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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기술이 발전할수록 초라해지는가

기술 발전의 역설: AI의 발전이 마냥 행복하지 않은 이유

2026.06.17 | 조회 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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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llue

Intro. AI 구독료를 내고 있는 당신에게

기술이 발전하면 우리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AI 구독료를 매달 내고 계신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택지는 있습니다. ChatGPT, Claude, Gemini처럼요. 그런데 이 선택지들은 모두 미국 빅테크 3~4개 사가 만들었고, 이들의 기반 기술과 데이터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는 'AI 못 쓰면 뒤처진다'는 압력이 형성되고 있고, AI는 어느새 '안 쓸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 '구독'은 자발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선택지를 설계하는 쪽은 우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진짜 자발적 선택일까요? 아니면 선택지를 주는 척하는 무언가일까요? 이 질문을 오늘 함께 역사 속에서 검토해보려 합니다.


💡잠깐! 이 글을 200% 흡수하고 싶다면?

아세모글루·존슨이 누구인지, '기술 결정론'이 어디서 나온 개념인지 미리 읽어두면 본편이 훨씬 선명하게 들어옵니다!

[스타터 읽고 오기: 기술의 발전은 인류 문명의 발전을 담보하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은 인류 문명의 진보를 담보하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기술이 발전하면 인류 문명이 진보하고, 그 결과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등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술 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 즉 기술이 저절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는 믿음은 우리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 질문조차 하지 않는 당연한 전제로 자리잡았는데요. 과연 진짜 그럴까요?

2024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다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사이먼 존슨(Simon Johnson),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은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로 공동 수상했습니다. 그 중 아세모글루와 존슨이 함께 쓴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기술이 저절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끈다는 생각에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의 경제사를 살펴보면 기술의 발전은 분명 부의 증가를 의미하지만, 그 부는 반복적으로 소수의 자본가 계층에 집중되어 불평등이 심화되고 착취가 구조화되어 왔음을 지적하는데요. 증가된 부가 사회 공공으로 재분배되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이 경제 게임에 참여하고 결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짜인 규칙, 즉 '좋은 제도'가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즉,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제대로 된 제도와 규칙이 없다면, 발생된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인류 문명은 오히려 퇴보한다는 것입니다.

기술 발전의 잔혹동화 1: 산업혁명의 성냥팔이 소녀들

산업혁명 시기 영국을 살펴봅시다. 증기기관이란 혁명적 기술은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고, 도시 공장들은 방대한 노동력을 필요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노동자의 삶은 더 나아졌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탄광지역에서는 낮은 갱도를 뚫기에 체구가 적합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고, 이에 대한 임금은 기존 농촌에서 일하는 것보다도 낮은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성냥 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소녀들은 인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턱뼈가 썩는 '포시 조(Phossy jaw)' 병에 걸렸습니다. 런던 Bryant & May 공장의 성냥 소녀들은 결국 1888년 파업을 일으키며 이 참혹한 노동 조건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기술 혁신이 가져온 생산성의 과실은 이 소녀들의 턱뼈와 손가락을 담보로 삼아 소수 공장주에게 귀속됐습니다.

더 생각해볼까요? 산업혁명 이전 농업 사회에서 농민은 해가 지면 일을 멈출 수 있었고, 자신이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은 생산물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은 이 원칙을 무너뜨렸습니다. 분명 사회 전체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그 생산성의 열매는 노동자가 아닌 소수의 자본가의 금고로 들어갔습니다. 아세모글루와 존슨(2024)에 따르면, 1806년부터 1820년 사이 ‘기계’의 등장으로 수공업 직공(Handloom Weavers)의 실질 임금이 절반 이상 감소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달리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노동자는 더 가난해졌습니다.

기술 발전의 잔혹동화 2: 조선 철도와 식민지의 탈산업화

일제강점기, 일제는 조선에 철도를 설치했습니다. 철도는 분명 당대 첨단 기술이었고, 훌륭한 교통 인프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철도는 조선의 경제 발전을 위해 설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하게) 조선의 곡물 및 자원을 일본으로 보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즉, 기술의 이익은 모두 식민 권력에게 귀속되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조선에 철도를 까는 기술이나 기관차를 만드는 기술이 이전된 것도 아니며, 오히려 더 많은 곡물과 자원을 공급하는 농업·자원 공급 기지로 재편되는 '탈산업화(de-industrialization)'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는 식민 지배를 경험한 많은 국가들이 보이는 공통된 패턴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근대 기술이 이식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오히려 그들을 탈산업화로 내몰고 기술로 인한 이득은 식민지배국이 탈취합니다. 단순히 자본가-노동자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 간 관계에서도 기술의 이득은 공유되지 않고 소수에게 집중되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두 사례가 공통으로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술 자체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기술은 항상 누군가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설계되고 배치됩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누구냐가, 기술이 누구의 미래를 만드느냐를 결정합니다.

나쁜 규칙은 왜 지속되는가: 착취 구조의 자기 강화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부가 소수에게 독점되는 패턴을 반복하는 걸까요? 아세모글루는 착취적 구조, 즉 '나쁜 규칙'이 다음 세 가지 이유로 스스로를 유지한다고 분석합니다.

