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있어 ‘집’이란 꽤 오랜 시간 돈의 역사고 가난의 역사였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럭키아파트라는 이름의 임대주택에 살았다. '럭키'라는 이름과 다르게 나는 이 집에서 불행하다고 느꼈다. 이 집에 사는 줄곧 이 곳에서 살기 싫었다. 아이들은 놀고 싶어 묻는 건지, 편 가르려 묻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새 학기 무렵이면 어디 사느냐고 내게 묻곤 했다. 어떤 아이는 집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어떤 아이들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아서 친구가 됐다. 학교에서 제법 떨어진 곳에서 뚜벅이 생활을 했기에,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을 말해도 아이들은 내가 정확히 어디 사는지 잘 몰랐다. 나는 그게 다행이라 여겼다. 어릴 땐 내 방이 없는 게 그렇게 서러웠다. 붉은 개미와 바퀴벌레가 당당하게 온 집안을 기어 다녔다. 가끔 아빠가 청소하자 했지만 먼지처럼 늘 물건은 또 쌓였다. 버린다고 내 방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늘 잘 버렸다.
행복주택에 산 지 벌써 5년 차다. 지금 사는 이 아파트의 청약 당첨 문자를 받았을 때는 정말 로또 1등이라도 된 것처럼 기뻤다. 청약 당첨의 기쁨도 잠시, 나는 13평이라는 평수에 금방 질려버렸다. 잠이 안 올 때면 방 하나만 더 있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어릴 적 살던 럭키임대아파트. 그리고 지금 사는 행복주택. 이름처럼 닮은 이 두 집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내가 산 집이 오르면 행복하고, 내가 사지 못한 집이 오르면 배가 아픈 것. 집의 값이라는 것이 그렇다고 들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집’이 부동산 가치로의 자산이며, 재테크의 수단으로만 여기게 된 걸까. 내 집 마련은 고사하고, 전세라도 좋으니 내 인생이 한 평, 아니 한 뼘이라도 나아지고 싶어서 돈을 모은다. 그런데 세상은, 집값은, 여전히 내 마음을 몰라준다. 아파트들이 내게 돈 말고는 아무 생각 말라고 말한다. 더 넓은 집, 더 쾌적한 집, 더 비싼 집, 더 나은 집. 더 나아가고 싶은 욕구. 그러니까 나는 돈에 대한 나의 욕구를 숨기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돈의 속성이 그런 것일까. 돈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불행은 어디에나 있다. 당장 길가에 널린 건물들은 그 수만큼 건물에는 주인이 있고, 무언갈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돈이 나쁘다고 배운 적 없지만, 돈이 나빠 보일 때는 항상 내가 돈이 없을 때였다.
나는 럭키임대아파트 전에, 속초시 장사동이라는 동네에서 먼저 유년을 보냈다. 좁은 골목이 굽이굽이 이어진 언덕 위에 방 세 칸과 아궁이, 마당, 별채로 푸세식 화장실이 있는 집이었다. 어린 나는 용변을 주로 요강이나 아궁이 앞에서 했다. 마당에도 눴고 이불에도 자주 쌌다. 이불에 오줌을 눈 날은 머리에 키를 쓰고 동네를 누비며 소금을 받아 왔다. 놀이터가 있는 곳도 아니었고, 장난감이 풍족하지도 않았지만, 골목을 누비며 내가 놀고 싶은 만큼 아이들과 놀았고, 할아버지는 매일 해지기 전 구멍가게에 들러 군것질거리를 사줬다. “원하는 만큼 사라”는 말은 할아버지가 구멍가게로 향하며 내게 하던 말이었는데, 나는 매번 “원하는 만큼 사도 되냐”고 물었다. 아버지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내 말을 항상 잘 들어주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내가 마당에 앉아 있던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날,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내가 마당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걸 봤다. 해가 지는데도 할아버지와 내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여섯 살 어린 손녀와 할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그 이야기를 듣고, 내가 왜 마당이 있는 집에 살고 싶어 했는지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군것질을 사러 가던 길을 떠올려 보곤 한다. 그때 먹었던 과자가 떠오른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걷던 날도, 업혀 가던 날도 희미하지만 다 기억난다. 그러다 할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고 구멍가게에 가는 일은 없었다. 할아버지와 나는 마당에 앉아 나눈 이야기 보다, 당시 할아버지의 표정을 기억해내고 싶다.
