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과 다자주의의 위기
- 변명이 멈추는 것이 위반보다 큰 사건이다
Intro. 거짓말을 하려고 그는 유엔에 갔다
2003년 2월 5일,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에 앉았다. 그는 작은 병 하나를 들어 보였다. 이만큼도 안 되는 양이라고 했다. 한 티스푼이 못 되는 탄저균이 2001년 가을 미국 상원을 멈춰 세웠고, 수백 명이 응급 치료를 받았으며, 우편 노동자 두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봉투 하나에 들어가는 양이었다고. 정보기관이 자료를 모았고, 그는 그것을 세계 앞에서 읽었다.
그건 거짓이었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파월 본인이 나중에 그 연설을 자기 경력에 남은 얼룩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대개 이야기는 끝난다. 강대국이 거짓말로 전쟁을 정당화했고 국제법은 그것을 막지 못했다. 맞는 이야기이고, 다들 아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장면에는 지금 보면 낯선 것이 하나 더 들어 있다. 파월이 거기 갔다는 사실 자체다.
거짓말은 왜 필요했을까.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면, 굳이 정보기관을 동원해 근거를 만들어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꾸미려 할 이유도, 국무장관이 직접 출석해서 세계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읽는 수고를 할 이유도 없다. 이 모든 거짓은 '필요'했고, 필요했다는 것은 그 자리가 아무래도 상관있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히 강대국의 아량이 아니라, 강대국이 규칙 속에 속박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23년 뒤에도 문서는 있었다. 2026년 1월 3일, 미국이 카라카스에서 군사 작전을 벌여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붙잡아 뉴욕으로 데려갔다. 유엔 사무총장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했고, 며칠 뒤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여러 이사국이 헌장 위반이라고 했다. 그 작전에 앞서 미국 법무부 법률자문실이 의견서를 썼고, 그 일부가 공개됐다. 의견서는 이 작전이 국제법상 무력충돌에 해당한다는 것까지는 인정한다. 그런데 분석은 국내법상 적법한지에만 초점을 맞춘다. 국제법이 이 작전에 어떻게 적용될지에 대해서는 확정적인 결론에 이르지 않았다고 적어두었다.
2003년에도, 2026년에도 문서는 존재했다. 그러나 과거의 것은 그 국가가 규칙 속에 속박되어 근거를 마련한 것이고, 현재의 것은 근거에 대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23년 사이에 무엇이 바뀌었나. 위반이 늘어난 것이 아니다. 위반은 1945년 이후 한 번도 드물었던 적이 없다. 바뀐 것은 위반한 쪽이 무엇을 하느냐다.
법을 지키게 하는 것은 '경찰'이 아니다
흔히 국제법은 그것을 강제할 힘이 없어서 '법'이 아니라고 비판받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른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흔한 상황을 생각해보자. 전월세 임대차 계약을 했다고 하자. 그 계약이 지켜지는 이유는 위반 시의 재산상 손해나 법적 책임 때문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대체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약을 하지 않는다. 단지 계약은 지켜지는 것이라는 감각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대체로 문제 없이 진행된다.
어느 법학자는 이를 내적 관점과 외적 관점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내적 관점은 규칙을 자기를 묶는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다. 이 관점을 가진 사람은 규칙을 어겼을 때 비난받는 것이 정당하다고 여긴다. 외적 관점은 규칙을 예측의 대상으로만 보는 태도다. 이렇게 하면 처벌받겠군, 딱 거기까지다. 어겨서 손해를 볼 수는 있어도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붙인 조건이 중요하다. 어떤 법 체계가 존재하려면 최소한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은 내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일반 시민은 그냥 따르기만 해도 된다. 하지만 규칙을 만들고 다루고 적용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까지 외적 관점으로 돌아서면, 그 체계는 규칙의 모음일 수는 있어도 법이기를 그친다.