첫째, 막대한 전환 비용입니다. 기존의 착취적 구조를 제한하고 사회 전체에 재분배를 보장하는 포용적 제도를 구축하려면, 사회 기반 시스템 전반을 개혁해야 합니다. 이는 막대한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수반합니다. 현재의 고통이 크더라도, 변화의 비용이 더 크게 느껴지면 현상 유지가 선택됩니다.

둘째, 소수 기득권의 이익 극대화입니다. 규칙을 통제하는 기득권 계층의 크기가 작을수록 그들이 향유하는 이익의 크기는 커집니다. 따라서 이들은 제도를 바꿀 인센티브를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착취가 효율적일수록, 기득권은 더욱 공고해집니다.

셋째, 비즈니스 모델의 최적화입니다. 기존의 독점적 구조 하에서 이미 비즈니스 모델을 완벽히 최적화한 기득권 계층은 공정한 규칙이나 새로운 분배 시스템의 도입을 원하지 않습니다. 규칙이 바뀌면 그들이 이미 투자한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힘이 맞물리면, 착취 구조는 외부의 충격이 없는 한 스스로 해체되지 않습니다. 산업혁명 시기 영국에서 아동노동 금지법이 통과되기까지는 수십 년의 사회운동과 입법 투쟁이 필요했습니다. 조선의 철도가 수탈 장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의 독립투쟁이 쌓아온 저항의 누적과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이 가져온 식민지배 종식이라는 외부 충격이 맞물려야 했습니다. 기술이 저절로 세상을 나아지게 만들지 않습니다. 제도가, 그리고 그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지가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결국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나? 기술이 장기적으로 모두를 풍요롭게 한 것 아닌가?' 맞습니다. 그러나 그 개선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핵심입니다. 아동노동 금지법, 8시간 노동제,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 이것들은 기술이 저절로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수십 년의 투쟁과 제도 개혁이 기술의 열매를 사회 전체로 돌렸습니다. 기술이 번영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만든 규칙이 번영의 분배를 바꿨습니다.

"우리는 인류가 꿈꾸는 미래를 만듭니다"

이 이야기가 단순히 역사 속 이야기일까요? AI 혁명은 앞선 역사와 다르게 흘러갈까요? 본질은 놀라울 정도로 동일합니다. AI 시대에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소수의 빅테크 기업뿐이고, 기술 발전이 세계 패권 경쟁과 맞물리며 기후위기, 약자 보호, 노동 권리 등의 담론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입니다.

빅테크는 "우리는 인류가 꿈꾸는 미래를 만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 선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인류가 꿈꾸는 미래'가 정말 내가 꿈꾸는 미래와 일치하는가? 탄광 아이들은 산업혁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조선 농민들은 수탈용 철도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의사가 묻히고, 소수 권력자의 의사가 '문명의 진보'로 포장될 때, 기술은 착취의 도구가 됩니다.

분명히 하고 싶은 건, 이 글의 논지가 AI를 사용하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이익이 어디로 귀속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칙을 우리가 함께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 당시 아동노동 금지법도, 40시간 노동제도 처음엔 '비현실적인 요구'였습니다. 지금 AI 규제 논의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빠진다면, 그 규칙은 빅테크가 만들게 됩니다.

만약 빅테크가 말하는 '인류의 미래'가 나의 미래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부를 사회 공공으로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그 규칙을 수립하는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AI는 인류 역사상 유래없이 가장 정교하고 완벽한 수탈 도구가 될 것입니다. 산업혁명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정밀하게, 전 세계 모든 사람의 노동과 창의성과 감정 데이터까지 흡수하면서요.

기술이 바뀌는 순간, 누가 그 규칙을 쓰는지 확인하라.
그 자리에 당신이 없다면, 그 규칙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Outro. 작가의 말말말

1️⃣ AI의 등장을 산업혁명에 필적하는 혁명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저 또한 그랬고, 그렇다면 산업혁명 때처럼 결국 새로운 직업군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준비하면서, 산업혁명 시기에 나타났던 노동자들의 잔혹사 또한 재현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섬뜩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과거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임을 기억한다면, 분명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낙관합니다.

2️⃣ 아세모글루는 기술 발전의 방향이 결정론적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역사 속에서도 노동자의 조건이 개선된 시기는, 기술이 저절로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라 강력한 노동 운동과 제도 개혁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기술에 대한 낙관(또는 비관)이 아니라, 기술을 둘러싼 규칙 투쟁에 대한 참여일 것입니다.


💡 여러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좋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시나요? 아니면 '기술 결정론'이 맞는 해석이라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어떤 제도가 필요하고, 무엇이 '좋은 제도'일까요? 여러분의 다양한 생각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참고문헌

Acemoglu, D., & Johnson, S. (2023). 권력과 진보(Power and Progress: Our Thousand-Year Struggle Over Technology and Prosperity). 생각의 힘

Acemoglu, D., & Johnson, S. (2024). Learning from Ricardo and Thompson: Machinery and Labor in the Early Industrial Revolution, and in the Age of AI. Social Science Research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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