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결, 민경이야.
요즘은 거리를 걸을 때 만두가 된 느낌이 들어.
내가 만두라고 생각하는 게 이 날씨를 받아들이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웃음)
결, 무더운 날씨 속에서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뭉근하게 찌는듯한 날씨를 피해 집 근처 카페에 와서 편지를 쓰고 있어.
창밖의 여름은, 참 푸르고 예쁘기만 하네.
언젠가 여름에 대해 ‘모든 것이 자라나는 계절’이라 쓴 적이 있어.
전주 여행을 갔다가 대구로 돌아오던 버스 안이었던 것 같아.
한금 들어오는 강렬한 볕에도 불구, 버스 안은 춥게 느껴졌고, 창에는 무성한 초록이 쉼없이 쏟아지고 있었지.
그게 참 좋았던 것 같아. 자라나는 모든 게 아름다워 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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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랩실 동생이랑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에 대해 말했어. 사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지만, 무심결에 나온 동화 제목은 ‘잭과 콩나무’. 콩나무가 쑥쑥 거침없이 하늘까지 자라는 게 너무 짜릿했다고 덧붙여 말했어. 그러곤 동생도 웃고, 나도 웃었어.
잭과 콩나무를 인상 깊게 읽었던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자람’은 내게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이 늘 강하게 존재해.
20대 때는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어.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덜 상처 줄 수 있을지(아예 안 주면 제일 좋고), 어떻게 하면 다정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했어.
30대가 된 지금의 나는 직업인으로서 성공하고 싶어. 그래서 어떻게 더 상담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그것에 도움이 되는 곳에 돈을 쓰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에 시간을 써.
그러한 일 중 하나가 교육분석(상담사들이 받는 상담)인데, 방학을 맞아 눈여겨보던 선생님과 상담을 시작했어.
지난주에는 쉬는 시간을 불안해하며 과하게 각성되는 모습들에 대해 다루었고, 그러면서 내가 지금 진로 관련 활동에 매우 몰입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그 정도가 상당하여 나를 많이 몰아붙이고 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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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랑 통화를 하다가 내 하루 일과를 말해주었는데 그 친구가 이렇게 말했어.
“와, 내가 너처럼 살면 매일 잘 때마다 완전 뿌듯할 것 같아!”
나는 그 말이 낯설었어. 대학원에 입학한 후로 평균적으로 거의 매일 그런 하루들을 보내면서도 나는 늘 잠들 때,
‘오늘은 이게 좀 아쉬웠어.’
‘이거 더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랬어?’
이런 말들을 내게 건네곤 했거든.
그리고 무언가 잘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축하나 인정은 최대한 짧게 끝냈어.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불안해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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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내 말을 들으시더니, 그런 과정으로 번아웃과 소진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어. 그리고 건강한 삶에는 관계, 일, 쉼과 놀이가 균형 있게 분포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일하는 기계가 되는 길로 가고 있다고, 지금은 성취가 안정적이지만 후에 그렇게 되지 못할 때 크게 무너질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어. 그리고 그 세 영역이 서로 주고받는 시너지가 있다는 말도 전해주셨지.
그 말을 듣는데, 나는 조금 슬펐던가? 아니, 지금 이걸 알아서, 너무 멀리 가서 돌아오는 길이 너무 힘겨워지기 전에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마침 방학이니, 못 보았던 가족, 친구들과 시간도 보내고, 앞선 성취들에 대한 기쁨도 음미하고, 다가올 긍정적 감정들도 만끽해 보겠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어.
왜 이렇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지,
다른 사람의 인정을 필요로 하는지,
왜 보통의 나로는 수치심까지 느끼게 되는지는
앞으로의 상담에서 다루어보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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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 너는 만약 상담을 받게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할 것 같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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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말에 종강을 했지만, 조교일은 계속되기에 매일 학교에 가고 있어.
조교실에 앉아 조용해진 학교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참 평화롭고 나른하고 좋아.
숨 가빴던 지난봄을 보내느라 수고했을 나를 지금이라도 조금 봐주려고 하고 있어.
결,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건강하길.
다정한 마음을 스스로에게 건네며 지내길.
2025.07.06. 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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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편지의 답장을 나눌게, '어떤 걸 통제하고 싶은지' 물었었어.
안녕, 민경. 잘 지내고 있지? 정말 오랜만이다. 이렇게 글로 인사하는 거. 한 달에 한 번씩 민경의 편지를 읽기만 했는데. 오늘은 답장이 쓰고 싶었어. 그동안 쓰고 싶다 하다가도 매번 다음에 다음에 하고 넘겼었거든. 방금 전에 저녁 먹으면서 곁들인 와인 두 잔 덕분인지도 몰라. 6월 2일에 보낸 편지를 오늘에서야 읽은 것도 와인 덕분인지도 모르겠어. 메일이 온 지 알면서도 바로 읽지 않고 두고 보기를 몇 번이었어. 그랬던 게 몇 달 된 것 같아.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이유를 모르지 않는데 그게 또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고. 원래 겨울 동안 너울을 심하게 타는 편인데 올해는 덜 그런 것 같으면서도 아직까지 잔잔하게 계속 물결을 타고 있는가 봐. 그래서 보고 싶으면서도 다음으로 미루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작용했던 것 같아.
