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내 인생에 처음으로 우울증이 왔다. 스무 살이 되어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가 대학 4학년 때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셨다. 가족들은 아빠와 살던 집을 벗어나 모두 서울로 왔다. 엄마와 다시 같이 살게 되었다. 5년간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둔 뒤에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딸을 보며 답답해하는 엄마와 온갖 쓰레기를 쌓아두며 살고 있는 엄마를 보는 딸의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그러면서 아빠가 평생 앓았던 우울증을 경험하게 되었다. 지난 10년간 나의 우울증을 엄마 탓으로 돌렸다.
- 엄마가 내게 그렇게 잔소리를 하지만 않았어도...
- 엄마와 떨어져 살기만 했어도...
- 엄마는 도대체 왜...
사실은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다.
'나는 왜 대기업에 원서는 넣을 수 있을 정도의 학점관리도 제대로 못했을까?'
'오랜 시간 회사를 다니면서 왜 나는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지 못했을까?'
'왜 시간을 그렇게 낭비하며 살았을까?'
20대의 끝자락과 30대 초에 시작된 우울증 덕분에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때 시작한 것이 명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짝꿍을 만나 본격적으로 명상을 시작했다. 명상을 시작하면서 이전에 만났던 거의 모든 인연과 연락을 끊었고, 이전에 하던 활동들 특히 책 읽기와 글쓰기를 중단했다.
30대, 10년간의 시간을 명상에 오롯하게 집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명상을 제대로 알려주실 수 있는 스승을 만났다. 그리고 스승이 알려주신 대로 눈을 감고 앉아서 하는 명상뿐만 아니라, 밥을 먹거나 길을 걸을 때, 글을 쓸 때까지 일상생활을 하면서 명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습했다. 매일 새벽 4시 30분에 절에 가서 새벽예불에 참석했다. 예불이 끝나면 부처님 법문을 들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저녁 예불에 참석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내가 명상을 하는 이유는 도파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기 때문일 거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20대부터 나는 늘 고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가?'
'나의 강점은 무엇인가?'
특히 첫 번째 질문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일까? 특히 구본형 선생님을 만나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했던 것 같다. 답답함과 갈증을 느끼는 가운데 인생에 대한 고민과 부정적인 감정은 우울증과 함께 극에 이르렀다.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다.
명상 지도를 통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나'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놀랍게도 세상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다. 나를 스치는 바람도, 흔들리는 나뭇가지도, 들려오는 새소리, 심지어 길가의 소음까지. 보고, 듣고, 감촉하는 등 여섯 가지 감각을 통해 전해지는 모든 것들은 그저 '나'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도구에 불과했다.
가장 좋은 점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명상지도를 해 주시는 스님은 부처님 법문 하실 때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의 감정은 일고 스러지는 파도와 같다'
나라는 존재가 거대한 바다라면 감정은 끊임없이 왔다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파도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명상을 하기 전 내게 감정이란 종종 아니 자주 '나를 통째로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무언가'였다. 하지만 명상을 한 뒤에 감정이란 비 온 뒤 잠깐 뜨는 무지개, 새벽녘 안개처럼 보이지만 실체가 없고 금세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들과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내 영혼이 잠시 내 몸을 벗어나 멀리서 나를 바라보듯 할 수 있었기에 감정에 휘둘릴 일이 별로 없었다. 일상의 명상을 연습하면 할수록 나는 감정적 인간에서 점차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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