국가도 다르지 않다. 2023년 3월, 국제형사재판소가 블라디미르 푸틴에 대한 체포영장을 냈다. 그때부터 그는 로마규정에 가입한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피했다. 그해 여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도 외교장관을 대신 보내고 자신은 화면으로만 나왔다. 남아공이 자기를 체포할 리 없다는 것쯤은 그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지 않았다. 다만, 한 번은 갔다. 2024년 9월 몽골이다. 몽골도 가입국이지만 그를 체포하지 않았고, 재판소가 할 수 있었던 일은 협력 의무를 어겼다고 확인해 당사국 회의에 알리는 것뿐이었다. 경찰도 감옥도 없는 법이 한 나라 대통령의 동선을 바꾼다. 강제된 것이 아니라 계산된 것이고, 계산했다는 것은 그 법을 셈에 넣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법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거기까지다.
국제법의 위기에 대한 고찰
물론 이것이 이 법, 즉 국제법이 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국제법엔 강제력이 없고, 공권력이 없다. 국제사법재판소와 국제형사재판소 등은 당사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을 열 수 없다. 또한 협약 체결국 사이에만 해당 법이 적용된다. UN에서 안전보장이사회가 그나마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지만, 그마저도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으로 무력화된다. 이를 새삼 다시 증명해야 할 것은 아니다.
다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립된 세계질서가 '나름' 다자주의 형태로 잘 굴러가는 듯했는데 왜 요즘은 이게 아예 무너지고 있는지는, 단순히 강제력을 갖고 논의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이는 태도에 기인한다. 그리고 그 태도가 어떤 형태인가에 따라 구조가 파괴되는 방식도, 파괴력의 정도도 달라진다.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구들이 있다. 위트레흐트대학의 쿠슈트림 이스트레피와 루카 파스케는 2025년에 쓴 「태도를 조심하라(Mind Your Attitude: The Erosion of International Law?)」에서 두 가지를 구분했다. 어떤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그 게임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예 다른 태도라는 것이다. 앞의 것은 법 안에서 다투는 일이고 뒤의 것은 법 밖으로 걸어 나가는 일이다. 이들은 뒤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국제법 질서의 침식으로 봤다.
그 글이 첫머리에 끌어온 것이 유럽평의회 인권판무관 마이클 오플래허티는 과거와 현재의 정부의 태도가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과거에 정부가 나쁜 짓을 할 때는 이 나쁜 짓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당신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현재는 정부가 나쁜 짓을 할 때, 나쁜 짓임을 인정하면서도 필요성을 피력하며 정당화하려 합니다. 그는 이런 태도가 더는 극단적인 정권만의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중도의 각본에서 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진단의 뿌리는 더 오래됐다. 1986년 니카라과 사건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반복되는 위반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렇게 판시했다.
어떤 나라가 승인된 규칙에 어긋나 보이는 행동을 한다. 그런데 그 행동을 변호하면서 그 규칙 안에 있는 예외 조항이나 정당화 사유를 끌어다 쓴다. 그 변호가 실제로 성립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다만 그렇게 하는 태도 자체는 규칙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규칙이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에식스대학의 소피 뒤루아와 스완지대학의 루카 트렌타는 2026년 1월 마두로 작전을 놓고 여기에 한 겹을 더했다. 자기 행동을 법의 언어로 정당화해야 한다고 느끼는 국가는, 그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법이 중요하다는 것만은 인정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렇게 내놓은 논거는 반박당할 수 있다. 침묵은 반박당하지 않는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이랬다. 법을 늘려 쓰는 것은 법을 판 위에 남겨둔다. 무시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볼 것이 정해진다.
어겼을 때 그 다음에 무엇을 하는가. 변명하는가, 무엇의 언어로 하는가, 누구 앞에서 하는가.
규칙을 빠져나가는 네 가지 방법
규칙을 빠져나가는 방법이니, 결국 규칙을 파괴하는 행동을 어떻게 정당화하는가의 강도를 의미한다.
1. 어기되 변명하고, 이유를 만들어 그럴듯하게 보이고자 노력한다
2011년 5월 2일, 미국 특수부대가 파키스탄 정부의 동의 없이 파키스탄 영토에 들어가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승인받지 않은 일방적 행동이라고 항의했고, 이것이 앞으로의 선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주권 침해라는 점에서 다툴 여지가 적은 사건이다.
