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는 말들

7. 산책하는 말들 / 필라테스와 글쓰기

갈비뼈 닫고 숨쉬기

2024.06.30 | 조회 5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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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7. 산책하는 말들 / 필라테스와 글쓰기

갈비뼈 닫고 숨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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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요상한 개구리 양말을 신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수업 시작 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 거울 앞에서 내 발 사진을 찍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필라테스라니.’

종종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필라테스 사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진으로는 익숙한 낯선 기구들 뒤로 딱 붙는 옷을 입고 우스꽝스러운 양말을 신고 있는 모습들. 내가 필라테스를 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의 팔할은 그 모습 때문이었다. 지인들의 필라테스 인증샷 사진을 볼 때면 나도 뭐 하나 제대로 된 운동을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과 동시에 저것만큼은 절대 안 해라고 다짐했었다.

암 진단금이 나온 후 나에게 200만 원이 들어있는 황금카드(이전 뉴스레터 암(3) 참고)가 생겼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돈 들여 하는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운동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주업과 부업이 바뀌어 운동을 더 열심히 하는 디자이너 동생에게 물으니 명쾌한 답장이 나왔다.

- 누나. 남자는 피티 여자는 필라테스야.

아, 그렇구나. 나는 몰랐지만 운동하는 놈이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허무하리만큼 쉽게 결정했다. 옷은 다른 거 입으면 되겠지 뭐.

 

동네 필라테스 학원 중 후기가 좋은 두 곳을 골라 체험 수업을 받았다. 첫 수업은 그룹수업이었는데 정신없이 몰아치더니 끝나 있었다. 뭘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필름이 잠시 끊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수업이 끝난 후에 발레를 하셨다는 무척 가늘고 속근육으로 다부진 선생님께서 조언하시길, 다른 곳에서 하더라도 아직은 몸을 쓸 줄 모르니 1:1 수업을 듣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적응이 되면 그룹으로 하는 게 좋겠다고. 수업이 끝난 후 휴게실과 샤워실, 헬스장을 겸하고 있는 공간을 한 바퀴 돌아본 후 금액 상담을 하고 문을 나섰다. 다른 건 몰라도 공원을 바라보는 휴게실 뷰가 무척 훌륭해서 필라테스고 뭐고 저기 앉아 글이나 쓰면 좋겠다고 잠시 생각했다.

두 번째는 휴게실, 샤워실, 헬스장도 없는 작은 필라테스 전문 학원이었다. 처음 간 곳은 체험 수업 무료 이벤트를 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돈을 내야 했다. 돈을 내고 배워서 이상한 오기가 생겼는지, 아니면 여기는 1:1 수업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수업이 끝난 후 정수기에서 물 한 잔을 마시고 홀린 듯 10회 회원권을 끊고있었다. 거기에 글쓰기 적당한 공간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방금 계좌이체한 돈에 대해 생각했다. 5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현금가라고 했던 그 금액을 다른 사람들은 척척 내고 배운단 말인가. 다들 통장에 그 정도 여윳돈이 있나. 앞으로 할 운동에 대한 걱정 같은 것은 벌써 저만치 사라졌다. 아직 1회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기 싫은 마음뿐이었다.

 

체험 수업 두 번, 1:1 정규 수업 5회를 받고 이 글을 쓴다. 한 번도 빠지지 않았고 생각보다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필라테스 시간에 나는 이렇다. 분명 호흡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그럼 나는 어쩔 줄 모르고 소리만 더 크게 후후 숨을 쉬어댔다. 내 복부와 갈비뼈와 등을 신경 쓰며 내뱉어보는 더럽게 까다로운 숨이었다. 거울 속의 내 몸 상태가 분명 좋아 보이지 않는데 ‘희정 님 좋아요’ 선생님의 한 마디에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샘솟다가도 ‘아니죠. 아니죠.’ 한 마디에 몹쓸 몸뚱어리 왜 이 모양일까 자괴감이 든다. 어깨에 힘을 주지 말고 등으로 팔을 들어 올리라는데 내 어깨는 하늘 높게 솟아서 내려올 줄 모른다. 몸을 일으키라는데 눈치도 없는 복부는 사정없이 부르르 떨며 제자리. 갈비뼈 닫으라는 말에는 갈비뼈가 자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웃음을 참고 노력한다.

