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발견하는 반짝이는 것들이 있다. 불순물들 사이에 숨겨져 있던 사금이 드러나듯, 생각지 못한 순간에 본받고 싶은 어른을 만났다. 지난여름, 오래 몸담았던 선교단체에서 나왔다. 더 이상 그곳에 신뢰할 어른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당장 다음 달부터는 어떻게 생계를 이어야 할지 고민할 때 강사 제안이 들어왔다. 가을부터 진행하는 시민교육 프로그램의 주 강사와 그 밖의 자잘한 행정 사무 일이었다. 공교롭게도 남편과 내가 그동안 하던 일을 멈추기로 한 시기와 정확하게 맞물려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 강사 일을 제안한 심 선생님과 함께 주 강사로 수업에 들어갔다. 우리가 함께 맡은 강의는 ‘글쓰기’, ‘예술 영화 감상’, ‘고전 읽기와 낭독극’이었다. 세 가지 모두 내가 어디 가서 전혀 모른다고 할만한 분야는 아니었다. 사실 이전에 몇 번 해본 수업도 있었다. 다만 심 선생님은 내가 살아온 인생의 두 배 이상을 살았고, 서울의 어느 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도 꽤 오랜 시간 강의를 했으며, 15년간 베를린 유학 경험이 있다. 선생님과 나 사이의 큰 경력 차이를 그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기에, 그래서 이 자리가 내게 주어진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일단 나는 당장 돈을 벌어야 했고, 너무 좋은 조건의 일이었고, 내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시민교육은 그동안 내가 해본 강의들과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가르치는 내용이 같아도 수강자가 누구냐에 따라 수업의 구성은 확연히 달라진다. 수강생 대부분은 부모님 나이뻘이었고, 40대 이상의 각자 자신만의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다양한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일반적인 상식이 통할 것이라 당연히 기대했지만, 생각을 벗어나는 상황도 많이 마주했다. 이 수업 저 수업 겹쳐서 신청하고 몇 번 수업을 드나들며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 강의 중간에 강사 말에 끼어들어 논점과 상관없이 제 할 말만 하는 사람, 낭독극 발표를 준비하고 연습했는데 약속한 일정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 말 없다가 당일 결석 통보하는 사람까지. 나이와 직군에 상관없이 다양한 태도로 수업에 참석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의 모습에 놀라고 쉽게 포기하고 싶어졌다. 배울 태도가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은 없기에, 빠르게 이 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나의 최선이라고 믿고 있었다.
한편으론 그런 수강생들을 심 선생님은 어떻게 대하나 궁금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대하는 심 선생님의 모습에 더욱 놀라고 말았다. 선생님은 그게 본인의 약점이라며,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태도가 불량하고 무례한 사람에게도 선생님은 그 사람에 대한 존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사람에게 이유가 있겠지, 한 번만 더 기회를 줘보자, 하며 심 선생님이 7년 넘는 시간을 지켜봐 준 사람도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냐는 나의 질문에, 심 선생님은 자신의 선생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었음에도 그런 선생님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지만, 그 존중의 대상에 나도 포함되어 있음을 안다.
자신의 인생 절반도 안 되는 삶을 산 젊은이에게, 대단한 수상 이력 하나도 없는 작가에게 심 선생님은 자신이 내어줄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을 보였다. 나는 보조강사가 아닌 주 강사로 심 선생님과 동등한 위치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내 이력서에 쓸 수 있는 몇 줄의 말이 아닌, 나라는 사람 자체를 믿고 보여주는 존중. 그런 존중이 정말 흔치 않은 것임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직접 받아본 지금은 더욱 그 경험이 귀하다. 나도 그 존중에 부응하는 무엇인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나는 이 어른 옆에서 좀 더 배우고 싶다. 삶으로 무엇인가를 가르치고 있는 이 어른을 좀 더 닮고 싶다. 내가 그 선생님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말하기엔 아직도 섣부르다. 내가 무엇을 배웠다는 생각조차도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새해에도 그 배움을 이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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