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수련회가 끝나고 다녀온 사람들끼리 뒤풀이 겸 소풍을 갔다. 나는 사실 수련회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남편과 최근에 결혼했다는 이유로 이 소풍에 참석할 수 있었다. 안 가려면 얼마든지 발뺌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만나고 관계 맺는 사람들과 나도 비슷한 거리 안에서 존재하고 싶었다. 물론 완벽하게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일부러 더 힘써서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침 일찍부터 나갈 준비를 하며 사소한 일로 남편과 한껏 입씨름하고 말았다. 우리를 태우러 온 차량을 기다리게 한 민망함보다 남편에 대한 불만과 괘씸함이 더 커서, 나는 맨 뒷자리 구석에 앉아 애꿎은 휴대전화 메일함만 뒤적거렸다. 남편은 내 옆에 앉아 눈치를 보며 몇 마디 말을 붙였지만 나는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중간에 다른 사람들도 태우고 짐도 새로 실으며 나만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 시간 반 남짓 차를 타고 달리자, 우리의 목적지인 대광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해수욕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해변엔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우리와 다른 한 두 팀 정도의 사람들만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요 몇 주간 이상 기후로 장대비가 매일 같이 쏟아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행히 우리가 갔을 땐 비 소식은 전혀 없었고 태양 빛만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차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후덥지근한 기운이 훅 밀려왔다. 돗자리며 아이스박스며 짐들을 들고 해변을 걸어가는 중에 남편이 가까이 와서 말을 걸었다.
-미안해 여보, 화 풀어.
차를 타고 오며 그새 나는 남편과 싸웠던 일도 깜빡하고 바닷가에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싸웠나 돌아보면 사실 내 과실도 적지 않게 클 텐데, 남편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미안하고도 고마웠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와 같이 걸었다. 탁 트인 하늘에 포근해 보이는 하얀색 뭉게구름, 습기가 묻어나는 바람이 온몸을 휘감았다.
자리에 돗자리를 펼치고 앉아 일단 고기부터 구웠다. 아침 일찍 출발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도착하니 벌써 점심때였다.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은 서로 친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듯했다. 약간은 어색한 분위기에서 양보 아닌 양보를 하며 눈치껏 고기로 배를 채웠다.
바로 뒤에는 해양 경비대 건물이 있었는데, 우리더러 들으라는 듯 계속 안내방송을 내보냈다. 관광객의 안전을 위해 구명조끼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는 방송이었다. 물이 아주 깊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무료로 빌려준다고 하니 사양할 이유가 없었다. 점심 먹은 것을 다 같이 치우고 하나둘 구명조끼를 받아 입었다. 나도 짧은 반바지와 딱 붙는 민소매 티 위로 구명조끼를 챙겨입었다. 아래로 늘어진 안전줄 사이로 다리를 하나씩 집어넣고, 조끼가 몸에 딱 맞도록 벨트를 조였다. 물에 들어갈 준비가 끝났다.
들어가기 전엔 얼마든지 물에서 놀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는데 막상 신발을 벗고 발을 물에 담그니 얕은 물인데도 어딘가 느낌이 낯설었다. 사람들은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니 신이 나서 더 안쪽으로, 더 깊은 데로 들어가 놀기 시작했다. 나는 구명조끼에 챙을 두른 모자, 선글라스까지 단단히 채비했는데도 차마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들어갈 수가 없었다. 갑자기 몸이 젖는 게 싫었다. 어딘가 무서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갈아입을 옷까지 다 챙겨왔는데. 저 멀리서 사람들이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같이 물놀이하자고. 나도 물놀이하려고 왔는데 왜인지 계속 주춤거리게 됐다.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미끈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한 모래, 찰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다리를 감싸고 흐르는 차가운 바닷물. 지금 느껴지는 이 기묘한 감각들을 기억해 뒀다가 언젠가 꼭 글로 남겨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머뭇거림을 멈추고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처음이 어렵지, 그다음은 쉬웠다. 다리와 허벅지, 배, 그리고 가슴. 간혹 옆 사람이 뿌려대는 물에 머리까지 젖고 나니 더 이상 무서울 게 없었다.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신나게 놀았다.
물놀이를 끝내고 나와서야 실내 샤워장이 공사 중이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야외 샤워기가 있어 다들 옷을 입은 채로 몸을 씻고 화장실에 들어가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임시방편이지만 다들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귀갓길엔 내친김에 사람들을 우리 집에 초대했다. 어차피 각자 집에 돌아가면 저녁 먹기엔 너무 늦을 시간이기도 했고, 다들 언젠가 한 번쯤은 우리 집에 초대했을 사람들이기도 했다. 갑자기 정해진 방문에 대단한 먹거리는 없었지만 지난 일본 여행에서 사 온 고형카레를 끓이고 손님들이 사 온 수박 반 통을 잘라서 내놓으니 그럴싸한 여름 식탁이 되었다.
거실에 있던 소파는 안방으로 잠시 들여놓았다. 펜션에 놀러 온 것처럼 카레를 한 그릇씩 나눠 들고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거실에 둥그렇게 앉아 다 같이 저녁을 먹었다. 다들 뭐가 그리 좋았는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왜 흘러간 뒤에야 소중함을 느끼는 걸까? 밤이 되어 잘 준비를 마치고 일기장을 꺼내놓고 보니 아침에 남편과 입씨름한 것, 먼저 사람들에게 말 걸지 않고 쭈뼛거린 것, 바다에 들어가길 주저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어차피 보내야 할 시간이었다면 조금 더 기분 좋게 시작해 볼걸,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것이 올해 여름 나의 첫 바다였다.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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