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라 할머니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잡지에서나 봤던 아주 예쁜 주방을 만났다. 싱크대 위 격자무늬 창문, 찬장과 그 안에 들어있는 빈티지 식기류, 벽에 걸린 그림과 조명까지 어느 하나 섬세한 손길이 안 닿은 곳 없었다. 온 가족과 이웃이 모여 함께 성대한 저녁 식사가 끝나고 다시 사마르칸트로 돌아가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나와 다리아는 주마 집에서 하룻밤 자기로 했다.
우리들과 이웃집 아줌마까지 합세해서 모든 설거지가 끝난 후엔, 새로 설치한 보일러가 있는 샤워실에서 따뜻하고 깨끗한 물로 몸을 씻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안젤라 할머니와 한국어로 짧게 대화를 나눴다. 할머니는 지난 십 년간 한국의 논산에서 일을 하고 작년에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왔다. 그는 서툰 한국어 실력에 수줍어했다.
주마는 할머니 남편의 고향이고, 지금 사는 집은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며 물려준 집이었다. 오래 비웠다가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생의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말끔히 고쳤다. 내가 한눈에 반했던 주방도 그때 새로 만든 것이었다. 내가 이번 우즈베키스탄 여행 직전에는 유럽에 다녀왔단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할머니는 내게 파리는 어땠냐고, 에펠탑은 정말 예뻤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따끈따끈한 최근의 경험을 나누며 무척 좋았다고, 나중에 할머니도 꼭 가보시라며 가볍게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은 비자가 거의 나오지 않아서 유럽 여행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도 모른 채.
예전엔 주마에도, 사마르칸트에도 고려인이 많이 살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도 타슈켄트로, 혹은 한국으로 떠나 이곳에 남은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장에도 당근 김치로 알려진 마르코프차를 살 수는 있지만, 더 이상 고려인들이 그 음식을 팔고 있지는 않다고. 음식은 남고 사람은 떠나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금세 그 생각을 수정했다. 어떻게든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애쓰던 이들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곳에 남아 정착했으리란 생각이야말로 안일했다. 그들은 누구보다 더 생존에 민감한 이들이 아니었던가. 더 잘 살 수 있는 곳, 좀 더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떠나는 일이 이상할 리 없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할머니는 한국에서 돈을 벌고 다시 주마로 돌아왔다. 이곳이 당신의 고향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잠들기 직전, 잠시 마당으로 나갔다. 별을 보기 위해서였다. 방해하는 불빛이 적어 시야를 가릴 일이 적을 거란 예상은 정확했다. 고개를 위로 들기만 했을 뿐인데, 하늘 가득 작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크고 넓은 그곳에 별이 가득했다.
주마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사마르칸트로 돌아가는 길에서야 나는, 내가 지금 얼마나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지 깨달았다. 몇 년 전에는 분명 쉽게 꺼냈던 비전이니 소명이니 하는 말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얘기였는지 느껴져 갑작스레 부끄러워졌다. 생존의 문제 앞에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은 얼마나 꿈같은 이야기인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 온 나의 삶은, 얼마나 수많은 삶에 빚지며 지금까지 오게 된 것인지.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단지 나만을 위한 것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내 삶에 연결된 다른 삶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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