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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는 일자리가 없다.

노동시장에 존재하는 빈 칸

2026.08.26 | 조회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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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llue

정규직과 프리랜서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좋은 일자리라고 하면 대개 같은 그림을 떠올립니다. 정규직,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 정년까지 이어지는 안정. 저도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구하려 했을 때, 저는 제가 원하는 자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저에게는 몇 년간 쌓은 전문 분야가 있었습니다. 다만 그 분야에서 풀타임 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은 부담스러웠습니다. 하고 싶은 다른 일이 따로 있었고, 그쪽에 시간을 쓰면서도 생계를 유지할 만큼은 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원한 건 주 3일, 혹은 하루 네다섯 시간짜리 자리였습니다. 돈은 덜 받아도 좋았습니다.

그런 자리는 없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없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제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짧은 시간의 일은 전부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만 있었고, 시간과 요일을 줄인 안정적인 일은 전부 '아르바이트'라는 이름의 최저시급 자리뿐이었습니다. 그 사이는 비어 있었습니다.

 

노동시장에는 빈 칸이 있다

여기서 말하려는 건 자리의 다양성입니다. 여덟 시간 정규직 하나가 아니라, 그보다 짧고 다른 모양의 자리들이 얼마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들여다보면 우리 노동시장에는 자리가 사실상 세 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째, 풀타임. 복지와 안정이 있지만 하루 여덟 시간, 주 닷새를 통째로 요구합니다. 둘째, 아르바이트. 시간은 짧게 쪼갤 수 있지만 대체로 최저시급이고, 전문성을 쌓거나 쓰기 어렵습니다. 셋째, 프리랜서. 전문성은 살릴 수 있지만 안정은 각자 알아서입니다.

전문성을 살리면서, 시간은 줄이고, 최소한의 안정은 있는 자리. 그 칸은 없습니다. 정규직과 프리랜서 사이 어딘가를 원하는 사람에게 갈 곳이 없습니다.

이게 저 혼자의 사정이라면 사연이지 기삿거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사이를 원하는 사람은 꽤 많습니다. 통계청 조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의 절반 이상은 그 형태를 자발적으로 택했다고 답합니다. 몇 해 전 한 조사에서는 젊은 세대의 절반 이상이 "정년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고, 또 다른 조사에서는 상당수가 프리랜서로 일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직장을 고르는 기준을 물으면 워라밸이 고용안정을 앞섭니다. 실제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는 것이 워라밸을 가져다 줬다며, 회사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이 건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정년을 바라지 않는다"고 한 사람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가장 많은 답이 "실제로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회사가 거의 없어서"였습니다. 원해서가 아니라 어차피 안 될 걸 알아 내려놓은 쪽이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자발적"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는 돌봄이나 학업 때문에, 혹은 더 나은 자리를 못 구해 "그나마 나은" 쪽을 고른 경우가 섞여 있고, 임금이 정규직보다 낮은 것도 그대로입니다. 그러니 이 숫자만으로 "요즘 사람들은 안정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면 과장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정말로 다른 모양을 원해서 고른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이 원하는 모양의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시들어가는 꽃

왜 짧은 자리를 원할까요.

얼마 전 사회에 갓 나온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나는 시들어가는 꽃 같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취업을 간절히 바라며 준비에 매달리던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니 삶에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벌써부터 평생 이렇게 살다 죽는다는 게 슬프다고 했습니다. 그 슬픔은 곧잘 우울이 되고, 때로 분노가 됩니다.

일을 싫어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일을 좋아해도 문제가 됩니다. 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그 속에서 제 자아 효능감을 찾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의 일이 '나'의 모든 것을 구성하다보니 일이 흔들릴 때 자아가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했고, 오히려 '일'을 분산하는게 더 좋을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주 5일, 일 8시간씩 한 가지 일에만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일을 통해 자아를 보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하는 게 대단한 자유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못 견뎌 하는 건 '정해진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일정을 내가 아니라 고용주가 쥐고 있다는 쪽입니다. 한 유명한 실험에서 노동자들은 고용주가 일주일 전에 통보하는 스케줄을 피하려고 임금의 20%까지 포기할 의향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스케줄을 스스로 짤 자유 그 자체에는 대부분 큰돈을 얹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건 막연한 유연함이 아니라, 내 시간의 일부를 내가 쥐는 것입니다.

한 줄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그들은 덜 받고 더 자유로운 쪽을 스스로 삽니다.

 

빈 칸을 채우면 시장이 커진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사정입니다. 그런데 이 개인의 사정이 시장 전체의 문제와 맞물립니다.