그런데 미국은 그냥 힘으로 누르지 않았다. 유엔 헌장 51조의 자위권을 들었고, 법무장관이 상원에 나가 직접 국가적 자위 행위였다고 설명했으며, 어떤 나라가 자국 영토의 위협에 대응할 의지나 능력이 없을 때는 다른 나라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법리를 동원했다. 이 법리는 국제법에서 논쟁적이다. 논쟁적이라는 것은 그 논쟁의 장 안에서 말했다는 뜻이다.
러시아도 같은 조문을 들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로 군을 보내면서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헌장 51조를 원용했다. 자기가 독립국으로 승인한 두 지역을 위한 집단적 자위이며 러시아 자신에 대한 위협에 대한 자위이기도 하다고 했다. 국제법 학자 대부분이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여기에는 결이 있다. 한 국제법 학자는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주장과 러시아의 주장을 구분한다. 앞의 것은 사실과 달랐지만 진실을 의식하면서 만들어졌으니 거짓말이고, 뒤의 것은 진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도 없이 만들어졌으니 거짓말보다 더 나쁜 무엇이라는 것이다. 그 구분은 옳다.
그럼에도 두 나라 모두 51조를 들었다는 사실은 남는다. 그 조문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1964년 통킹만에서 미국은 의회 결의를 받아냈다. 그 결의의 근거가 된 8월 4일의 2차 공격은 실제로는 없었다. 2005년 미국 국가안보국이 공개한 자체 연구에 따르면, 그날의 증거로 제시된 감청 정보는 이틀 전 다른 사건에 관한 통신을 날짜를 바꾸고 골라 붙여 만든 것이었다. 없는 사건을 만들어서까지 근거를 갖췄다는 뜻이다.
그리고 2003년, 파월이 병을 들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정당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당화에 가깝다. 그런데 그 정당화를 위해 모두 법의 문법으로, 다자주의 구조의 문법으로 이야기했다. 결국 핑계와 변명이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이 법의 무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2. 규칙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나는 지킬 생각이 없으니 나가겠다
미국과 중국은 로마규정의 당사국이 아니다. (참고로, 로마규정은 국제형사재판소를 세운 조약이다. 당사국이 되면 그 재판소의 관할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미국과 중국은 그 문 밖에 있다.) 이는 규칙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자신은 거기에 구속받고 싶지 않으므로 그 문 밖에 서 있겠다는 선언이다.
나가는 방식에도 문법이 있다. 로마규정 127조는 탈퇴 절차를 정해 두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에게 서면으로 통고하고, 1년이 지나야 효력이 생긴다. 2026년에 니제르가 6월 18일에, 부르키나파소와 말리가 6월 24일에 통고했다. 베네수엘라는 7월 24일에, 차드는 그 사흘 뒤에 나가겠다고 했다. 여러 나라가 나가는 중이지만, 그 나라들 모두 그 조약이 정해 둔 문으로 나갔다. 분명 법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나, 이조차도 결국 '문'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므로 법의 존재는 인정하는 것이다.
물론 국제법의 특성상 탈퇴가 늘어날수록 그 법의 효력은 약해진다. 체결국 사이에서만 작동하는 법이므로, 나가는 나라가 늘면 규칙이 덮는 면적 자체가 줄어든다. 특히 힘이 강한 국가의 탈퇴일수록 효력 약화에 가속도가 붙는다. 다른 나라들이 계산을 다시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단계는 결국에는 법의 붕괴에 다다른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파리협약이 보여주는 것이 그것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파리협약에서 나갔다. 다음 행정부가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2기 행정부가 취임 첫날 다시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세 번 다 협정이 정한 절차대로였다. 문법은 세 번 다 지켜졌는데, 문이 회전문이 됐다. 조약은 그대로 있지만 거기에 무언가를 걸어도 되는지가 불확실해진다. 다른 나라 입장에서 그 서명은 이제 임기만큼만 유효한 서명이다.
그럼에도 문을 나간다는 것은 문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다. 담을 넘지 않았고, 안에 있는 동안에는 규칙이 자기에게 적용된다는 것도 부인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법의 존재가 여전히 인정되고 있음을 증명하는 셈이다.
3. 규칙이 무너지도록 안에서 움직인다
여기서부터 성질이 바뀐다. 앞의 둘은 자기 행동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부터는 규칙 자체를 겨눈다. 법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약하지만 적극적인 행동이다.
