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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호랑이와 호랑이 인형🐯

2025.11.03 | 조회 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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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한 마음은 결함이 아님을,

 

안녕 결, 민경이야.

 

날이 많이 쌀쌀해 졌어.

출퇴근길 열차 안에서 기침 소리가 많이 들려오는 요즘이야.

 

어떻게 지냈니?

감기 걸리진 않았었는지, 마음 아픈 일은 없었는지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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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있지, 되게 무서운 일이 있었어.

근데 너한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왠지 그 일이 되게 만만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해, 그래도 그 일이 일어난 그 날은 정말 무서웠어.

 

10월 13일이었어. 랩실 친구들이랑 시간을 잘 보내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무심코 확인해본 메일함에 논문 데이터가 도착해 있었어. 부랴부랴 통계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결과를 넣어보았는데.. 선행 연구랑 너무 다른 숫자들이 모니터 위로 떠올랐어. 같이 보던 친구들도 말을 잃고, 나도 어안이 벙벙했어. 그날 일기에 나는 이렇게 적었더라.

 

‘데이터 확인하던 순간.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기도 하고, 다 빠져버린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신기한 감각이었다. 정말 상상도 못했던 (괴로운) 일을 마주할 때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이전에도 느껴본 적 있었던 것 같아서 생각해보았는데

전세 보증금 1억을 이사 나가기 1시간 전까지 못 받았던 때(심지어 대출받은 거였고, 그 날이 상환해야 하는 날이었어), 그리고 2년 만났던 남자친구에게 갑자기 이별 통보 받았던 때가 떠올랐었어.

 

그날 밤에는 잠도 잘 오지 않았어. 단순히 ‘어려워졌다, 힘들겠다’라는 느낌이 아니라, 현실감이 없어서 괴로웠어.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을 수 없어! 무서워!’라고 외치는 나를 밤새도록 다독였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누가 죽은 건 아니니까 괜찮다.’, ‘나에 대해서 하나라도 알려주는 일은 좋은 일이다.’, ‘내가 특별히 뭘 잘못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다.’ 같은 말을 해주며, 유튜브에서 자애명상을 찾아들으며.

 

그리고 내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지켜보았어.

이 마음을 느껴보았으니, 그리고 피하지 않았으니 내담자를 초대할 내 마음의 집도 넓어지는 거라고 생각했어.

 

그렇게 나를 세웠어.

 

그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팽팽 돌리며 정보를 모으고, 생각하고, 도움을 구하고 정리했어. 어떻게 할지 방향성이 정해지니 1차 마음의 안정이 찾아왔고,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지금은 안정을 찾은 상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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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을 겪으면서 종종 ‘원시 시대에 호랑이를 만났다면 이런 느낌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결, 너도 호랑이를 만났던 적이 있니? 혹시 지금 호랑이와 대치 중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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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그 일을 지나면서 무지 괴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좀 행복하기도 했어. 일을 해결하는 게 너무 고통스러운데, 하나씩 해결될 때의 도파민이, 그 양질의 도파민이 참 달더라. 일상에서의 도파민이 넘쳐 흘러서 인스타그램에 접속하지 않은 지도 벌써 2주가 되었어.

 

그리고 요즘 밥 먹고 나서 너무 졸려서 진짜 당 조절 좀 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일이 있고 나서는 밥 먹고 졸린 증상이 사라졌어. 문제를 해결한다고 당들이 모두 에너지로 바뀌어서 일까..? (웃음)

 

마지막으로 요즘 사랑이 많아졌어. 주변 사람들을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게 된 것 같아. 이건 참 반가운 모습이야.

 

상대를 대하는 태도가 곧 나를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이 넘친다는 건 내가 나 스스로를 잘 사랑하고 있다는 것.

 

예전에는 힘든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일 자체보다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되는 게 더 힘들었어. 근데 이제는 힘들어하는 나를 연민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평소보다 더 사랑해주는 게 가능해진 것 같아서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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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월은 이랬어.

처음에는 야생의 호랑이 앞에서 벌벌 떨다가, 그 호랑이를 길들이고, 그 호랑이가 새끼 호랑이처럼 느껴지다가,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는 최종적으로 호랑이 인형이 된 것 같아. (웃음)

 

지금은 이렇게 웃으면서 편지를 쓰고 있지만, 논문심사까지 또 몇몇의 고난이 있을 거야. 힘들어질 때면 네게 보낸 이 편지를 다시 읽으러 와야 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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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이번 달에도 내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가능하다면 네 이야기도 내가 알게 해줘.

그럼 다음 달에 다시 편지할게!

 

20215.10.27. 민경

 

어느 비 개인 오후에 찍은 클로버 사진을 동봉할게:)
어느 비 개인 오후에 찍은 클로버 사진을 동봉할게:)

 

p.s. 다음 편지는 논문 심사가 끝나는 12월 8일 즈음에 보낼게!


 

답장은 여기로 보내주면 돼, 더 빠르게 마음 나누고 싶다면 아래 댓글로 남겨줘!

