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고 카페에서 따뜻한 카푸치노를 한잔 사 들고 나와 바닷가로 갔다. 챙겨온 접이식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다를 보았다. 구름이 가득 하늘을 덮고 있어서 생각보다 더 앉아 있기 좋았다. 햇빛을 직접 받는 것도 아닌데 눈이 시릴 만큼 눈이 부셔서 저절로 눈이 감겼다. 귓속으로 파도 소리가 거침없이 시원스레 드나들었다. 차르르, 찰싹, 철썩, 쏴아, 차르르.
저번에 속초에 왔을 때 맛있게 먹었던 닭강정을 두 박스 포장해 차에 싣고, 어떤 일이 생길까 떨림 반 기대 반으로 굽이굽이 도는 산길을 갔다. 연고도 없는, 이름도 처음 들어본 화천에 가게 된 이유는, 이틀 전 강연에서 보게 된 180여 점의 그림 때문이었다. 난생처음 본 그림들 속에서 화가의 삶이 느껴졌다. 컴퓨터 화면 속 이미지 파일이 아닌 진짜 그림, 화가가 직접 붓을 들고 기록한 흔적인 원본을 보고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어디에 가면 볼 수 있나 물어봤을 뿐인데, 화가는 흔쾌히 자기 작업실 주소를 알려주었다. 나와 남편은 마침 다음날 고성에 연극을 보러 가기로 했던 일정에 화천을 행선지로 하루 더 추가했다.
고성에서는 명파리에 오래도록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무대 위에 잔치처럼 펼쳐졌다. 꾸밈없는 사람의 삶, 그 자체가 어찌나 찬란하고 아름다운지. 연극이 진행되는 한 시간 반 동안, 명파리 사람들을 만나며 나는 웃고 또 울었다. 그렇게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나는 광주를 생각했다. 광주에도 어디엔가 아직 빛 보지 못한 찬란한 이야기들이 있을 텐데, 아직 만나지는 못했어도 분명 존재할 텐데. 나는 이 멋진 공연을 보면서도 질투가 나서 더 눈물을 흘렸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잔치처럼 나누고 싶다, 다짐하면서 고성을 떠났다.
안내받은 주소를 따라 간 ‘길종갑 작업실’. 투박한 나무 현판이 가리키는 길목 안에는 커다란 비닐하우스가 몇 채 쭈르륵 있고, 그 사잇길로 들어가니 예쁘게 창문이 나 있는 이층집과 두 손을 흔들며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는 화가가 있었다.
우리는 화가에게 닭강정을 한 박스 내밀었고, 화가는 일단 힘이 있을 때 차에 실어놓으라며 커다란 플라스틱 상자 한가득 넘치도록 담은 토마토를 우리에게 주었다. 그림 구경하라며 안내한 창고 작업실은 온 벽에 다 대형 캔버스 그림, 바닥에도 말아둔 그림, 한쪽에는 잔뜩 세워둔 캔버스들, 이어서 소개해 준 화가의 집 1층 거실에도 그림이 가득하고, 2층 작업실도 그림, 그림, 그림들. 화가는 그중에서 작은 그림 하나를 우리에게 줬다.
그림 구경이 얼추 끝나자, 화가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했다. 예약해 둔 송어 횟집에 가기 전에, 동네의 계곡물을 보여줬다. 계곡물 옆에 돌담 벽이 생겨난 경위, 이제는 사람이 못 가는 나무 정자에 얽힌 이야기, 오래전부터 유명한 선비들이 이 동네에 와서 머물다 간 이유. 저 밑에 용이 있을 것 같지 않냐며 함께 검은 물 밑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맛있는 술 함께 먹자며 우리를 초대한 식탁에는, 정갈하게 손질된 송어회가 두툼하게 한 접시 놓여있었다. 우리는 회를 나눠 먹으며 그의 이야기도 함께 맛있게 들었다. 술이 들어가며 조금씩 흥이 올랐는지, 그는 식사가 끝날 무렵에 우리에게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의 안내를 따라 어두컴컴한 산길을 다시 올라갔다. 밥을 한참 늦게 먹은 것도 아닌데 해가 벌써 넘어가서 깜깜한 밤 같았다. 가로등도 없고 포장도로도 없는 길로 우리의 파란색 경차를 타고 천천히 들어갔다. 여기에 누가 살까 싶은 곳에 친절한 길 안내 불빛이 있었다.
형님! 우리 왔어. 화가는 송어회 먹고 나온 매운탕감을 백발의 음악가에게 내밀었다. 몇 잔의 술을 나누고, 화가는 음악가에게 노래를 청했다. ‘화악산 베짱이들’이란 이름이 적힌 무대 앞에 있던 드럼과 아코디언, 전자 오르간, 기타와 노래반주기. 악기 연주와 함께 몇 곡의 노래를 부르던 음악가는 아내를 불러 한 곡, 화가도 용기를 내어 한 곡 부르고, 그다음은 마이크가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벌어진 한바탕 무대 앞에, 우리도 한 곡 부르겠구나, 예감하고 자연스레 떠오른 노래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 이 사람들과 함께 누릴 수 있는 노래, 송창식의 ‘우리는’. 이번 일정 오가는 고속도로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던 노래였다. 아마도 이 순간을 위해 미리 연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이크가 오자 나는 바로 이 노래를 부르겠노라고 말했다. 백발의 음악가는 오 그 노래를? 어려울 텐데, 하며 노래 반주기를 틀었고, 나는 마이크를 남편에게 넘겼다.
우리는 화천 산길 백발 음악가의 집, 그 무대 위에 서서, 하나의 마이크를 들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화가는 흥이 나서 우리와 같이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우리의 노래가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온 음악가는 이렇게 젊은 사람들하고 같이 노래 부르는 것도 재밌다며, 다음에 또 놀러 오라 말했다. 우리는 다시 화가와 함께 파란색 경차를 타고 산길을 내려와 화가를 집에 바래다주었다. 화가는 덕분에 다시 그림 그릴 힘이 났다며, 환한 얼굴로 인사했다.
화천을 뒤로 하고 숙소를 향해 가다가 잠시 멈춰 선 길가에서, 남편이 잠깐 차 밖으로 나와보라며 나를 불러냈다. 왜 그러는데? 살짝 퉁명스레 대답한 나에게 남편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하늘 좀 봐.
고개를 바짝 들고 본 하늘에는 쏟아질 것처럼 별이 한가득 알알이 빛나고 있었다.
송창식-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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돤이
꿈 같은 이야기를 선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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