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중독자의 인생1막 보고서

오지랖의 기원을 찾아서

#마흔둘라프의성장소설

2025.07.23 | 조회 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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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의 뉴스레터

저는 저를 탐구하며, 그 여정을 글과 콘텐츠로 나누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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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의 오지랖은 정말 태평양과 같이 넓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와 관련된 라프와 아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바로 연결했다. 그냥 지나가는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도 기사가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가족, 친구 등등-을 떠올리며 바로 카톡으로 링크를 보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라프는 자기가 경험해 보고 좋은 것, 특히 무언가 하나에 꽂혀 있는 시기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걸 해 보라고 얘기했다. 명상요가에 꽂혀 있던 시기가 그랬다. 누구를 만날 때, 페이스북에서도, 전화통화, 카톡 어디서든 만병통치약처럼 상대방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기승전, 명상요가였다. 

라프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만, 라프에게 이런 말과 행동을 받는 사람들은 괴롭다는 걸 가족들과 대화하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언니가 좋아하는 걸 제발 나한테 하라고 강요하지 마. 그리고 다른 요가는 해 본 적도 없으면서 언니가 하는 요가만 최고라고 하는 것도 참 불편해."

동생의 말에 라프는 머리를 망치로 정말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띵했다. 

'아.. 강요? 강요라고 느끼는구나.'

생각해 보니 라프의 오지랖이 발동했을 때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고마워."

말이 없거나, 정말 친한 사람은 "뭐임?"이라고 물어보는 식이었다. 상대방에게 굳이 필요 없는 걸 계속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라프는 왜 계속 그런 행동을 했을까?

오지랖은 자신이 타인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관계 속에서 심리적 안전과 사회적 소속을 확보하려는 욕구와 연결될 수 있다. 애착 이론에 따르면 유년기에 양육자에게서 돌봄의 일관성이나 반응에 따라 안전 애착 또는 불안 및 회피 애착이 형성된다. 

돌봄 제공자가 일관되고 따뜻하며 민감하게 반응할 경우 아이는 타인을 신뢰하고 자기 스스로도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는 인식을 형성한다. 하지만 양육자가 일관적이지 않고 불규칙한 반응을 보이고 아이가 부모의 애정과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 불안 애착, 양육자가 아이의 요구에 지속적으로 무시하거나 냉담한 태도를 보일 때는 회피 애착을 보인다. 또한 양육자가 폭력적이거나 극도로 혼란스러운 경우에는 혼란 애착이 생기는데 이때 아이는 어떠한 전략도 제대로 세울 수 없게 된다. 

이 중에서 불안 애착을 가진 사람이 '혼자 불안감을 견딜 수 없어서' 주변의 관계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받고자 하는 행동이 바로 '오지랖'이 될 수 있다. 

라프가 어릴 때 길을 가고 있었다. 그때 라프는 뛰어가서 앞서 가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때 엄마는 라프의 손을 바로 뿌리치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는 손 잡는 거 싫어해"

당시 엄마의 음성이 여전히 귓가에 들릴 정도로 이 장면이 라프에게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릴 적 라프는 부모님으로부터의 애정과 반응을 예측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이로 인한 불안 애착이 라프의 오지랖을 만드는 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또한 오지랖은 사회적 애착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옥시토신, 바소프레신,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이러한 신경생물학적 애착 시스템은 위협 상황에서 '가까이 있어야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내게 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은 타인의 문제에 개입해서라도 사회적 유대감을 확보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기 효능감 이론에 따르면 타인의 일에 관여함으로써 스스로를 유능하고 영향력 있는 존재임을 입증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는 자신이 타인의 욕망, 선택, 행동을 따라 하거나 그의 인생에 개입함으로써 존재감을 느끼고자 하는 것을 의미하는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과도 연결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이데거의 실존적 불안 개념과도 연결될 수 있는데 자신의 삶에서 직접 해결하기 어려운 존재론적 불안을 타인의 삶에 관여해서 완화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미셸 푸코의 권력-지식 이론에 따르면 타인의 개입하는 행위는 단지 도움을 주려는 의도를 넘어 자신이 지닌 지식이나 권위를 무의식적으로 행사하려는 권력적 욕망의 표현일 수도 있다고 한다. 

불안 애착, 인정받고 싶은 마음, 사회적 유대감, 스스로에 대한 존재를 입증하고 싶은 욕구, 존재에 대한 불안감과 권력적 욕망. 

사실 이 모든 것들이 라프의 오지랖 속에는 녹아들어 있는 것 같다.

"오이 심은데 오이 나고, 콩 심은데 콩 난다."

불교에서는 모든 일에는 그 일의 씨앗이 되는 다른 일이 있으며 심는 대로 거둔다고 이야기한다.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현재의 행동이 어쩌면 오랜 시간 전, 기억도 하지 못하는 어떤 순간 혹은 여러 순간들이 켜켜이 쌓여서 현재의 모습 혹은 마음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인과관계를 전부 따질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에 훅 들어오는 직감을 잘 알아차릴 필요는 있다. 때로 직감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라프의 동생이 오지랖에 대해 얘기하기 전,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옆집 할머니가 냉동실에 있던 썩어가는 음식을 먹으라고 나한테 주는데, 정말 그거 받을 때마다 미칠 것 같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라프는 자신의 오지랖이 마치 그 할머니가 준 '음식물쓰레기'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부터 오지랖을 조금씩 자제하려고 애를 쓰기는 했다. 하지만 늘 해오던 거였고 '도움 된다'는 믿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오지라퍼였다. 하지만 동생의 말 때문에 평생 해오던 오지랖을 거의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누군가 요청하기 전에 굳이 먼저 주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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