2017년부터 미국은 세계무역기구 상소기구의 위원 임명을 계속 막았다. 2019년 12월 11일, 남은 위원이 정족수 아래로 떨어지면서 상소기구는 기능을 멈췄다.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는 아무도 협정을 어기지 않았다. 위원 임명에 동의하지 않을 권리는 회원국에게 있다. 변명할 일도 없다. 어긴 게 없으니까. 그런데 결과적으로 분쟁 해결의 최종심이 사라졌다.
같은 자리의 다른 형태가 남중국해에 있다. 2013년 필리핀이 유엔해양법협약에 따른 중재를 신청하자 중국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2014년에는 중재재판소에 관할권이 없다는 입장서를 냈다. 여기까지는 법의 문법이다. 관할권을 다투는 것은 법정 안에서 하는 일이다. 그런데 2016년 7월 판정이 나오자 중국 외교부는 그 판정이 무효이고 구속력이 없다고 선언했다. 해양법협약 부속서에는 중재 판정이 최종적이며 구속력을 갖는다고 적혀 있다. 한 사건 안에서 단계가 올라간 것이다. 처음에는 법의 언어로 다퉜고, 결과가 나오자 그 결과를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판정을 없는 것으로 하거나, 판정할 기구를 굶기거나. 둘 다 어기는 것이 아니라 무력화하는 것이다. 위반보다 조용하고 탈퇴보다 깊다. 탈퇴는 나가는 것이고, 이건 안에 남아서 운용을 거부하는 것이다.
4. 규칙을 다루는 사람을 핍박하고 처벌한다
법 자체를 무너뜨리려는 강한 행동이다.
2025년 2월 6일 행정명령 14203이 나왔다. 국제형사재판소에 제재를 부과하는 명령이다. 일주일 뒤 소추관 카림 칸이 미국 재무부 제재 명단에 올랐다. 그 다음은 확대의 기록이다. 6월 5일 판사 네 명, 8월 20일 부소추관 두 명과 판사 두 명, 12월 18일 판사 두 명. 제재 사유는 두 갈래다. 하나는 이스라엘 총리와 전 국방장관에 대한 영장 절차에 관여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관련 수사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로마규정 당사국이고, 그 땅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뒤쪽은 이스라엘과 무관하다. 자국 군을 수사한 것에 대한 보복이다.
제재의 효과는 입국 금지와 자산 동결에 그치지 않는다. 은행 계좌가 막히고 보험이 끊기고 일상적인 온라인 서비스에서 배제된다.
세 번째 방법에서도 그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부정하지 않았다. 판정이 틀렸다거나 기구가 제 일을 못 한다고 말할 때, 그 말은 여전히 그 기구를 대상으로 삼는다. 판사를 제재하는 것은 다르다. 그 법정이 존재할 자격을 부인하는 일이다. 이건 논증에서 진 것이 아니라 논증을 그만둔 것이다.
2026년 7월 13일,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문을 실었다. 국제형사재판소를 해체하겠다고, 필요하다면 벽돌 한 장씩 뜯어내겠다고 썼다. 재판소가 총알이나 미사일이 아니라 이른바 국제법이라는 힘으로 미국에 전쟁을 걸고 있다고도 했다. 그는 재판소의 관할이 왜 미치지 않는지를 다투지 않았고, 어떤 조항의 어떤 해석이 틀렸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법의 언어로 반박하는 대신, 그 법을 다루는 기관을 없애겠다고 신문에 적었다. 앞에서 봤듯 미국은 그 재판소의 당사국이 아니다. 문 밖에 선 채로 문 안의 기관을 없애겠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한 나라가 아니다. 2025년 12월, 모스크바의 한 법원이 카림 칸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본인이 법정에 없는 상태로 내려진 선고였고, 전직 국제형사재판소장을 포함한 재판소 직원 여덟 명이 함께 형을 받았다.
