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긴 시간을 지나 다시 너에게 편지를 써.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편지하지 못한 동안 나는 열심히 논문을 쓰고, 심사를 받았어. 그리고 마침내 지난 수요일, 논문심사 종결 자료를 모두 제출했어.
이제 졸업이야.
이렇게 적고나니 마음이 왜이렇게 아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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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부터 여름, 가을, 그리고 지금의 겨울까지 많은 과업을 수행해야 했어. 몸과 마음 건강하게, 아프지 않게 그 일들을 해내고 싶었고 그래서 애를 많이 썼었어.
스스로도 노력했고, 곁의 사람들이 지지해준 덕분에 그 계절들을 원하는만큼 잘 보낼 수 있었어. 순간순간 즐거웠지만 지치기도 했었기에 '다 끝나고 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종종했었는데, 거의 모든 것이 끝난 지금 어떤지 보니… 짧은 해방감 후에 내내 슬퍼하고 있어.
정신없이 달려 통과한 결승점 앞에는 너무 많은 헤어짐이 놓여 있더라고.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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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 헤어짐들을, 상실감을 들여다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사실 그건 그렇게 어렵진 않아. 이제 서른 한 살이라서, 많은 상실을 지나며 내게 잘 맞는 애도의 방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거든.
나의 애도는 첫 만남에서부터 시작 돼.
나는 후에 애도가 필요할 것 같은 관계나 공간, 시간을 감지하는 능력… 그러니까 촉이 발달한 편이야. 그런 촉이 오면 일단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
첫 번째로는 그 사람이나 공간으로 흐르는 마음을 막는 것. 이건 주로 상황상 여유가 없을 때 이렇게 하는 편이야.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 마음을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두는 것.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 나는 함께 지내는 동안 후회 없이 마음을 전하려고 해. 이게 내 애도의 준비동작이야. 우리 이제 만나게 되었으니 반드시 헤어지게 될텐데 그게 언제가 되더라도 잘 이별할 수 있도록. 미리 사랑한다고 잘 말해두기. 아니, 말보다도 그 사랑을 그 대상이 느낄 수 있도록 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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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입학하고 나서는 후자를 선택하게 된 일이 정말 많았어. 시간과 공간, 사람 골고루.
내게 시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시간에 나를 충실히 투입하는 거야. 시간에 나를 충실히 투입할 때면 ‘몰입’이 일어나지.
공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물리적 공간에서 생긴 기억들을 간직하는 것. 그렇게 기억들이 덧입혀진 공간을 나는 ‘장소’라고 불러.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는 늘 서툴기에 대상관계이론 학자들과 에리히프롬이 일러준 방법을 자주 떠올리곤 했어. 그 사람을 마음으로 비추어주고, 담아주는 것. 나의 현시를 주고, 그들을 궁금해하고, 그 세계를 있는 그대로 알아봐주고, 그 사람이 자기답게 살아있는 쪽을 선택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 그럼으로써 사랑이 흐를 때면 안전하다는 직감 속에서 아이처럼 웃거나 울게 되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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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많은 순간 몰입하고, 몇몇 공간에 장소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또 많은 사람들과 웃고 울고 했었어. 후회없이, 마음껏-
그래서 그 시간과 장소, 사람들과 헤어지는 지금.
후회나 자책, 원망 없이 온전히 슬퍼할 수 있어. 나는 이걸 양질의, 또는 순도 높은 슬픔이라고 불러.
순도 높은 슬픔에 머물러 있는 지금은, 누가 툭 치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지만 깨끗하게 언 겨울의 연못처럼 마음이 투명하고 고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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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새로운 시작, 그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어.
그러다 알게 되었지. 지난 2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나는 내 주변 환경과 화합하며 세상을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로 만들어 냈다는 것을.
거울 같은 세상은 마술적이고 신기해. 마치 으앙 울면 엄마가 안아주거나 밥을 먹여주던 아기 시절처럼, 내 마음에 떠오른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이 세상에 그대로 드러나곤 하지.
그런 생각을 하고 난 후에 일기에 이렇게 적었어.
‘세상은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야. 새로운 풍경을 보여주는 창이지’
그러고 나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거울을 열어 그 뒷면을 볼 용기가 생기더라고. 그리고 마음이 조금 두근거리기도 했어.