요즘 나는 생활인으로 살아가는데 집중하고 있어. 자의반 타의반 그렇게 되었는데 이렇게 저렇게 이 감각이 그동안 둔감했던 부분을 깨워줘서 좋아. 그러면서도 생활'만' 하고 있는 지금이 불안하기도 하지.
어떤 걸 통제하고 싶은가. 예전엔 정말 통제하려는 게 많았어. 내 감정, 밖으로 보이는 행동, 내가 바라는 가족들의 이상적인 모습 etc... 그래서 내가 나를 너무 괴롭히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바보 같이 굴었던 것 같아. 이제 조금은 알겠는데. 그래서 그 마음을 조금 놓으니까 요즘은 가벼워졌어. 실은 말도 못하게 많이. 그래도 아직 놓지 못한 게 있지. 많지. 그치만 지금 요즘 좋아. 요즘만큼 나한테 솔직한 적이 있었나 싶거든.
당신(민경, 나는 상대를 '당신'이라고 지칭하는 걸 참 좋아해^^ 누구든 나이 성별을 불문하고)한테 메일을 쓰고 있는 지금, 어서 메일을 마무리 짓고 내 앞에 있는 우리 알타이(우리집 꼬맹이 강아지)에게 나의 온 마음을 쏟아주어야겠어. 알타이랑 같이 산 지 1년 반이 넘어가는데, 매 순간 배워. 자기 앞에 있는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대하는 걸. 그래서 참 좋아, 요즘. 이래저래 ㅎ
언젠가 어디서 반갑게 만나.
그동안 건강하고 무탈하게, 잔잔하고 찬란하게 온전하길 바래.2025.6.17. 소정, 은봉, 아눈
더위가 무르익어가는 계절을 또다시 맞이하면서, 문득 작년 이 맘 때 민경이가 무슨 내용의 편지를 보냈더라 궁금해져서 편지지를 뒤져본다. 그런데 어쩐지 딱 7월의 편지지만 빠져 있네. 무슨 상황일까.
간 밤엔 너무 피곤하여 뒤척이다가 살풋 잠이 들었는데 머리카락이며 베갯잇, 이부자리가 땀에 홈빡 젖는 바람에 잠이 깨었어.. 이제 겨우 더위 초입인데 싶은 생각에 한 숨이 푹푹 나온다. 물론 냉방 기기를 가동하면 좀 더 쾌적한 수면을 취할 수 있겠지만 어쩐지 나는 선뜻 인공의 힘에 내 몸을 맡기고 싶지는 않더라. 가능하면 자연으로, 내 힘으로 더위를 이겨 내고 싶은데 내 역량의 한계를 벗어나서 잠이 깨면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 같아.
생각해 보면 나는 내 주변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아주 강렬한 것 같아.매일 매일 계획 세우는 것 좋아하고 계획한 것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것도 일종의 통제 게임이겠지. 나는 이런 게임이 재미있어. 인생의 계획, 일 년 계획, 한 달 계획.. 그런 거 말고 아름 아름 조금씩 감당할 만큼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 즐거워.
그리고 나는 나의 영역을 벗어나는 상황이라면 애초에 컨트롤하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않아. 쿨~하게 렛잇비 한다기 보다는 자포자기해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컨트롤하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닌 어정정한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조곤 조곤 상황 파악을 하고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아.
요즈음 나는 '정리 마켓'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애독하고 있어. 매일 저녁 하루를 마무리 할 때, 20 여분 분량의 영상을 시청하면서 남의 살림살이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지. 다양한 지역, 다양한 형태의 살아가는 공간을 볼 수 있고 그 공간을 관리하는 이의 마인드를 들을 수 있어. 며칠 전 밤에 충격을 금치 못할 영상을 보았어. 탑 오브 탑 미니멀리스트 영상이었는데 본인의 사계절 옷이 패딩과 롱패딩을 포함하여 20벌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어. 여기 저기 처박혀 몇 벌인지도 모를 나의 의복 생활을 빗대어 놀란 것이 아니고 20 벌로도 충분히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 급 마음이 바빠졌어. 그래서 요 며칠 옷장을 비웠다가 다시 채우고 난리도 아니다.
영상에서 보았던 주인공들의 공통된 의견은 정리 정돈을 함으로써 공간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내가 조금씩 실천하면서 십분 공감하고 있어. 공간을 통제할 수 있으면 마음의 공간도 생겨나는 것 같아.
오랜 세월 정리하지 않아서 켜켜이 쌓인 먼지를 걷어내려면 많은 날들이 필요할 것 같은데 조금씩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나도 나의 공간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에너지를 모아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는 것이 현명한 삶이겠지.
통제하지 않아도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경지면 더 좋겠고.
민경아! 건강하고 지혜롭게 더위를 보내고 또다시 만나자!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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