두 나라가 같은 자리에 우연히 선 것이 아니다. 둘 다 한때 그 조약에 서명했고, 자기가 걸릴 것 같아지자 서명을 거뒀고, 문 밖에 선 채로 문 안에 있는 사람을 처벌했다.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덧붙일 것이 하나 있다. 2025년 여름, 미국 법원 두 곳이 그 행정명령의 집행을 막았다.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이유였다. 다만 그 판단은 재판소에 협력하는 미국인들을 보호하는 데 그쳤고, 이미 제재된 소추관과 판사들에게는 미치지 않았다.
그러니 태도는 나라 단위로 빠지지 않는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어떤 자리에서는 남고 어떤 자리에서는 빠진다. 행정부가 법의 문법을 놓은 자리에서, 법원은 아직 그 문법으로 말하고 있었다.
외적 관점으로의 변화
네 가지를 다 봤으면 앞의 조건을 다시 볼 차례다. 체계가 존재하려면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내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국제법을 운용해온 자는 누구였나. 그 체계를 설계했고 가장 크게 이득을 본 나라들이다. 헌장을 쓰고, 기구를 세우고, 다른 나라에게 그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한 쪽이다. 그러니 지금 벌어지는 일은 이렇다. 만들기를 권했지만, 자기는 들어가지 않고자 하며, 이제는 그 밖에서 해체하겠다고 한다.
남이 규칙을 어기는 것과 규칙을 쓴 쪽이 스스로 그 밖으로 걸어 나가는 것은 다른 사건이다. 앞의 것은 위반이고, 뒤의 것은 자기부정이다. 위반은 규칙을 전제한다. 자기부정은 전제를 거둔다.
물론 여기서 곧바로 나오는 반론이 있다. 국제법은 원래 강자의 도구 아니었느냐는 것이다. 맞다. 절반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도구도 자기 것으로 여겨지는 동안에는 쥔 사람을 묶는다. 문법을 쓰려면 문법대로 말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자기가 한 말에 걸린다. 이 반론은 한 문단으로 답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다. 이 글에 던져질 만한 다른 물음들과 함께, 나중에 따로 정리해 다루려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위험한가
흔한 걱정은 규칙이 사라지면 무규칙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 힘만 남는 세계, 강한 쪽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세계. 그런데 역사에서 그런 상태가 오래간 적은 드물다.
세계질서는 늘 규칙을 쓸 수 있는 쪽에 의해 재편돼 왔다. 전쟁이 끝나면 이긴 쪽이 다음 규칙을 쓴다. 지금 무너지고 있다고 말해지는 이 질서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헌장과 기구와 협정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그것을 쓸 수 있는 자리에 있던 나라들이 쓴 것이다. 그러니 규칙이 얇아진다는 것은 규칙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다음 문법을 누가 쓰는가의 문제가 된다는 뜻이다. 지금 특이한 것은 그 자리를 쥐고 있던 쪽이 스스로 그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 자리가 오래 비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누가 채울지, 무엇으로 채울지는 이 글이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하나만 분명히 해 두자. 이 글은 위선이 그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위선은 증상이지 미덕이 아니다. 열이 나는 것은 병이 아니라 면역이 작동한다는 신호이지만, 그렇다고 열이 좋은 것은 아니다. 변명은 규범이 살아 있다는 신호였을 뿐, 변명 자체가 훌륭했던 적은 없다.
다시 계약서로 돌아가자. 그 종이를 지키는 것도 경찰이 아니었다. 강제력이 있는 세계에서도 법의 대부분은 태도로 굴러가고, 강제력은 모자란 만큼만 메워준다. 메워주기 때문에 태도가 빠져나가는 것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국제법은 그 가림막을 걷어낸 자리다.
법은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을 때 존재한다.
참고문헌 (발행본 포함)
- H. L. A. Hart, The Concept of Law, Oxford University Press, 1961 (2판 1994).
- Military and Paramilitary Activities in and against Nicaragua (Nicaragua v. United States of America), Merits, Judgment, ICJ Reports 1986, para. 186.
- Kushtrim Istrefi & Luca Pasquet, "Mind Your Attitude: The Erosion of International Law?", EJIL:Talk!, 2025-03-03.
- Sophie Duroy & Luca Trenta, "'Hypocrisy Implies a Moral Code': The Abduction of Nicolás Maduro and the Systemic Costs of Non-Justification", Verfassungsblog, 202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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