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변태가 변태할 수 있는 법

2023.08.05 | 조회 2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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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그러니까 그런 거지. 나는 언제나 단정하고 다정한 사람이고 싶어 하고, 그런 모습만을 노출시키고 싶어 하고. 물론 그런 모습도 나의 일부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닐 테니까. 한계를 빨리 느끼는 거야. 글을 쓰고 읽히는 사람으로서의 한계 말이야. 누구나가 그러하듯 나 또한 다양한 면을 가진 입체적인 사람인데, 내가 보이고 싶어 하는 면만을 골라서 보이고 싶어 하니까. 그런 사람이 쓰는 글이 모두 거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진실된 알맹이를 느낄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싶은 거야.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 마음으로는 글을 쓰고 싶지가 않았어. 그래서 여기서부터 시작해 보려고 해. 그 마음에 대해 털어 놓는 글을.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열등감에 몰두해 있는 사람이었고, 의식도 하지 못한 채로 수동 공격을 휘두르곤 했지. 소위 말해 미치지 않기 위해서 활자 형태로 마음을 토해내는 나날들이었어. 그 시절의 나는 분명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뾰족한 말을 많이 던졌을 거야. 확신처럼 그렇게 믿고 있고, 그러므로 다시 돌아가기 싫고, 돌아갈 수 없다는 저항감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어려웠어. 사실 지금도 어려워. 잘 안 돼. 어색하고 낯설어. 나의 어둠을 내보인다고 해서 그 어둠이 시작되었던 때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나에게 설득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 글의 힘을 너무 믿는 탓인 걸까. 쓰는 대로 흘러갈 것 같고, 쓰는 동안 그것이 나의 현재라고 믿어 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사소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에도 디테일에 집중하려고 하는 편이야. 그리고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 변태. 공개적인 곳에서 말하기는 조금 꺼려지는 부분을 포함해서 나는 변태에 속하는 사람. 서로가 변태임을 알아본 Y가 “변태는 잘해”였는지, “변태는 빨리 하지”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 말을 했는데,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답했어. “변태의 변태하기.......“ 무언가 감을 잡은 듯한 기분이 들었지. 한 겹의 허물을 벗으면 되는 거였어. 내가 내보이기 두려워했던 부분들이 눈에 띄기 시작하겠지만, 동시에 내가 보이고 싶어 했던 면들이 더 또렷하게 보이기도 할 거야. 그러면 나는 자연스럽게 나를 향한 마지막 시선이 후자에 닿도록 유도를 하는 거지. 나쁘지 않은 변화일 거라고 생각해. 사람들은 보통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으로 사람을 기억하고 판단하니까. 내가 그들에게 언제 어떤 면을 보여 주는지 타이밍만 잘 헤아린다면 나의 강박과도 같은 바람을 이룰 수 있겠지.

이 글을 쓰기 전까지도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내적 갈등을 겪었는데, 언젠가 결국은 써야만 하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열 손가락이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었어. 내가 원하는 ‘좋은 글’과는 거리가 멀지만, 스스로를 치유하고 독려하는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는 글인 것 같아서 “뭐 어때” 정신을 좀 가져 보려고 해. 

맞아, 나 변태야. 그래서 뭐? 변태하고 나면 더 변태 같을걸? 재미있겠지?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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