그 풍경은 이전의 거울처럼 꼭 내 마음같진 않겠지만, 아마 그래서 아름다울 거야. 나는 그 풍경들 중에 또 어느 풍경을 사랑하게 될 거고 거기에 거울 집을 지을 테고, 거기 머물며 많은 걸 사랑하면서 또 애도를 준비할 테고…또 언젠가 고요하게 언 호수 같은 마음이 되어 창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겠지.
이 반복이 나는 마음에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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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너는 삶에서 무엇을 반복하고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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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2025년 끝자락에 선 기분이 어떨지 궁금해.
올해와 잘 헤어지고 내년을 반갑게 맞이하길 바랄게.
한해 동안 많이 고마웠어.
2026년에 만나!
2025.12.28. 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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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의 답장을 나눌게, 호랑이를 만난 적이 있는지, 혹은 지금 대치중인지 물었었어.
그럭저럭 봄, 여름, 가을을 지나고 겨울이 되었네. 민경아! 안녕? 송년 분위기로 들썩이고 있는 12월의 풍경 속에 나를 앉혀본다.
한 해를 돌아보니 덜컹 덜컹 겁이 났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 사실은 고양이 만큼 작은 동물인데도 호랑이 만큼이나 크고 두려운 동물을 맞닥뜨린 것처럼 호들갑을 떨게 되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나이 탓인 것 같아. 가령, 멀리 살고 있는 아들이 독감에 걸려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야 전해 들었을 때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게 되거든. 하다못해 드라마를 보더라도 사고 나는 장면, 질병을 앓게 되는 장면 등등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본래부터 나는 심장이 혹은 강단이 약한가 봐. 둘 이서 이야기를 나누라면 종일이라도 끄떡없지만 서너 사람이라도 모여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심장부터 벌렁거리거든.
어렸을 때는 아무 해도 끼치지 않는 길량이만 보면 소리소리 지르며 대피하는 통에 엄마에게 많이 혼이 났었지. 그런 내가, 작년 어느 날 해 거름에 앞 산 산책을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주 등산로를 벗어나 걸어가다가 덜컹 심장이 내려 앉는 듯한 공포에 사로잡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뒤돌아서서 냅다 달아난 적이 있어. 그것은 겨우 새끼 맷돼지였고 게다가 길에서 마주친 것도 아니고 저~기 아랫쪽 어디에선가, 텃밭에 심어 놓은 가지를 먹다가 그 특유의 콧소리를 내었을 뿐인데(사실 본 것도 아니고 소리만 들었어) 진짜 심장이 내려앉아 쿵쾅거리고 정신이 아득해졌었지.
그래서 네가 느꼈을 공포를 십분 이해할 것 같아. 살면서 누구나 당할 수 밖에 없는 그러한 순간이 오기도 하지만 그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정답이 없는 것 같아. 민경이는 스스로를 잘 다독여 오히려 양질의 도파민을 얻었다니 멘탈 갑인듯! 나는 쉽게 정신이 무너져 버리는 것 같아. 멘탈이 약한 것 같아. 멘탈을 튼튼하게 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해 보아야겠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고.. 호랑이를 맞닥뜨리게 된다면 차라리 호랑이처럼 덤벼보는 것은 어떨까? 사실,우리가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정쩡하게 알기 때문인 것 같아. 애초에 아무 것도 모르거나 혹은 확실하게 알거나, 이 두 가지 경우라면 두려울 것이 없는 것이 없을 것 같아. 내가 순진무구 아기는 아니니까 방법은 한 가지! 폭넓은 깊이 있는 지식이 필요한 것 같아.
그런데 무시무시한 호랑이도 자꾸 만나다 보면 심드렁해지는 것 같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다보면 무섭다기 보다는 우울이나 불안으로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되는 것 같아. 트라우마가 생기기도 하고, 내가 요즈음 겪고 있는 심드렁한 호랭이는 위에 이야기했듯이, 노화로 인한 신체 기능의 저하야. 가령,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먹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던 음식도 조심해서 먹어야 하고 분노 조절에도 문제가 생기는 것 같고 너무 과한 운동이 해가 되고 특히, 수면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 언제쯤, 아니면 어떻게 자연스런 노화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봉제 호랭이 대하듯 편한 마음이 될까?
우리 한 해 마무리 잘하고 내년에 만나자!
p.s. 논문 심사는 끝이 났는지?From.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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