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오늘은 네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지?하며 지난 오월을 톺아보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어. 아직 어느 장면에도 도달하지 않았음에도 감정이 차오르는 게 느껴지네.
꽤 오랫동안, 편지 초입에 늘 '너무 많은 일이 있었어..'하고 말하는 것 같아 미안해. 31년 동안 살면서 이렇게 바쁘게 지낸 적이 별로 없었는데, 아주 마라탕 맛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어. 숨이 가쁘기도 하지만 이 생생함이 감사하고 즐겁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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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시기마다 내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단어들이 있는 것 같아. 20대를 지나면서는 '다정'이나 '폭력', '자유', '영원', '유한함' 같은 단어들이 오갔었고, 한동안은 그리 중요하게 여겨진 단어는 없었던 것 같아. 근데 요즘에 내게 다가온 단어가 있어. 바로 '통제'.
적당하게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또 그 욕구를 충족시켜줄 통제감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야. 하지만 지나치게 큰, 또는 당위적인(통제되어야만 한다) 통제 욕구는 스트레스로 가는 지름길이지.
내가 통제 욕구가 크고, 또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최근 알게 되었어. 너무 추상적이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먼저, 나는 내 감정과 성격을 통제하고 싶어. 열등감, 우월감, 우울함, 불안함 등 내가 부정적이라고 여기고 있는 감정은 웬만하면 반나절이 안 넘어갔으면 좋겠고, 글쓰기나 상담을 할 때 도움될 정도로만 느끼고 싶어. 늘 기분 좋고 낙관적인 상태에 있고 싶고, 그런 와중에 평온함이 늘 손 닿을 거리에 있길 바라.
성격은 다정했으면 좋겠어. 부드럽게 말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상상할 수 있고, 물어볼 수 있는. 동시에 재미있었으면 좋겠어. 사람들이 나랑 있는 시간을 유쾌하게 기억하고, 또 다시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웃음) 또 현명했으면 좋겠고, 침착했으면 좋겠고, 너그럽고 여유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위 두 문단을 적고 나니 웃음이 나오네.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목표를 세우고 내 감정과 성격을 통제하려고 했다니.. 나에 대해서는 이 밖에도 주어진 업무들과 과제들을 늘 평균 이상으로 해내고 싶어하는 것 같고 그 방향으로 나를 통제해나가는 것 같아.
타인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어. 크게 두가지인데 먼저 나랑 놀아줬으면 좋겠고, 또 내게 늘 진심을 보여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둘 모두 쉽지 않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친구들과 같이 학교에서 매일 만날 수 있었을 때, 방어기제가 미처 발달하지 않았을 때) 그게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어려운 것 같아.
일적으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다 일을 잘하고 똑똑하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현실적인 바람은 아니지.
통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버킷리스트를 적는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네. 내게 통제란 그런 건가봐, '바라는 상을 현실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
그런데 이제 그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네게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러면 어떡하지? 바라는 것을 만들지 말까? 하고 근래 고민을 하고 있었었어. 하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삶은 내게 무동력 상태처럼 느껴져 고민이 깊어졌었지.
하루는 아침부터 협업하는 팀에서 전화가 온 날이었어. 그날은 오후 출근이었는데 부재중 전화가 찍힌 걸 보고 불안해서 바로 전화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
전화를 끊고 나니 화가 나기 시작했어. 여유로운 아침을 보내고 싶었는데 망쳐졌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그걸 받아들이기 힘들었지. 그렇게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가 번뜩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장에 적었어. 그러고 나니 마음이 좀 편안해지더라고.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구분하고, 받아들이기
없는 것: 업무 관련 일들, 다른 사람의 마음, 관계
있는 것: 자는 시간, 운동, 먹는 것, 입는 것, 방 청결 상태, 글쓰기, 내 앞의 사람에게 온 마음을 쏟고자 하는 마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통제하려다 실패하고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타 부서에서 아침부터 전화가 온 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관계를 통제하고 싶어 에너지를 많이 쓰고 있는 나의 모습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되었어. 반대로 막상 하고자 하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는 영 손을 떼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앞으로 나의 통제욕구를 통제할 수 있는 것들로 해소하자고 다짐했어. 아직은 다짐뿐이라 여전히 전자에서 통제감을 느끼고 싶어하지만 서서히 옮겨갈 것이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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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너는 어떤 걸 통제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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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앞에 있는 사람에게 당신의 온 마음을 쏟아주십시오."