누군가 내게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나는 한 장의 그림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개는 뛰놀고 고양이는 마루서 볕을 쬐며 낮잠을 자는 오전. 텃밭 풀과 흙을 만지다가 이웃이 먹으라며 준 떡을 먹는 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면 하나같이 단독주택에 사는 어려움을 말한다. “단독주택에 살려면 부지런해야 해”, “나중에 팔려면 안 팔린다더라”, “관리비가 많이 든다더라.” 너무나 일리 있는 말들이라서 단독주택은 역시 무리인가 싶다가도 또 매번 그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마는 나였다. 4년 전, 여행에서 그런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는 딱 내가 그려오던 집의 주인이었다. 그곳은 헨젤과 그레텔 동화 속에 나올법한 아름다운 집이었다. 마당엔 닭을 키우고 큰 나무 위에 2층을 올려 지은 집이었다. 2층 계단을 밟을 때마다 나던 나무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아침밥을 차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할머니의 모습까지 모든 게 완벽했다. 할머니도 젊을 땐 도시에 살았었다. 그러나 섬에 내려왔다. 매일 바닷가를 산책한다고 했다. 이 집은 원래 식당이었으나, 몸이 쇠약해진 탓에 게스트하우스로 바꾸고 한 팀의 여행객을 받는다. 일주일에 다섯팀 이상 받지 않는다. 그 집의 거의 모든 것이 할머니가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조개를 이어 붙인 조명, 직접 리폼한 가구, 재봉한 커튼과 식탁보까지 어느 것 하나 할머니의 손을 안 거친 물건이 없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궁금해지는 건 그곳에서의 삶이었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복도식 구조라서 여과 없이 아이들의 울음소리나, 밥 짓는 냄새가 난다. 우리 아파트는 층간소음으로 늘 시끄럽다. 임대아파트라 부실한 시공 탓도 있을 테고, 유독 아이들이 많은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덮친 격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해 온 신경이 아이의 발뒤꿈치에 가 있다. 집에서 회사일, 육아일, 집안일도 한다. 집에서 내 모든 역할과 존재를 살아내고 있다. 역할, 의미, 존재가 전부 ‘집’에 놓인 것이니, 집이 또 다른 국면을 맞은 것이다.
1년 전 이맘때, 코로나가 시작된 중국 우한에서는 도시 전체가 봉쇄되는 일이 있었다. 마스크가 없어 공안에게 잡히고, 공안이 드론을 띄워 사람들을 감시한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좀비 영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졌다. 우한시민들은 일순간 세상과 단절됐다. 가난한 사람과 노인은 집 밖을 나서기조차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집에서 죽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할 것이고, 도시에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할 것이라는 괴담이 돌았다.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쓴 이래 사람들은 세상을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장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다윈은 그런 주장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다윈도 결국 상생과 협력을 말했다. 다윈은 공생을 잘하는 생물이 가장 번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만약 인류의 종말이 정말 찾아온다면 그 원인은 역병이 아니라 단절 때문이 아닐까.
안부보다 예의가 먼저인 세상이다. 같은 건물에 사는데도 어떤 이가 함께인지 모르는 21세기를 살고 있다. 어떤 삶을 사는지, 그저 서로의 얼굴이라도 돌아봐 마주할 여유가 없는지, 시끄러웠던 건 윗집이나 옆집이 아니라 내 속이 아니었을지. 그러니까 이웃이 있어 가능한 이야기가 점점 사라지는 것이, 그리고 그것이 아쉬울 게 없는 사람들이 많은 이 세상이 나는 너무 수상하다. 그러나 한가지. 코로나로 닥친 이 불편함이 모두의 문제라는 사실이 위안이고 희망이다. 나가지 못하며 만나지 못하지만, 이곳에 내가 살아있다. 다음 사람을 위하여 내가 여기 살아있음을 남긴다. 상생과 협력. 바람에 나뭇잎이 일렁인다. 바람의 소리는 실은 바람이 아니라 가까운 것들이 서로 부딪혀 나는 소리다. 그렇게 나무가 흔들리고, 꽃이 피며 봄이 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번성이다.
by 최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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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창현
좋은글 잘보았습니다. 저의 어렸을때가 생각나게 하는글이군요 최서영 작가님 젊어 뵈시던더 어려운 유년기를 보내신것이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재미있었습니다. 같은 마음을 느낀다는것이 좋았습니다. 수고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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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작가님 이번 글도 잘 읽었어요. 작가님이 글로 그리신 유년시절에서, 제게도 익숙한 풍경이 떠올라서, 멈칫 하게 되었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아주 어린아이였는데도, 푸세식 화장실이 있던 아빠의 집이나 고모네 집을 못사는 집, 저런 집에서 살면 불행하겠다 - 생각하고 양변기가 있던 작은아버지집은 잘사는 집,살기 좋은 집 이라고 판가름해서 생각했던게 생각났어요. 집에서 누군가와 상생하며, 지지고 볶았던 것들이, 내게 자양분이 되는것인데, 어릴땐 그런 의미 보다는 당장의 생활 환경,보이는 것으로 행복의 당락을 생각했던것 같아요.., 그런 욕심을 차차 걷어내며 살고 싶어하고 있어요. 작가님 말씀대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공간은,서로가 서로의 쉴곳이될 수 있도록, 안부를 묻고, 같이 협력하며 살아가는 그런 '공간' 을 만들어 가야하는게 이 시기의 숙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서영📓
글을 쓸 때보다 월간사생활 시작한 후로는 이렇게 작가님들의 코멘트를 볼 때 더 좋아요. 오늘은 특히 고래님 댓글 읽으면서 더 그렇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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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는지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저도 여전히 주택을 선호하거든요. 이번 글도 작가님만의 힘이 느껴져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문단은 단호한 느낌인데도 정말 따뜻하게 느껴져서 신기해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서영📓
우와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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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영
휴식과 소통보다 노동과 단절의 공간으로 변해가는 집. 집에 얽힌 추억과 현주소, 시대유감까지 다양한 이야기 재밌게 읽었습니다.
서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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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트루
집이라는 개념을 글로 옮기면서 어떤 주제로 써야할까 고민하였는데 작가님의 글을 보니 왠지 제 생각과 비슷하셔서 깜짝 놀랐답니다! 흥미롭게 그리고 진지하게 잘 읽어보있습니다:) 공간과 거주, 그리고 집. 고민해볼만한 문제임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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