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이번 편은 쓰다 보니 조금 길어졌어요. 가벼운 뉴스레터들이 많던데 저는 너무 긴 글을 보내서 피로감을 드리는 건 아닌지 조금 걱정입니다. 시간 되실 때 천천히 읽어주세요.
그동안 마흔 일기는 뉴스레터로 쓰고, 육아 일기는 브런치에 올렸는데 글이 꽤 모여서 브런치 북으로 발행했어요. 놀라운 게 22꼭지 뿐인데 브런치에서 분량이 많다고 줄이길 권하더라고요. 긴 호흡의 글을 읽지 않는 요즘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쓰기를 하고 있는 걸까 잠시 고민했답니다.
육아일기가 궁금하신 분은 여기서 읽으실 수 있어요.
그나저나 제가 운동에 대해 긴 글을 쓰다니 저도 놀랍네요. 소심한 A형 인프피의 운동 찾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여러분.
7. 마흔 일기 / 운동
요즘 무슨 운동하세요?
친구가 선물해 준 짜 먹는 홍삼, 병원에서 처방받은 비타민D, 동네 엄마가 먹어보라고 준 링티, 지인이 선물해 준 멀티 비타민 미네랄. 내가 먹고 있는 영양제 들이다. 매일 빼놓지 않고 챙겨 먹는 꼼꼼한 스타일은 아니라 정수기 옆에 두고 잊고 살다가 '아차. 이런 것도 있었지.' 한 며칠 또 열심히 먹다가, 오늘 너무 힘든데? 싶으면 급하게 몇 가지를 털어 넣는 식이지만. 요즘 나는 영양제 선물이 제일 좋다. 옛날에는 책이나 커피 선물이 최고였는데 이제는 영양제를 받으면 이 사람 찐이다! 정말 나를 생각해 주는구나 감동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친정엄마는 친구를 만나면 어제 티브이 건강 프로그램에서 나온 몸에 좋은 음식 이야기를 한다던데, 마흔 즈음 우리들 사이 가장 큰 이슈는 운동이다. 주변에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는 게 어려울 정도다. 매일 러닝을 하면서 꾸준히 페이스와 킬로수를 기록하고, 바쁜 육아 중에서도 요가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전문가 못지않은 홈트족, 계절을 잊고 어디서든 물속에 뛰어드는 수영파와 헬스장 전신 거울에서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인증샷을 찍는 PT파도 있다. 성인 발레를 시작했다는 사람, 멋지게 차려입고 테니스를 시작한 사람, 온 가족이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나로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지 못하는 극소수의 사람이다. 하루 만 보를 걷는 것으로 겨우 최소한의 노력은 한다고 버텨보는 부류. 심지어 기를 쓰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좀 안쓰럽게 봤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운동을 다이어트와 연결 지어 생각했기 때문에, 외적인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처절한 노력 같아 보인달까. 천년만년 살겠네. 뭐 한다고 저런 것만 먹으며 살지. 재미없어 보였고 외모나 몸매에 집착하는 것 같아 안 되어 보였다. 비난까지는 아니어도 어찌 됐든 내가 갖고자 하는 삶의 태도는 아니었다.
유행처럼 번지던 운동의 파도에 젖게 된 건 <마녀 체력> 때문이었다. 나처럼 글을 쓰고 읽는 게 직업인 여성의, 더군다나 나보다 더 나이가 많은 중년 여성의 운동 도전기이자 정복기. 출간된 지 4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여성 에세이 분야 12위를 유지하고 있는 책이다. 운동에도 전혀 관심 없었고, '마녀'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그 당시 내가 듣는 오디오북 앱에 딱히 들을 것이 없어서였다. 유명하다는 책이니 들어보다 아니면 말아야지, 가벼운 마음으로 플레이했는데 어느새 나는 오디오 북을 더 듣기 위해 16,000보를 걷고 있었다. 그녀가 대단했지만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렇게까지 되지 못하더라도 시작은 해볼 만하다는 도전 의식이 꿈틀거렸다. 그래서 그 이후 나에게 극적인 변화가 왔느냐. 그렇다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지방 대신 근육을 키우고 있겠지. 나는 또 '그래도 난 안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만 품고 있을 뿐이었다.
의식의 변화는 있었다. 운동하는 사람들을 날씬해지기 위해 애쓰는 사람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운동을 곧 다이어트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내가 그동안 운동의 본질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운동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제 몫의 것을 해내는 정직한 사람들이라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에게 맞는 운동 찾기가 시작되었다. 배배 꼬인 인간이라 그런지, 적당히 가난한 형편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장비를 갖춰야 하는 운동은 싫었다. 특히 테니스나 골프처럼 귀족 운동이라 불리는, 고가의 장비를 구입하거나 심지어 운동을 도와줘야 하는 사람까지 있어야 하는 건 질색이었다. 그러면 수영을 할까? 아예 못하는 것도 아니고 물을 좋아하니까 나에게 가장 맞는 운동이라면 수영이 딱이었다. 수영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제주 해안에서 다이빙 하고, 예쁜 원피스 수영복을 쇼핑하는 게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나 한 달에 생리를 열 흘이나 하잖아. 수영 강습 1/3을 못 가는 게 불 보듯 뻔한데? 양도 많은 편이라 탐폰끼고도 안 될 것 같은데. 안 될 것 같은 이유들이 줄줄이 따라왔다. 서울에 살 때는 자전거 타고 음악 들으며 한강에 가는 게 낙이었는데 그럼 자전거를 탈까? 아니지, 여기는 그렇게 달릴 길도 잘 안되어 있고 중간중간 차도를 달려야 하는데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떡해. 다리라도 다치면 그날 당장 애 하원은 어쩔 거냐고.
