슬프고 빨간 나를 보관할 정도로 너희가 좋아서 방어 역시 않겠다는

 

<정민과 머리가 자꾸 부딪히는 복층을 가진 오피스텔에 누워 A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들을 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도 모르는 (딱 한 명 정이 혼자 아는) 여태껏 내가 의도적으로 숨긴 것-을 모두 말하게 되었는데

 

내 이야기를 하는데 정민의 눈가가 붉길래 나는 이미 세상에 있는 모든 언어를 다 가져서 먼저 조립한 위로들을 건네받은 기분이었다. 이런 거 드라마의 진부한 장면인데 그래도 나는 얘가 울어서 오히려 안아주고 싶었다. 우는데 좋았다. 기뻤다. 내 사정 같은 건 하나도 나쁜 일 같지 않았다.

 

내가 비밀을 말하면 정민이 울고 그럼 나는 정민을 껴안으면서 위로하고 동시에 위로받는다. 위로받으려고 내가 그랬구나. 너를 만나려고. 네가 내 삶에서 언제까지 크겠어 늘 기억의 소모는 있으니까. 그래도 지금은

내가 너를 만나려고 그렇게나.>라는 일기를 더 이상 혼자 볼 수 없기에 혼자 보면 슬프기에 이사하는 식물처럼 흙째로 퍼 와 이곳에 담는다

 

정말 재수 없군

슬프군

 

영원 사랑 결혼 가족

허울 없이 듣기 좋으라고 그런 게 어딘가에 있다고 언급하면서 누구도 진상을 알지 못하는 단어에 대한 정서, 보았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의 생김새를 물으면 눈을 피하는 자들의 무조건적인 믿음이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싫었고 뭘 알아? 네가 봤어?

화가 나고 나는 제대로 꼬인 사람이라

그래서 아냐고

알면서도

고개 끄덕이냐고* 따지고 싶어서

 

나는 언뜻 보기에 사랑을 믿는 사람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너를 생각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도 결국 너를 생각하는 거니까

 

MRI를 찍을 때도 안정제 주사를 맞고 기계 속에 들어갈 정도로

폐쇄된 곳을 병적으로 피하는 내가 천장이 가깝고 이불보가 두꺼운 복층에서

전혀 하늘(이랄 것도 없는)을 올려다보지 않아도

충만했던 그날

 

잠시 나와 네가 동시에 느낀, 머리 위를 둥둥 떠다니던 그것이 사랑이라면 여러 번 나는 날아다니는 사랑을 밧줄로 묶어 마음에 걸어두었다고

언제든 꺼내어 강에서도 산에서도 찍어 먹을 수 있으니 영원이라는 것 역시

 

그것을 믿는다고는 안 한다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있다고 확률의 문을 열어두거나

있었다고 잠시 착각할 수는 있겠으나

 

너는 알고 있잖아 내가 매번 영원영혼신사랑 그런 것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거 귀신 이야기를 하면 귀신이 오는 것처럼 최대한 그것을 욕해서 영원이 화가 나서 화를 내러 나한테 왔으면 해서 이러는 거

영원이 오면 무슨 말을 할지도 나는 모두 생각해두었다

 

삼 일 전에는 엄마가

 

이별이 좋은 점 한 가지

살아있을 때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

 

이라는 문자를 보냈고

 

우리가 더 이상 연인이 아니었을 때 함께 들린 본가에서

자다 깬 엄마와 네가 서로를 힘껏 껴안았는데

여전히 너는 나의 엄마를 엄마라고 부른다

우리 엄마거든? 그러니까 네 엄마도 되겠다

 

현대의 신전에는 사람 없이 교차되는 기도만이 생사를 확인하는, 지름길이자 오르막인 언덕이 되었다

또 나는 항구와 무관한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 키가 크거나 작은 사람을 바라보느라 소항구에 가서도 그곳이 물 위임을 모르게 되고 그래서 너를 그곳에 두고 올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나의 생

너를 줍는 건 너여야 하고

그것은 너의 생

너의 생이란 내가 잠깐 들렀던 좋은 곳이다 너는 뭐든 잘 할 거야

 

네가 싫으면 당연히 너에 대해 적지 않겠다고 말했더니

너는 티백이 찢어질 때까지 너를 우려먹으랬지

 

<?>

<네가 나에 대해 말하는 게 좋아서>

 

나는 우려낸 차를 마시지도 못하고 이게 다 식으면 도랑물 있는 근처 초원에 죄다 뿌리려 했으나

정체가 뭐길래 스스로 보온을 하는 컵 속 네 전부 담겨있는지

 

네가 이걸 읽는 거 안다

 

거짓말처럼 이 글이 올라갈 열두 시는 네 생일이고

고작 문장뿐이지는 않은 마음으로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사람이 죽을 때 미사여구 붙이지 못한 말을 귓가에 속삭인대

미안해 사랑해 너무 많이 엄청 완전 아주아주

같은 말밖에 생각이 안 난대

 

네가 태어나서 나는

너무 많이 엄청 완전 아주아주 기쁘다

 

겨울에 태어난 너의 옆구리에 눈의 방파제를 지어두고

단추 없는 털옷 속에 너를 가두거나

번지지 않는 불씨를 입에 머금어 그걸 핑계로 네 이어지는 점들에 입 맞출 수도 있겠지만

 

웅성대는 크리스마스 양초들과 오너먼트 속에 이렇다 할 한밤의 꿈을 함께 장식해둔다

 

생일 축하해

구체적인 권유를 좀 하자면

 

바다에서 집까지 걷지 말고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오늘 하루 나보다 더 기쁘길

이번 계절 네가 세상에서 가장 눈을 많이 본 사람이었으면

그것이 한때는 나의 꿈이었으나 네게 먼저 양보한다

 

우리는 마모되었고 태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죽는 게 상책이었다

 

무정형의 결정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 징그러운 단선적 포괄

세상이 세상이라는 말로 퉁쳐질 수 있다니

네가 고작 사람이라는 종족 안에 가둬질 수 있다니

그러나 너는 사람이고 사람이어서 태어났고

그러니 태어나줘서 진실로 고맙다

너의 아름답게 회전하는 내부

여전히 내가 너를 만나려고 그렇게나,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고 기우뚱거리는, 마음이란 이름의 천막 속에서도 같이 살지 말 걸 하는 후회 한 번 한 적 없네

너를 욕해서 네가 화가 나서 나를 보러 오면 좋겠지만

너 생각하면 날개 녹아 추락하는 신화나 서늘한 이상기후 매뉴얼이라는 것들까지 모조리 사랑스럽다

마음이 환하다

나와 네가 교대로 라인을 변경했던 극지. 너를 사랑해서 비참했고 것보다 자주 너를 비참하게 했어

안 와도 된다 이제 괜찮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서로의 꿈속에 자주 들리기로 해

 

* 김승일

 


 

<주연의 "사랑이란?">

12/05: 느린 마을 막걸리에서 우리 다 같이 나누던 대화

12/06: 부르면 오는 거

12/07: 팔천 원짜리 크리스마스카드

12/08: 혼내지 말라고 적힌 쪽지를 지갑에서 못 빼는 거

12/09: 곁에서만 잘 자는 거

12/10: “너니까, 너라서, 너 때문에 지옥에 있었지

12/11: 사랑이 뭐냐고 김민희처럼 () 너한테도 묻고 싶은 거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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