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돌아가며 내 글을 읽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듣는, 내가 만든 인물들의 대사. 나는 나를 위해서만 그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틀렸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 속 인물이 되었다. 마치 자기 얘기를 말하는 것처럼 인물들의 목소리를 냈다. 무대 바깥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이야기.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그 글을 처음 쓸 때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이 이야기로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앞으로는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누구나 길을 잃을 때가 있다>를 만든 뒤로, 나는 몇 년간 다시 연극 할 기회가 없었다. 어떤 방법을 시도해야 하는지조차 몰라 헤맸다. 이대로 가다간 또다시 그 이전처럼 길을 잃은 상태에 머물 것 같았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지만, 내가 나를 불러 아비뇽 페스티벌에 갔다. 출국 전 이렇게 비용을 투자해서 가는 게 맞는지, 가서 무엇인갈 이루거나 성과를 내지 못해도 괜찮은 건지 한참 고민했다. 일단 직접 가서 경험하는 것 외에 뾰족한 답이 없었고, 난생처음 경험한 여름의 남프랑스에서 나는 금세 축제에 흠뻑 젖어 들었다. 가장 기대했던 교황청 안뜰에서의 낭독극을 보고 숙소로 혼자 걸어 돌아가던 밤, 나는 북극성을 발견했다. 저 멀리 빛나고 있는 별을 바라보며, 나는 당장 도달할 수 있는 목적지는 아니지만 그 방향으로 조금씩 나아가 보기로 했다.
귀국 후에 특별히 새로운 사건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여름 이후로 미뤄둔 일정을 차곡차곡 소화해야 했고, 아비뇽에서의 시간은 사라진 꿈만 같았다. 여전히 쉽게 해결되지 않는 일상의 문제들, 하루하루 살아내며 견뎌야 하는 순간들, 그 무엇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해결되지 않은 나 자신의 문제들. 푸념을 잔뜩 털어놓아도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점점 내 감정에 빠져들었다. 어쩌다가 내 삶이 이렇게 꼬였는지, 언제부터 문제가 시작된 것인지,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자기 파괴적이면서도 습관적인 질문이 흘러나올 때쯤, 눈물도 흘러나왔다. 자기 연민의 늪에 또다시 빠져버렸다. 그래도 오랜 연습과 노력 끝에, 자기연민 하는 나 자신을 뒤늦게나마 발견하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덫에 걸린다. 자기연민을 여전히 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비난. 연민과 비난을 오가는 어이없는 시소를 타던 중, 우연히 괴테의 글을 발견했다. ‘자신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눈에 우리의 미덕은 물론이고 우리의 결점까지도 실제보다 훨씬 더 과장된 것으로 비치도록 만든다.’ 내 문제를 실제보다 과장했던 적이 과연 없던가? 과장을 심하게 하고 싶다는 건, 그만큼 내가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럴 땐 내게 집중된 시선을 돌려 다른 곳을 바라보아야 한다.
프리다 칼로를 떠올렸다. 또렷한 갈매기 눈썹과 거뭇한 수염 자국, 화려하고 선명한 색을 사용해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또 그렸던 화가. 일대기를 따라 그녀의 자화상을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오래도록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얼굴 아닌 수박만 잔뜩 그려진 그녀의 유작이었다. 멕시코에서는 ‘죽은 자의 날’을 기념할 때 수박을 먹는다고 한다. 빨간 과육을 먹고 나면 씨앗이 많이 남아 다시 생명을 이어가는 수박. 프리다 칼로는 자기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캔버스 가득히 수박을 그렸다. 그리고 그 조각 한가운데에 ‘Viva la vida’를 새긴다. 인생이여, 만세!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조금만 찾아보면 알 수 있는 그녀의 경험들, 그중 하나만 겪어도 나라면 괴롭다고 눈물 마를 일 없었을 그 상황들 안에서, 그녀는 창작을 꾸준히 이어 나갔다. 자기 자신을 마주했다. 불행에 잠식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그 너머로 나아갔다. 한계라고 말하는 것들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길을 계속 나아갔다. 그렇게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낸 그녀의 고백이 지금의 나에게 다가왔다. 너는 너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고.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이미 오래전 벽을 뚫고 새로운 나만의 길을 찾아 나서겠다고 선언했을 때 직감했다. 이 한 번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삶의 괴로움과 고통을 또다시 마주하게 될 것을. 또다시, 길을 잃은 것 같은 순간이 찾아올 것을. 드디어 해냈다는 기쁨도 있었지만, 이 직감에서 비롯된 두려움도 함께 있었다. 이 문제는 누구도 나를 대신해 줄 수 없다는 무섭고도 당연한 깨달음도.
프리다 칼로가 다시 내게 묻는다. 그래서, 너 포기할 거야?
당장 눈앞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 않아도 시간은 어김없이 흐른다. 그 안에 나는 존재하고, 내가 느끼는 순간의 감정 또한 영원하지 않다. 변하는 것을 억지로 막을 필요 없고, 변하지 않을 것을 억지로 흔들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방향을 내가 스스로 정하는 것.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않고, 내가 나아갈 방향을 조정할 힘은 다름 아닌 내 안에 충분히 있음을 믿는 것.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다시 길을 잃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 그것이 인생의 당연한 이치임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다시 방향을 찾고 나아가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 길을 잃어본 적 있는 사람만이 나중에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인생이여, 만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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