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 삶과 생활 사이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2023.02.14 | 조회 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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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

 

사랑이 없는 삶은 삶이 아니라 생활이었다.”

이 한 문장에 사로잡혀 인생을 삶과 생활로 나누기 시작한 지가 언제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서 생활이란 사회적인 존재로서 해야만 하는 것들이었고, 삶은 취향과 취미, 넓게 말하면 사랑의 영역이었다.

나는 생활을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약한 소리라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성정을 타고난 것 같다. '내키지 않는 일'을 참고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면서도 주눅들기 일쑤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사랑하지 않는 일에 에너지를 쏟고도 화가 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삶에 빠져들었다. 그러니까, 사랑에 매달렸다는 뜻이다.

취미는 사랑, 특기는 순종. 나를 소개할 때 자주 썼던 말이다. 생활의 바깥에서 나는 누구와도 다투고 싶지 않았고, 진심으로 사람을 미워해 본 적이 없었다. 타인을 전부 이해하고 포용하지는 못하더라도 존중은 할 수 있었다. 그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타인에게 순종함으로써 나와 내 사랑의 가치를 찾는 사람이었다.

 

겨울의 초입에 썼던 일기를 빌려 와 글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 누군가 문장으로 구축한 사랑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가 너에게 위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활자가 방 한 켠에 있다는 사실이 너를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

소중한 이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안겨 주며 쓴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참고로 말하자면 성인이 된 후의 나는 소설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축에 속했다. 진득하지 못한 탓에 다른 책(주로 시집)으로 새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몇 장 넘기지도 않고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소설을 찾고 있었구나. 내가 운명을 느낀 이유들 중 하나가 다음 인용문에 있다.

 

사랑은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이익이었고, 세상의 가장... 큰 이익이었다. 천문학적 이익이란 아마도 이런 걸 뜻하는 게 아닐까, 무렵의 나는 생각했었다.

그것은 묘한 경험이었다.

작은 씨앗과 같은 것이었고, 납득할 수 없는 경로를 통해 내면에 스며든 것이었다. 그리고 서서히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던 느낌... 자라던 줄기와 피어나던 색색의 꽃을 잊을 수 없다. 길을 거닐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가상의 나무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스스로가 키워 올린 나무였고 이미 뿌리를 내리고 선 나무였다.

나는 여전했지만 여전하지 않았고, 예전과 달리 누가 누구와 헤어졌대, 누가 누구를 버렸대... 주변의 속삭임에도 마음을 아파하는 인간이 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다는 말은, 누군가의 몸 전체에 ―즉 손끝 발끝의 모세혈관에까지 뿌리를 내린 나무 하나를, 통째로 흔들어 뽑아 버렸다는 말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뿌리에 붙은 흙처럼

딸려, 떨어져 나가는 마음 같은 것... 무엇보다 나무가 서 있던 그 자리의 뻥 뚫린 구멍과... 텅 빈 화분처럼 껍데기만 남아 있는 누군가를 떠올리는 상상은... 생각만으로도 아프고, 참담한 것이었다. 그런 나무를 키워 본 인간만이, 인생의 천문학적 손실과 이익에 대해 논할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 믿음엔 변함이 없다.

 

이 소설을 마주할 때마다 머뭇거리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인물의 내면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줄임표와 쉼표의 사용 그리고 적절한 줄 바꿈 덕분이리라. 나는 산문을 쓰던 청소년기에도 문장을 반복해서 소리 내어 읽어 보고는 했는데, 물 흐르듯이 입으로 잘 옮겨져야 만족할 수 있었다. 숨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예를 들면 한숨을 내쉴 때처럼─은 발화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언어 외적인 정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을 탁월하게 인쇄 언어로 옮긴 것이 바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였고, 그 이후에도 나는 이런 장점을 가진 소설은 읽지 못했다. (이 글을 쓰면서 느낀 건데, 나는 이 소설처럼 쓸 자신이 없기 때문에 소설을 쓰고 싶지 않은 것 같다.)

그 외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좋아하는 이유들은 사실 평범하다. 마음을 사로잡은 문장들이 많았고, 인물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동화되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외모 자존감이 굉장히 낮은 편이었다. 청소년기에는 거울을 피해 다니기도 했고, 버스에서 누군가가 나를 대놓고 찍으며 낄낄거렸던 적도 있었다. 그런 내가 소위 못생긴여자로 그려지는 이 소설 속의 인물에게 어찌 마음이 가지 않을 수가 있을까. 그 외에 가난, 계급 등의 사회적인 불공평함들이 이 이야기 속에는 잘 녹아 있다. 내가 가장 헤져 있다고 느꼈을 때에 나는 이 허름한 청춘들을 만났고, 그 덕분에 내 마음은 폐허 직전에서 멈출 수 있었다. 언젠가 나도 그런 글을 쓸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마음이 최악으로 향하는 것을 멈출 수 있는 글을.

 

 


 

 

이번에는 '좋아하는 소설'에 대한 질문을 받아서 그와 관련된 글을 써 보았답니다. 저는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대해 썼구요. 주연은 어떤 소설을 고를지 저도 기대가 되네요! 그 외에도 다양한 의견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부담 없이 남겨 주세요. 언제든, 어떻게든 답할게요. 

 

 

<흑심; 내가 사랑한 모든 존재들에게>는 선인장도 안아 주는 '미지'와 고양이처럼 나뒹구는 비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주연'이 함께합니다.

· 미지: poem.aboutyou@gmail.com / 마음을 기다리고 있어요.

· 주연: micoks2@naver.com / 답장에 답장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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