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구수필

[무구수필] 내 집

2023.12.31 | 조회 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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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편지

춤추는 거북이 무구가 편지를 보내드립니다.

이곳은 내 집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내 집 마련에 뜻을 두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 문장이 주는 다양한 감정 때문이리라. 불안정, 불안, 불확실성, 두려움과 때론 비참함을 느끼게도 하는 저 문장. 부모님 집에서 살 땐 희미했던 것이, 독립하고 나와 꾸리게 된 첫 신혼집에서 지겨우리만큼 직시하게 되었다.

처음 이 집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우리 예산에서 정말 최대치의 공간을 구했다고 생각했다. 거실과 안방이 널찍하게 빠지고, 주방이 미닫이문으로 분리되어 있어서 쓰리룸 같은 투룸인 우리 부부의 첫 집. 하지만 전세살이의 전형적인 고충 중 하나인 임대인 문제가 우리를 찾아왔다.

 

임대인은 공무원 생활 후 정년퇴직한 60대 중후반의 노부부였는데, 그들의 상식이 우리와는 꽤 다름을 계속 발견하게 됐다. 몇 가지는 직접 임대인에게 연락하고 대화하며 부분적인 합의를 하고, 몇 가지는 적반하장으로 되려 큰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을 알고서 굳이 얘기하지 않고 우리가 살 동안만 잘 임시방편 하며 살기로 한 문제도 있었다. 이런 시간을 몇 개월 보내고 나니 내 안에 남은 것은 바로 이것, 이곳은 내 집이 아니고 내 소유가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는 결론이었다.

 

이후 내게 커다란 씁쓸함과 슬픔, 자기 연민과 비난의 파도가 밀려왔다. 넌 그 나이 되도록 네 몸 하나 누일 집 하나 마련 못 하고 그게 뭐니, 네 또래 친구들을 봐, SNS에 나오는 젊은 사람들의 거주 장소를 봐. 넌 대체 뭘 한 거야 그동안?

그 누구의 말보다 가장 날카롭고 치밀한 공격에 나는 스스로 당해서 엉엉 울고, 또 울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던 남편이 말했다. 여보, 그건 진리가 아니야. 거짓말인 거 알잖아, 거기에서 나와.

 

사실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한쪽으로 치우쳐 있던 시선을 반대편으로 돌리면 이런 것들이 있었다. 아직도 전쟁 중인 곳에서 자신의 나고 자란 곳을 지키려 버티고 있는 사람들, 빈민촌에서 종이상자로 세운 벽을 사이에 두고 거주하는 아이들, 자연재해로 모든 것을 잃어 난민 캠프에서 지내는 사람들. 멀리 해외로 나가지 않고 내 주변에서도, 하다못해 내가 원래 살았던 부모님 집에도 곰팡이와 누수 흔적이 남은 벽지를 볼 수 있었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어려운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사건·사고는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는 유명 브랜드 아파트에 입주했으나 시공사의 문제로 건축자재 결함이 있는 집들도 왕왕 보고, 전세 사기라는 엄청난 문제에 휘말린 사람들도 존재했다. 분명 그에 비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여러모로 깔끔하고 깨끗한 편이었다.

무엇이든 상대적이고, 결국 만족의 문제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이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였다.

 

이곳은 내 집이 아니다. 그건 사실이다. 내겐 이곳을 법적으로 소유할 만한 재정 능력이 없다. 그러나 내가 합법적으로 이 공간에 거주할 권리를 보장받는 동안, 이 공간은 나만의 의미를 담은 장소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마음껏 사람들을 이 집에 초대하기로 했다. 그것은 내가 가진 권리의 가치를 배가시키는 일처럼 느껴졌다. 더더욱 많은 이들을 초대하고 이 공간을 누리기로, 이 장소를 의미 있게 새기기로 했다. 어차피 우리의 소유는 임차의 수준에 머무르므로,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우리만의 경험의 순간들을 더욱 많이 만들기 위해서.

 

이곳은 내 집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이곳에 평생 머무를 수 없음을 함의하기도 한다. 나는 언젠가 이 집을 떠날 것이고, 이 도시를 떠나고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있다. 그리고 모두에게 분명하게 정해져 있는 것, 이 세상을 떠나는 때도 찾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그렇게 무거운 진실을 마주하고 나면 내가 당장 가진 문제가 너무 가벼운 것 같아서 헛웃음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성가시고 불편하고 짜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이것은 정말 정답이 없는 문제여서, 그래서 다양한 무게추를 이리저리 달아보며 내게 알맞은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단 사실을 조금씩 알아간다. 한 편에는 내 삶의 문제들을, 다른 한 편에는 세상에 있는 무엇인가를. 그러다가도 때론 부러움과 질투, 불안감에 저울의 화살표가 마구마구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그럴 때마다 정신 차리게 도와주는 옆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며 다시금 균형을 잘 잡아야겠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는 무게추가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고 그것에 알맞은 생활방식을 구축하게 한다. 내가 소유한 집은 없다. 그러나 내가 거주하는 집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공간을 의미 있는 장소로 바꿀 능력이 있다. 그런 나만의 생활방식이 나는 마음에 든다. 그렇게 나는 '내 집'을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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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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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라

    1
    11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 yourgrace

    1
    11 months 전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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