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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 작품>에 대하여, 수요지기 서라가 쓰다

2024.04.17 | 조회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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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난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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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우리 지금이 최선일까?” 현실의 팍팍함 속에서 이 질문은 바퀴벌레처럼 사람을 졸졸 따라다닌다. 지금 하는 업무가 최선일까? 이 배우자가 최선일까? 내 자식은 최선의 모습으로 살고있을까? 그리고 이 질문들은 다른 선택지를 선택한 저 멀리 있는 또 다른 나의 모습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곤 한다. 물러터진 남편과 결혼하는 대신, 본인의 능력만으로 성공한 영화배우가 되어본다던가, 나를 못살게 구는 깐깐한 세금 감사원과 꽁꽁 얽힌 다른 차원이 있지는 않았을까 상상해보는 것이다.

 제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7개 부문에서 수상한 이 영화는 정말 볼만하다.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이 겪는 현실과 고충, 성소수자 문제, 페미니즘, 인간 소외, 염세주의 등을 조명하면서 개인의 선택에 대해 감히 우주를 끌어들여 해학적으로 풀어낸 점에서 굉장하다. 현란한 비주얼, 귀가 호강하는 음향, 완벽한 배우들의 연기를 논하자면, 이틀 밤을 꼬박 샐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시간과 지면이 부족하니 이 영화가 나에게 인생 영화가 된 퍽 뻔하고도 단순한 두 가지 이유를 이야기해 볼까 한다.

"다정함을 잃지 않는 것"이 생존을 위한 가장 강력한 전략이야

 출퇴근 지하철, 버스는 자주 [설국열차] 꼬리 칸을 떠올리게 하고, 그 안에서 배려보단 생존이 우선시 되곤 한다. 잘 풀리지 않은 일에 대해 동료가 물을 땐, 그의 잘못이 아니더라도 예민한 눈으로 쏘아보게 되는 것이다. 퍽퍽한 삶에서 길러낸 공격성이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을 때 “다정함을 잃지 마라”는 말이 어떻게 먹힐 수 있었을까? 영화는 사람이 공격성이 높을 때가 ‘불안해서 어찌할 바를 잘 몰라서’라고 한다. 함께 모르기에 그래서 우리 다 같이 조금 다정하면 어떨까 다정하게 제안한다.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을 상대에게 공격으로 내비치는 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괜히 영화 본 다음날은 지하철 자리를 양보하게 되는 것이다.

사랑은 상식이 통하는 한 줌의 시간을 소중히 하는 거야.

 사랑하는 상대와 도저히 맞춰갈 수 없을 때 우리는 부정하다, 설득하다, 상처받고 상처 주다, 결국 포기한다. 영화에서는 이 뻔하디 뻔한 과정을 굳이 온 우주를 쏘다니며 보여준다. 다양한 흥미로운 우주 중 주인공들이 돌로 변한 우주가 가장 마음에 와닿았는데, 화려한 비주얼과 음향으로 가득 찬 스크린이 돌을 비추며 고요해질 때 더 많은 메시지가 보였기 때문이다. 돌이 되어서까지도 이해받지 못한 레즈비언 딸 돌(Rock)은 엄마 돌(Rock)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산 아래로 굴러간다. 엄마 돌은 이를 한참 지켜보다, 뒤따라 굴러가고 만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되어, 현실 세계의 딸에게 전한다. “우리가 통하는 순간이 한 줌일지라도, 그걸 소중히 할 거야” 그 한 줌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방식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주는데, 영화 내내 부인하던 딸의 성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받아들이진 못할 지라도 본인의 방식대로 인정한다는 점-딸에게 살을 빼라던 가, 머리를 민 딸의 여자친구에게 머리를 기르라던 잔소리를 한다-에서 그러했다. 사랑을 기반으로 한 이해는 너와 내가 함께 흙밭을 같이 굴러간다는 것. 그보다 더 다정한 최선의 사랑이 있을까?

 한없이 부족하기만 했던 나의 우주는 결국, 새끼손가락 하나로 무술 고수가 되는 우주를 지나 손가락이 핫도그 소시지가 되는 우주 등을 겪어본 뒤 완전해진다. 현재에 의문을 품은 주인공이 다른 여러 선택지를 맛본 뒤에야 현재 자신을 인정하는 이야기는 사실 세상에 없던 신선한 내용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가 나에게 인생 영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 유사한 이야기들의 설득력 부족을 핑계로 도피를 하고 있던 나에게, 온갖 우주를 들먹이며,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위 두가지 메시지를 전해줬기 때문이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역시 우리 지금이 최선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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