오월에 알게 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야. 많이 바쁘지만, 순간 순간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는 온 마음을 쏟으려 애쓰고 있어. 사람들을 사랑하니까.
네게 편지를 쓸 때도 마찬가지야. 우리 한달에 한번 이렇게 띄엄띄엄 만나지만, 늘 이 편지를 쓰는 이 순간에는 네가 온 마음을 쏟으려 하고 있어. 늘 함께 해줘서 고마워.
그럼 결, 우리는 유월에 다시 만나자. 점점 여름으로 가는 날들에도 평안하기를
2025.05.30. 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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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의 답장을 나눌게,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 있는지' 물었었어.
안녕, 민경. 사월이 어느새 지나가고 오월이 되었네.
비가 많이 왔지만 그치고 나니 나무들이 한껏 키가 커진 것 같은 오월이야.
고된 사월을 보내느라 고생 많았지? 나도 사월은 참 정신이 없었던 것 같아. 바쁘고 분주한, 여유가 없는 상황에서는 마음이 아주아주 콩알만해지는 것 같다니까. 이리 삐뚤고 저리 삐뚠 마음에 속상해서 마음을 잘 먹어봐야지, 하다가도 간장 종지만해진 내 마음을 발견하곤 해. 여유롭고, 마음이 푸근한 날엔 누구에게도 관대하고 더 사랑 넘치게 반응할 수 있는데 말야! 그래서 여유를 잘 가져보자고 다짐하는 요즘이야. 여유를 만드는 과정 가운데 마음도 여유로워지길 바라면서. 네게도 오월은 그런 여유와 사랑이 넉넉한 달이 되길 :)From. 새싹
안녕하신가요? 민경 님! 읽기 쉬운 책의 책장을 넘기듯 세월이 술술 잘 넘어가는 것 같아. 오월을 넘기고 유월을 맞으며 네가 던진 질문을 곱씹어 보고 있어.
“결, 너도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이 있니?”
-> 대답 : 수도 없이 많이 떠나보냈지!
사실 나는 항상 만남의 초입부터 떠날 준비를 하는 것 같아. 잘 헤어지기 위해서 차곡차곡 사랑을 아낌없이 쌓아가다가 겁에 물이 가득 차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지. 언제부터, 왜 이러한 경향이 생겨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민경이의 심리학적 분석의 시각으로 보면 좀 이상한 거 맞나?
그런데 나는 물리적 헤어짐은 더딘 것 같아. 물건에 애착이 많아서 쉽게 버리지 못하지. 한번은 저장 강박증이 있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집을 방문하여 물건을 치워주는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 좁은 아파트 주거 공간에 발 디딜 틈만 남겨주고 물건을 가득 쌓아 두어서 십 여 명 봉사자가 꼬박 한나절 물건 치우는 일에 땀을 쏟은 적이 있었어. 나는 설마 그 지경까지는 아니지 싶으면서도 강박증이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요즈음은 한가지 한가지 정리하고 있는 중이야. 정리를 하다 보니 디지털 자료도 손을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엄두가 안 나네.
그런데 정말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 가족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모르는 것 같아. 노안이 오면 가까운 글씨가 잘 안 보이는 것처럼, 남들 눈에는 훤히 보이는 진실, 사실을 귀신 씌인 듯 전혀 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 그리고 떠나게 되면 비로소 환히 알게 되고 깊이 후회를 하게 되는 것 같아. 그러므로 가까운 사람에 대하여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자주 자주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아야 할 것 같아.
지난 오월에 드디어 커피 습관과 이별을 하였다. 몸이 망가지는 깊이를 알지 못하고 달콤한 유혹에 빠졌었지, 한 삼십 년은 된 것 같아. 궁지에 몰리고서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끊게 되었는데 그리고 비로소 깨닫게 되었지, 카페인이 주었던 인공 달콤함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연의 단 맛을.
지난 편지에서 너가 ‘예전 만큼 아프지 않았고 아프지 않은 것에 대하여 아팠다’고 했었나?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공감이 갔어. 무감각해졌던 느낌! 그런데 오늘 산에 올랐다가 내려 오면서 뭔가 내 안에 가득찼던 것들을 비워내고 오는 걸음이 가벼웠던 것을 떠올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비우는 행위가 반드시 필요하구나. 우리가 계속 먹기만 하고 장을 비우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면 결국 탈이 나는 것처럼 스트레스든 생각이든 물건이든 비워야만 비로소 새로운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것 같아.
건강한 유월 보내고 다시 만나자!From. 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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