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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의 하루_06

릴레이 글쓰기_6번 주자 적문이 쓰다

2024.04.27 | 조회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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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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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가움에 아부의 꼬리가 부르르 떨렸다. 틀림없었다. 티파니와 함께 수십번도 넘게 봐왔던 그 돌멩이. 당장이라도 파니! 하고 부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할 수 있는 건 저 험악한 개구리를 피해 최대한 빨리 그 안으로 날아드는 것뿐이었다. 삶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날갯짓으로. 조금만 더, 그렇게 되뇌며 힘을 짜내는 아부였다. 

 끊임없이 파닥대던 아부의 날개가 흔들리는 것도 그때였다. 일순 불어오는 바람, 홱 끼치는 커다란 그림자. 어느 틈에 뛰어오른 개구리임이 분명했다. 피해야 해. 지금 바로 피해야 해. 혀가 닿는다면 끝장이야. 하지만 어느 쪽으로? 흔들리는 저 부들 사이로? 눈 딱 감고 하늘 높이 날아볼까? 차라리 몸을 틀어 뒤편으로? 짧은 시간동안 아부의 머릿속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두려움에 멈칫거리는 자신의 날개는 미처 생각지 못한 채.

 이내 섬찟한 기운이 아부의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아니 기운만이 아니었던가. 어느새 느껴지는, 기분 나쁠만큼 축축한 감촉. 그와 동시에 아부의 가는 몸이 위 아래로 흔들렸다. 끝났다. 이제 끝이다. 순식간에 입으로 끌려들어가겠지. 통째로 삼켜져 어둡고 끈적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거야. 그러고 나면 나는 없겠지. 아아, 바다도 하늘도 달님도, 이제는 더 이상 못 보는 거야. 그 모두에게 건넬 인사도 준비해 두었는데, 영영 못 하겠지. 파니는 제발 이렇게 끝나지 않았기를. 하루의 삶마저 허락되지 않는 자신의 삶을 한탄하며, 그렇게 아부는 질끈 눈을 감았다.

 파다다닥, 퍽, 퐁당.

 눈을 떴을 때 완전한 암흑을 보리라 생각한 아부에게 보이는 건 하천의 저녁 풍경이었다. 부들도, 저 구름도, 졸졸 흐르는 물도 여전했다. 천변 모랫바닥에 엎어진 채 아부는 생각했다. 나 아직 안 죽은 건가? 긴가민가하며 뒤를 돌아보니 개구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수면에 동동 이는 파문뿐이었다. 나 안 죽었나봐, 나 살았어! 살았다고! 하는 환희와 안도감도 잠시 무언가와 부딪힌 충격에 얼얼해진 제 몸과, 곁에 뉘인 낯선 하루살이가 보였다. 쌕쌕,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채였다. 

 ‘온몸을 부딪쳐서라도 구해주면 되는 거잖아.’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티파니의 말. 더듬이부터 꼬리까지 그녀와 닮은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음에도 그녀임이 명백했다. 파니, 너 맞지? 맞잖아! 네가 날 구해준 거야? 반가움이나 고마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개구리의 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번엔 놓치지 않겠다는 비릿한 눈길이었다. 겁에 질린 아부는 그녀를 꽉 붙든 채 황급한 날갯짓으로 돌멩이 틈 사이 몸을 날렸다. 부디 늦지 않았길 바라며.

 우당탕탕, 유충 때는 쏙 들어갈 수 있었던 구멍이 그렇게 작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쑤시는 몸과 날갯죽지를 애써 무시한 채, 아부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티파니의 상태를 살폈다. 파니, 괜찮은 거지? 나 좀 봐봐. 말로는 할 수 없는 그의 애원섞인 희망이 무색해지듯, 안돼, 파니의 날개는 힘없이 찌그러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필경 아부의 몸에 제 몸을 필사적으로 부딪다 벌어진 참사였을 것이다.

 안돼, 파니. 이럴 수는 없었다. 나를 구하고 네가 이렇게 되면 어떡해, 파니야. 차라리 내가 개구리의 마수를 온몸으로 받아냈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맘을 먹고 이리로 날아왔더라면. 아니 애초에, 그날 밤 파니의 말대로 그녀와 함께 했더라면. 후회한들 소용없었다. 그녀를 품에 안은 채 아부는 티파니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더없이 편안했던 이 곳, 오랜 기억을 함께 한 이 곳에서, 그들은 둘은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과연 그녀의 말대로 서로를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별안간 수많은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돌 틈 사이로 보니 하루살이의 군무가 우 하고 일었다. 힘겨운 숨을 뱉으며 티파니는 이내 아부의 앞다리를 잡더니 자기 몸에 감으라는 듯, 들어올리며 제 등에 가져다댔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부는 알 수 있었다. 아부는 다시 한 번 날개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녀와 함께 달님에게 인사하기로. 윤슬이 처연히 지는 황혼녘이었다. 

 아부는 날고 또 날았다. 빈약한 날개가 끊어질 것 같아도. 구름과 나무가 어둠에 잠겨 더 이상 보이지 않아도. 그리고 품에 안겨있는 그녀의 숨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아도. 그는 멈출 줄 몰랐다. 아니 멈추지 않아야했다. 저 앞 가물거리는 그의 눈가로 비쳐보이는 희고 커다란 빛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님 위에서 그녀와 함께 이 생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소명을 다한 참된 삶일 것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흰 빛을 보며, 아부는 생각한다. 

 파니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 나는 행복했다고.

-

 이것이 바로 가로등 아래 사이좋게 뉘어있는 두 하루살이의 이야기다. 당치도 않은 일이겠으나, 나는 그들의 삶이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감히 주장하겠다. 기왕 끝이 정해져있는 필멸의 삶이라면, ‘그 삶에 얼마나 충실했는지’와 ‘그 삶이 얼마나 길었는지’는 별개의 질문이리라.

 그러니 다시 묻는다. 만약 일생이 3년의 시간과 하루의 시간, 이렇게 두 단계로 나뉘어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의 가치를 높게 생각할 것인가. 아니, 당신은 어느 쪽이 되었든, 어떻게 살기로 결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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