운동은 해야겠는데 어떨 걸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동네 엄마가 점핑을 소개해 줬다. 너무 재미있다고 적극 추천해 줘서 바로 원데이 체험을 예약했다. 달라붙지 않으면서 편안한 옷을 찾아 입고 쭈뼜쭈뼜 들어가는데 여기저기 헐벗은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트램펄린 끌고 중앙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초짜답게 뒤쪽에 자리 잡았다. 곧 천장 전등이 꺼지고 어두운 조명 아래 무지갯빛 조명기구가 영롱하게 움직였다. 유튜브로 미리 봤을 때는 영상을 보고 하는 곳도 있던데 여기는 관장님이 직접 시범을 보였다. 배경음악은 8090 댄스곡. 다들 작은 트램펄린 위에서 익숙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정확하게 15분 만에 거기서 탈출하고 싶었다.
일단 트램펄린에서 뛰는 속도가 도저히 적응이 안 됐다. 우리가 어릴 때 뛰던 방방은 아래로 꾸욱 눌렀다가 점프하고 천천히 착지해서 그 반동으로 다시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었나? 여기에서는 착지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빠르게 한 번 더 점프를 한다. 평생 평범한 줄넘기만 하던 사람이 갑자기 2단 뛰기로 뛰는 사람을 쫓아가는 기분이랄까. 어쩔 줄 몰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 관장님은 스텝이 어려울 수 있다며 이번에는 춤으로 가자고 다음 곡으로 강남스타일을 골랐다. 하지만 관장님이 모르시는 게 있었으니. 중학교 수학여행 때 무대 위에 끌려나갔던 그날 이후, 사약을 먹었으면 먹었지 내가 죽어도 안 하는 게 바로 춤이다. 춤으로 바뀌니 이제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스텝이 꼬이는 거야 점핑 처음 하는 사람이니 못한다 쳐도, 내가 끔찍한 몸치라는 것까지 동네 엄마들에게 들키게 생겼으니 너무 창피했다.
내 허벅지는 올라가야 할 때는 내려왔고, 팔은 허우적허우적 허공을 가로질렀다. 고개는 관장님과 사람들 사이에서 초점을 잃었고, 빰은 비 오듯 흘러서 왜 여기 오는 사람들이 딱 붙고 시원한 옷 차림이었지 알 수 있었다. 나도 저 헐벗은 여자들처럼 벗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머릿속에서는 공원을 산책하는 나를 떠올리며 남은 시간을 버텼다. 새소리와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호수 공원을 가로지르는 나. 만보를 채우고 흡족해하는 나. 그제야 이 운동을 추천해 준 동네 엄마도 E. 이 운동을 오래 하고 있었던 내 친구도 엄청난 E라는 것이 떠올랐다. 아뿔싸. 이건 감히 I가 넘볼 운동이 아니었구나. 겨우겨우 한 시간을 채우고 생각해 보고 올게요라고 말씀드렸지만 우리 인연은 이게 끝이라는 건 45분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
점핑이 나와 안 맞는 운동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정 반대로 정적인 요가로 눈길을 돌렸다. 이 작은 동네에 요가 학원이 얼마나 많은지 레슨비도 천차만별이었다. 어느 곳은 한 달 가격치고 저렴해서 다시 물으니 1회 가격이라는 말에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여기가 청담인지, 청주인지. 그러다 가격이 저렴하고 한 달에 8회를 끊으면 원하는 요일과 시간에 올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이 정도라면 시간이 안 돼서라던가 생리 때문에라고 핑계를 댈 수 없으리라.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해 다음 달 1일로 첫 수업을 잡고 상담과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끝냈다. 추진력만큼이나 끈기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수업날이 다가올수록 시험날짜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두려워했다.
친구들에게도, 남편에게도, 미용실에 가서도 요가 끊었는데 너무 가기 싫다고 첫 수업까지 며칠 안 남았다고 징징거렸다. 듣는 사람마다 요가가 얼마나 좋은지, 시작이 어렵지 하다 보면 중독이라고 설득했다. (남편은 돈이 아까우니 꼭 가라고 했고) 그렇게 다음 달 1일이 되었고 나는 요가 레슨을 단 한 번도 가지 않은 채로 한 달을 보냈다. 여전히 번호가 저장되어 있어서 가끔씩 요가원에서 단체 문자가 오는데 그때마다 내 얼굴도 잊었을 원장님이 떠올라 부끄럽다. 도대체 왜 안 갔냐고? 운동을 해야 하기에 예약은 했는데, 명상을 할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것 못 참았던 지난날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조용해야 하는 곳에 가면 나는 그 차분한 정적이 어색해서 히죽히죽 웃어버리고 만다. 신혼 초에 요가 수업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혼자서 다르게 움직이는 내 몸을 보고 갑자기 현타가 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이지? 푸하핫 웃어버린 적이 있다. 아마도 미친 여자인 줄 알았을 것이다. 점핑도 싫고 요가도 싫다니 대체 어쩌라는 건지 답답했다. 그래서 언제 건강하게 살 건데. 운동을 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 거야? 나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다.