필라테스 선생님은 내가 알고 있던 것을 모두 새롭게 가르쳤다. 이전까지 내가 몸을 쓰던 방법과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며 새로 시작해야 했다. 무엇보다 숨 쉬는 법을 다시 배운다는 게 좋았다. 지금까지 숨쉬기가 세상에서 제일 쉬운 운동인 줄 알았는데. 의식하며 숨을 쉬어야 하다니. 제대로 숨쉬기 위해 땀을 흘려야 하다니. 겨드랑이가 젖을 때까지 그놈의 갈비뼈를 닫고 호흡을 해보려 노력하는 게 조금 어이없기도 신나기도 했다.

 

어느 날은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자마자 서둘러 노트북을 열었다.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 수업에서 첨삭을 하는 회차였다. 아직 보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학생들의 파일을 모두 다시 열어 칭찬의 말을 덧붙였다. 지난주에 했던 말이라 굳이 반복하지 않아도 되겠다 여겼던 칭찬도 다시 썼다. 좋은 것은 아주 좋다고. 아주 좋은 것은 아주아주 좋다고 강조해 말했다. 단점을 지적하던 피드백은 순화해서 다시 썼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채찍은 필요 없다. 사람을 계속하게 하는 힘은 당근. 오로지 달디단 당근뿐이다.

나는 이틀 전에 했던 동작을 기구에 올라가는 동시에 까맣게 잊는다. 저번에 어떻게 했더라 도무지 생각이 안 나 몸이 굳는다. 팔을 앞으로 들라고 하면 학창 시절에 벌을 설 때처럼 앞으로 나란히를 했었나 손등을 아래로 하고 했었나 헷갈려 선생님께 꼭 다시 묻는다.

나에게 당연한 것이 처음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어려웠겠구나. 엉망인 내 필라테스 실력에도 ‘좋아요. 잘했어요.’를 외치는 선생님께 필라테스보다 글쓰기를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어깨를 펴세요.’ 말로 하는 것보다 내 어깨에 손가락 하나를 살포시 얹어주던 그 무게를 자주 떠올리려고 한다. 아주 가벼운 손끝이 내 어깨 위에 올라와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를 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됐으니까.

 

필라테스를 시작하고 나니까 낮 시간에 어디론가 열심히 가고 있는 운동복 차림의 엄마들이 보인다. 운동하는 걸 보면 성격이 보인다고, 선생님께서 내 성격이 급한지 물어봤었지. 지금 보니 운동복을 입은 내 나이 또래 엄마들은 모두 성큼성큼 걷는다.

 


구독자님 잘 지내셨나요?

벌써 6월의 마지막 날이네요. 요즘 가장 성실히 하고 있는 필라테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구독자님은 어떤 운동을 하고 계신가요?

아, 그리고 옷은 생각보다 쉽게 정했습니다. 집에 있던 어벙하지 않은 츄리닝 바지에 아들 녀석의 기능성 쿨티를 입으니 딱이었어요. 너무 크지도 딱 붙지도 않아서 좋더라고요. 역시 옷은 운동하기 싫었던 백만 가지 이유 중 하나였을 뿐.

또 편지하겠습니다. 😊

 

24. 6. 30

희정

 


 

💌문화다방 소식

다음 주 주말 전주로 북페어를 갑니다. 항상 온 가족이 함께 출동했는데 이번 페어는 저녁 늦게까지 해서 오랜만에 혼자 떠나요. 참가 팀을 보니 친한 지인들이 없어서 어쩐지 조금 쓸쓸한 이틀을 보낼지도 모르겠지만, 일단은 캐리어 가득 책을 싣고 전주로 떠납니다!

전주에 계시거나 전주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면 7월 6,7일 전주책쾌에 들러주세요. 

첨부 이미지

<2024 전주책쾌 : 독립출판 북페어>

일시

2024. 7. 6.() 11:00 ~ 20:00

2024. 7. 7.() 11:00 ~ 19:00

 

장소

전주 남부시장 내 문화공판장 작당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동로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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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뽕의 프로필 이미지

    배뽕

    0
    over 1 year 전

    골프....시작하고 한 일년을 미친듯이 몰두했는 데,,,, 그렇게 하는 게 아닌 운동이란 게 이제 눈에 조금 보여요ㅡ 기회가 된다면 요가 개인수업을 받고 싶어요, 골프 전 6개월정도 단체수업 받았는 데, 너무 하기 싫었지만, ㅎㅎ 하고 나니 나에게 딱인 운동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천천히 움직여야하고 호흡을 정돈해야하고,,,,,, 무엇보다 내 라운드 숄더,ㅎㅎ가 점점 펴지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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