 


 

👀지난 편지의 답장을 나눌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게 있는지 물었었어.

 

시월에 쓰는 편지!

알록달록 이쁘다. 나도 한 번 만들어보아야겠어. 한 눈에 보이면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은 나도 경험해본 적이 있어. 내가 한동안 집 정리 채널에 꽂혀 따라해 보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내가 소유하고 있는 물건도, 가령 옷이나 주방 도구, 자잘한 소품들을 종류대로 모으고 정리하다 보니 내가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 안정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난 추억 연휴에 저런 엑셀 표를 작성했더라면 덜 혼돈스러웠을텐데.. 뒤늦은 아쉬움이 든다. 지난 연휴가 너무 길어서 뒤죽박죽 지내다 보니 연휴 지나고 살짝 몸살을 앓았었거든. 사실 다가오는 연말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원래하고 있던 파트 타임 일 외에도, 십일월에 전국적으로 시행되는 인구 주택 조사 조사 원으로 활동하게 되었거든. 늘 해오는 일이 아니라 낯설기도 하고 냉담한 이웃을 만나게 될까봐 벌써부터 두렵다. 엑셀표 제대로 만들어서 오밀조밀 잘 지내보아야겠어.

그렇지! 오랜만에 산행을 하면 당일에는 뿌듯하고 몸이 가뿐한데 며칠 지나면 근육통이 생기잖아. 그런데 식사 중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생각만으로도 황당하다. 하지만 하루를 넘기기도 전에 사과를 받았다니 일단락 되었던 것 같은데 민경이는 그러지를 못했구나. 살다 보면 별의 별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외부 자극이 없어도 공격하는 사람, 자극이 없는 한 온순한 사람, 이러나 저러나 반응이 없는(혹은 반응을 자제하는) 사람 그리고 공격에 반응하는 태도도 다양한 것 같아. 나의 경우는 예전에는 무조건 참고 속으로 삭이는 스타일이었는데 그러한 태도가 나를 좀 먹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예민한 상황을 주로 피하게 되었고 지금은 어지간한 자극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 같아. 나이듦의 순영향!

책을 많이 읽어 본 사람에게 ‘좋고 좋고 또 좋은 것이 있을까?’ 물어보니 불가능하다고 답을 해 주었지. 좋고 좋고 좋으면 ‘좋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면서, 행복이란 상대적인 것일까? 마음 가짐일까? 그래도 나의 요즘 바램은 좋고 좋고 또 좋고 자꾸 좋기만 한 상황을 누리고 싶은 것이야. 불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만 나의 눈높이를 변경할 필요가 생기겠지만, 나쁘고 불행하고 안 좋은 일 자꾸 생기고 그래서 슬프고 절망적이라면, 그러한 소용돌이를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초에 그러한 소용돌이에는 왜 휘말리게 되는 걸까? 견딜 수 없는 더위가 끝나면 가을이 오고 또 견딜 수 없는 추위가 다 하면 봄이 오듯이 그렇게 인생도 순환하는 것이려니 하고 견뎌야 하는 걸까?

글쎄..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수수께끼 같기도 하네! 그런데 질문 자체가 희망적인 것 같아.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다’라는 생각보다는 경쾌해서 기분 좋게 생각을 정리해 보았어. 우선 ‘커피!’ 카페인을 섭취하면 나는 기분이 업!업!되어서 생산적인 사고를 많이 하게 되고 기분도 상당히 좋아지지만 약간의 위장 장애와 더불어 숙면에 방해를 받게 되지. 그리고 바람 혹은 바램. 요즈음 유행하는 식으로 살짝 중의적인 느낌을 담아보았어. 글자 그대로 바람일 수도 있고 무엇을 원한다는 바람일 수도 있는데 어떠한 의미이든지간에 호불호가 있는 것 같아. 한여름 나무 그늘 아래에서 바람을 맞는다면 그리고 가을 초입에 긴 소매 옷을 입고 나선 저녁 산책 길에 바람을 맞게 된다면 얼마나 시원하니? 하지만 때로 너무 강한 바람이 많은 피해를 입히기도 하니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잖아. 그리고 특히, 누구에겐가 무엇을 바라게 된다면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좋은 관게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되는 것은 좋지만 수고 없이, 바램만 거칠어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될 것 같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경 안의 민경이 좋기도 하고 그렇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의 자아가 못마땅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하는 것 같아. 사실 나는 민경이랑은 반대로 ‘테토녀’인 것 같아. 비록 분홍색을 좋아하고, 때론 양 갈래 머리를 하고 치마를 입는 것을 좋아하는 천상 여자 같지만 내면은 고집이 세고 자존감이 강하고 우직하니 잘 참아내는 편이고 말수도 적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하지만 나는 이런 내가 좋고 크게 불만은 없었던 것 같아.

11월이라 생각하니 훌쩍 연말에 다가서는 기분이 든다. 시작이 있으면 끝맺음도 있어야 하겠지. 끝이 좋아야 한다는데 2025년 마무리 잘하자.

From.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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