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이별의 애도 기간은 언제까지인가요?

49제가 끝나면 새로운 사랑이 오나요?

2022.12.20 | 조회 1.2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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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미용실에 다녀왔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내가 이별을 맞이하는 루틴 중 하나로, 그 외에 도피성 수면과 타로 보기가 있다. 흔히 [ 도피성 수면 - 타로 보기 - 미용실 방문] 순으로 이루어진다. 열흘 가까이 컨디션 난조를 겪은 후―사실 아직도 진행 중인 것 같다― 어제는 타로를 봤고, 오늘은 글을 쓰겠답시고 세 시간 동안 아무 소득 없이 카페에 앉아 있다가 십 분 만에 근처 미용실을 예약하고 방문했다. 레드벨벳 웬디의 최신 헤어 스타일을 따라 하고 싶었으나, 드라이에는 영 소질이 없는 관계로 그냥 칼단발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미용실을 나서는 뒷목이 시려웠다. 오른쪽 볼과 뒷목을 감싸던 손 같은 건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추울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일요일, 시내를 걷다가 불쑥 동행인에게 "나 타로 봐도 돼?" 묻고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함께 있을 때 가 보자고 이야기가 나왔던 곳이었다. 타로는 잘 맞았다. 과거의 우리가 궁금해했던 색채 타로의 결과 또한. 딱 하나만 빼고. "이번 달 안으로 연락 온다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혹시나, 하는 기대도 줄어든다. 세상이 타로처럼 흘러갈 리는 없으니까. 믿음의 역이용이랄까―물론 연락이 오지 않을 거란 말을 들으면 곧이곧대로 그럼 그렇지, 하고 믿는다―. 그리고는 이상한 안심이 된다. 정말 안 오는구나. 아직 남은 이 사랑의 중심에서 내가 아무리 소리치고 넋두리를 한들, 끝은 끝이구나. 자,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롭게 알게 된 이가 말했다. "'나'라는 자아가 있고 나서 타인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대답했다. "난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게 내 자아 그 자체라고 생각해."

자아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철학적 탐구를 차치하고서라도 나의 대답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사랑으로 움직이는 인간인 걸까. 이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답을 번복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실이니까. 나에게는 수많은 '나'들이 있고, 누군가와 관계를 형성하면서 오직 그만이 아는 '나'가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 그를 사랑하는 '나'는 '나'의 일부이면서 전부일 것이다.

누군가가 말했듯 사랑은 태도이자 의지일 수밖에 없다. 한순간의 설렘은 개인의 의지의 영역을 완전히 벗어나 있으나, 그 감정을 내일로, 다시 내일로 이끌고 가 '사랑'이라고 명명하는 데에는 명백한 '나'가 관여한다. 인간을 사랑의 숙주로 보는 관점에서도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사랑이 '나'에게 찾아온 것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와 의지가 사랑을 사랑으로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하는 자는 모두 '나'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래, 나는 온전히 나여서 너를 사랑했다.

그래서 너를 잃는 게 나를 잃는 것처럼 힘겨웠다.

그뿐이야.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날 것이다. 네가 그러할 것처럼.

 


 

<미지의 버킷리스트>

12/12: 도쿄 키치쵸지에서 가능한 오랜 기간 머물기.

12/13: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에 오르기.

12/14: "차례차례 사랑이었던 것들과 함께 깔끔한 아침을 먹는 것" (김소연, 달디단 꿈 1 中)

12/15: 세상의 모든 노래를 네 목소리로 듣는 것.

12/16: 사랑하는 사람들을 찍은 필름 사진으로 전시회 열기.

12/17: 베스트셀러 칸에 꽂힌, 내 이름으로 된 책 쓰다듬기.

12/18: 내일을 미루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잠들기.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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