운동에 진심인 남동생은 제대로 하려면 PT가 답이라고 했다. 여자는 필라테스도 좋다고. 필라테스는 가격과 의상 때문에 애초에 후보에서 제외한 것이니 빼고, PT는 마스크가 제일 걸렸다. 비염 환자가 마스크 쓰고 밀폐된 공간에서 숨쉬기가 얼마나 힘든데! 거기다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시외버스도 창문이 있는 맨 뒷자리에만 앉는 내가 바람 한 점 없는 헬스장에서 헉헉거려야 하다니. 아마도 한 번은 어지러워서 쓰러져서 내려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러덩 드러누워 눈 뜰게 뻔했다.
가장 최근에는 러닝을 시작했다. 걷는 걸 좋아하니 그것보다 속도만 조금 높인다고 생각하자, 그건 할 수 있겠지. 이미 런데이 앱을 깔았다가 삭제한 전적이 있었지만 혼자 뛰는 것 보다 런데이 앱에서 나오는 웅장한 음악을 듣고 있으면 초원을 달리는 얼룩말이라도 된 듯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게다가 녹음된 목소리라는 걸 알면서도 '제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으면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들 등원 후 비슷한 시간에 운동을 하는 동네 엄마들과 마주치는 거였다. 제대로 갖춰 입은 그들 사이 운동복도 없이 뛰고 있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여럿이 함께 운동하기는 싫으면서도 그 여럿이 혼자인 나를 보는 것도 싫었다. 여전히 운동을 하고 있는 나를 남들에게 보이는 건 쑥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달리고 있다는 걸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달릴 순 없을까. 그러다 찾은 건 밤 러닝이었다. 아이들에게 저녁을 차려 주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뿔싸, 8~9시에는 사이좋은 중년 부부들과 온 가족 운동 타임이라는 걸 깜빡했구나. 공원에는 킥보드를 탄 아이들과 열심히 팔을 휘저으며 빠르게 걷는 어른들로 가득했다. 다음 에는 10시를 노렸다. 상업 지구에서 떨어져 있는 아파트 단지이고,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모두 잘 준비를 할 시간이라 확실히 길에 사람이 없었다. 그래, 역시 밤운동이구나. 치안이 좋은 나라에 산다는 장점을 누리자. 그런데 이번에는 무선 이어폰이 걸리적거렸다. 100이터 질주를 하는 것도 아닌데 몸이 위아래로 들썩거릴 때마다 이 콩알 같은 게 떨어질까 봐 자꾸 신경 쓰였다. 그래서 거추장스러운 무선 이어폰을 빼버리고 핸드폰 소리를 크게 키운 뒤 울러맨 작은 크로스백에 넣고 달렸다. 그제야 트로트가 나오는 카세트를 자전거 핸들에 연결해놓고 달리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이 운동을 하지 못할 이유가 하나씩 사라지고 러닝에 어느 정도 정착했다 싶을 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아직 둘째가 6살이라는 것. 주말부부가 된 후에는 작은 아이에게 잘 설명하고, 큰 아이에게는 잘 놀아주라 부탁하고 밖으로 나왔는데 달리기 시작한 지 20분 만에 울면서 전화가 왔다. 이렇게 달밤에 달리기도 안녕이구나.
나에게 맞는 운동찾기의 긴 여행은 아직 제대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건강검진에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한 시간 정도 땀이 날 정도의 운동을 하느냐는 물음에 자신 있게 체크할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김장철이 왔네요. 김장하러 친정이나 시가에 가는 분도 계시나요? 저는 배추 농사라도 지을 것처럼 열심히였던 며느리에서, 통만 들고 가서 받아오는 며느리가 되었답니다. 이 긴긴 이야기도 언젠가 쓰려고 해요.
어쨌든 새로 만든 김치 먹을 생각에 들떠있어요. 통영에서 굴도 시켰답니다. 주말에는 막걸리와 함께 내내 취해있을 예정이에요. 그럼 다음 편지로 인사할게요.
22.11.10. 희정.
💌문화다방 소식
문화다방에서는 매년 연말 기부를 하고 있어요.
올해로 6년째 이어가고 있는 이벤트인데 책을 할인해서 판매하기도 하고, 상품을 새로 제작하기도 해서 수익금 전액을 생명의 숲에 기부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제 뉴스레터 수익+a를 기부하려고 지금까지 보내주신 구독료와 커피 쿠폰을 수익화 하지 않고 잘 모아두고 있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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