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무엇을 쓰고 남길 수 있을까? 흰 종이 앞에서 쉽게 막막해진다. 무엇을 써야 하나 고민할 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다. 무엇을, 왜, 어떻게? 결국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답을 찾아서, 나는 연필을 들고 글자와 글자 사이를 헤맨다.
처음엔 남들과 다른 나 자신을 남기기 위해서 시작했던 일이,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다 보니 남들과 다를 것 없는 나를 만나게도 한다.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나의 이야기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지 의심하면서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 계속 해 나가는 일. 아직도 여전히 다 이해는 안 되지만, 그래도 좋아하고 그래서 계속하고 싶은 일. 내가, 하고 싶은 일.
예술가는 무엇일까? 남들과 다른 나만의 무엇을 창조하면서도, 그런 남들이 없이는 ‘다름’이 의미가 없는 상황을 떠올리며, 예술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남들과는 다른, 달라야만 한다는 사실에 사로잡혀 오히려 자신에게 매몰되는 사람들을 볼 때면, 혹시 나도 그런 모습이 될까 봐 걱정과 고민, 염려와 검열을 이어간다. 나는 진정한 예술가가,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나를 사로잡은 질문. 그 질문 앞에 선 나는 너무나 작고 초라했다. 이미 이 세상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대단한 작업과 작품을 내놓고 있고, 나는 그들처럼 대단한 재능이 없다. 그렇다면 포기해야 하는 걸까.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자꾸만 답 없는 수렁에 빠지고 만다.
그런 순간에 나를 꺼내주는 건, 생각을 멈추는 것. 그리고 일단 해보는 것. 지난겨울,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가고 있던 선배 한 사람이 내게 건네준 조언이었다.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일단 계속 글을 쓰고 어딘가에 투고하세요. 결과가 좋지 않아도 계속 쓰고 발표하기를 멈추지 마세요.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계속할 수 있게 될 거예요.
속는 셈 치고 그 말대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공모전 소식을 꼼꼼히 살펴보며 내가 도전해 볼만한 것을 찾아보았다. 희곡 한 편을 마감 기한에 맞춰 부지런히 써서 투고하고, 결과가 나올 봄을 기다렸다. 한 번의 완성을 경험했을 땐, 뿌듯하면서도 진이 빠져서 그다음 작품으로 이어가지 못했다. 희곡을 쓰는 것 말고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리고 봄이 되자 발표가 나왔다.
단 한 명의 선정자를 뽑는 공모전이어서, 만약 내 작품이 됐다면 분명 따로 연락이 왔을 텐데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래, 어차피 떨어졌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 아냐? 아주 모순적인 마음으로 공모 주최 홈페이지를 찾아 열었다. 공지사항에 올라온 당선자 발표문을 클릭, 화면을 아래로 조금 내리자, 공모전 당선자와 작품 제목이 적혀있었다. 떨어졌다. 콩, 그럼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대충 읽어 내리는데, 하단에 낯익은 제목이 보였다. 내 글이었다. 심사위원들이 이번 공모를 진행하며 내린 총평에 당선작과 내 작품을 포함해 총 세 편의 제목이 거론되었다. 선정은 되지 않았지만, 최종심에는 올랐단 소리였다. 쿵, 쿵, 쿵, 심장 소리가 커졌다. 내 글을 심사위원들이 봤구나, 마지막까지 고민했구나, 최종심에 오른다는 건 이런 거구나.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었다.
그래, 계속 글을 써야지. 다시 힘이 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최종심이 아니라 당선작이 되고 싶다. 조금 더 써보자. 내가 앞으로 더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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