주 3일, 하루 4-6시간짜리 제 역량을 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저는 당장 지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은 저 혼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런 자리가 생기면 지금 노동시장 밖에 서 있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여덟 시간은 못 하지만 여섯 시간은 할 수 있는 사람, 닷새는 어렵지만 사흘은 가능한 사람. 그들이 일하지 않는 건 일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맞는 모양의 자리가 없어서입니다.

네덜란드는 시간제 일자리를 열등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선택지로 만들면서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을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한국에서도 최근 연구가 비슷한 것을 보여줍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6년 8월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육아휴직에서 돌아온 여성이 유연근무를 함께 쓸 수 있는 직장에 있을 때 복귀 2년 차의 고용 확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13.4%포인트 높았습니다. 유연근무가 없는 곳에서 11.4%였던 임금 손실은, 유연근무가 있는 곳에서는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로 남지 않았습니다. 형태를 열어주자 사람이 남았고, 벌금이 사라졌습니다.

이건 온정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의 문제입니다. 여섯 시간어치의 일이 필요한 자리와 여섯 시간만 일하려는 사람이 서로 있는데, 시장에 여덟 시간짜리 한 형태밖에 없으면 그 둘은 만나지 못합니다. 둘 다 손해입니다. 자리는 사람을 못 구하고, 사람은 일을 못 구합니다.

인구가 줄고 있는 한국에서 이 계산은 특히 무겁습니다. 일할 수 있는 인구 자체가 해마다 줄어드는 나라에서, 형태를 늘리는 일은 복지가 아니라 인력을 확보하는 전략입니다. 출산과 육아로, 혹은 다른 사정으로 일터를 떠났던 사람도, 돌아올 중간 칸이 있으면 돌아옵니다.

저는 이걸 고용하는 쪽에서도 겪었습니다. 함께 일할 사람을 뽑을 때, 그의 사정에 맞춰 주 4일에 이틀은 재택으로 조건을 열어준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 저에게도 좋았습니다. 그 조건이 아니었으면 놓쳤을 사람을 그렇게라도 확보했고, 그때그때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됐습니다. 시간을 덜 쓴다고 일이 덜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만큼 쓴 것에 가까웠습니다.

 

이미 나온 답

사실 이 이야기는 새롭지 않습니다. 몇 해 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클라우디아 골딘이 이미 비슷한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골딘은 남녀 사이의 소득 격차를 오래 파고든 끝에, 그 격차의 진짜 원인이 성별 자체가 아니라 '노동이 짜인 방식'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오늘날의 좋은 자리들은 오래, 그리고 언제든 부르면 나올 수 있는 상태로 일하는 사람에게 몫을 몰아줍니다. 더 많이 일할수록 한 시간을 더 일하는 것의 값이 점점 더 커지는 구조입니다. 그러면 늘 대기할 수 없는 사람, 대개 아이를 돌보는 쪽이 벌금을 물게 됩니다. 여성이 시간제로, 남성이 전일로 갈리는 이중구조는 그렇게 생깁니다.

그래서 골딘이 내놓은 처방은 이랬습니다. 유연한 일자리가 더 많아지고, 더 생산적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이야기한 그 빈 중간 칸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만 조심할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 중간 칸을 여성만 쓰게 되면, 골딘이 지적한 그 이중구조가 오히려 굳어버립니다. 네덜란드가 참가율은 올렸지만 여성은 시간제, 남성은 전일이라는 분업을 함께 고착시킨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러니 이 칸은 돌봄을 맡은 여성만의 자리가 아니라, 나이 든 사람도, 다른 일을 병행하는 사람도, 남성도 함께 드나드는 칸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것이 벌금이 아니라 선택이 됩니다.

 

나쁜 건 형태가 아니다

그러면 흔히 나오는 반문 하나. 그렇게 비정규직을 늘리자는 거냐고요. 맞는 말입니다만, 그 의미는 크게 다릅니다. 우리가 비정규직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진짜 이유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형태 자체가 아니라 그 형태에 달라붙은 차별적 대우와 시선입니다. 같은 일을 해도 덜 받고, 덜 존중받고, 언제든 밀려날 수 있다는 것. 그 대우를 떼어내고(또는 개선하고) 나면, 형태의 다양성은 결핍이 아니라 시장을 넓히는 힘이 됩니다. 짧게 일하는 것이 곧 열등하게 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 파트타임으로, 프리랜서로, 계약직으로 일한다고 할 때, 질문을 바꿔볼 수 있습니다. "왜 정규직을 못 했을까"가 아니라, "이 사람은 어떤 모양의 자리를 원했는데, 그 자리가 없었던 걸까"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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