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여름방학

3-3 영화 카모메 식당 좋아하세요?

여름방학 : 헬싱키에서 보낸 일주일

2025.09.23 | 조회 2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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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3-3 영화 카모메 식당 좋아하세요?

 

 

헬싱키에 있는 '카모메 식당'이 지금 있는 곳에서 영업을 마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화 <카모메 식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아쉬워할 만한 소식이었다. 헬싱키에서 머무는 일주일 동안 나도 여길 여러 번 방문했었다. 쌀밥이 먹고 싶을 때와 저녁거리를 포장하기 위해, 그리고 잔잔하고 심심한 일본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처음 방문한 날은 식사시간이 아니었던 덕분에 식당을 오롯이 혼자 즐기며 조용히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자꾸 눈에 들어왔던 영화 속에서 본 옅은 하늘색의 나무 벽. 맞아, 영화에서도 딱 이런 분위기였지. 이곳을 좋아할 친구들을 떠올리며 엽서를 쓰기 좋은 시간과 장소였다. 나올때는 입구에 있는 귀여운 토트백 스타일의 에코백과 나무 도마도 훌륭한 선물이 될 것 같아 하나씩 담아왔던 기억이 있다.

헬싱키 여행기를 검색해 보면 카모메 식당 촬영지로 영화 속 인물들이 갔던 카페 우르술라(Cafe Ursula)가 꼭 방문해야 할 곳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서 한 번 보고 마는 게 아니라 bgm처럼 틀어놓고 수십 번 본 사람들이 많다니, 이왕 헬싱키에 왔다면 영화 속 인물들을 따라 여행하는 것도 좋았을 테지.

 

 

내가 헬싱키에 간다고 했을 때, 카모메 식당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공식처럼 무민을 좋아하는지 묻기도 했다. 아쉽게도 나는 카모메 식당도, 무민도 심지어 아르텍이나 아라비아, 마리메꼬에도 관심이 없다. 무척 놀랍겠지만 말이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카모메 식당과 무민의 열렬한 팬들이 십중팔구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 멋지고 사랑스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냐고. 그러면서 핀란드는 대체 왜 가는 거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냥, 좋아하는 작가가 있고 그녀가 핀란드 사람이라 언제부턴가 한 번 가보고 싶었다고 얘기할 수밖에. 또 알고 보니 호수와 바다가 있고, 세계에서 가장 좋은 도서관이 있으며, 대학과 미술관, 갤러리가 작은 도시 안에 모여있어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맞춤인 도시라 왔다고 이야기 했다.

 

주변의 권유에 카모메 식당을 보긴 했지만 한 편을 다 보는데 꽤나 많은 인내심이 필요했다. 그 이후로도 <해피 해피 브레드>, <안경> 등등 몇 번을 더 시도해 보았으나 엉덩이가 들썩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평소의 성격 탓이다. 아쉽게도 나는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부류의 영화를 즐겨 본다.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반전 정도는 하나쯤 있어야 하고, 아는 사람만 발견할 수 있는 암시나 복선 같은 것을 찾는 데서 재미를 느낀다. 내게 영화는 얼마나 기발한지, 충격적인지, 오래 잊을 수 없는지가 별점의 기준이 된다.

그런 내가 카모메 식당에 여러 번 온 건 좋아하는 사람들의 세계를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어떤 걸까 궁금해서. 함께 좋아할 수는 없어도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할 수 있으니까.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경험과 도전의 기회가 아무래도 줄어들었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면서부터 였을 거다. 아이가 있다고 포기하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홀가분했던 20대와는 다를수 밖에 없었다. 물론 아이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을 열어준다. 또 나에 대해 그 어느때보다 더 깊게 들여다볼 치열한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때는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이 비슷했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에는 항상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게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틀을 벗어나는 기회가 자주 찾아오지 않았고 찾아오더라도 잡기 어려웠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몇 안 되는 내 사람들의 틀 안을 엿보는 취미가 생겼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의 세계에도 기웃, 손바느질을 하는 사람의 세계에도 기웃. 농사를 짓는 사람, 빵을 만드는 사람, 직접 뛰어들어 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세계를 엿보고 응원하는 것만으로도 내 얕은 세계는 제자리에서서 야금야금 평수를 넓혔다.

 

가만 살펴보니 무언가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걸 왜 좋아하냐 묻는다면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취미라고 얘기할 거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화를 잘 내지 못하는 편이라는 그렇다는 것도. 그러다가 조금 진지한 이야기까지 나눌 기회가 된다면 무엇이든 능숙하고 여유롭게 보이고 싶어 하는 나에 대해 말하게 될 것이다. 그런 어른으로 자라게 된 어린 시절의 이야기까지 꺼내게 될지 모른다. 그만큼 무언갈 좋아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 꽤 많은 걸 새롭게 알게 될 정도로 깊고 복잡하다.

 

 

초등학교 5학년인 된 큰 아이가 갑자기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했을 때 내심 반겼다. 오래간만에 새로운 세계에 기웃거릴 기회였다. 아이는 피아노에는 전혀 흥미가 없더니 4학년 때 해리 포터 영화 ost에 푹 빠져 지내며 한동안 포터 왈츠만 들었다. 아마도 그 관심이 피아노까지 연결된 것 같다.

음악에 대해 전혀 모르던 나는 아이의 관심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음악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책이라면 손에 닿는 대로 읽었다. <영감의 말들>, <음악으로 가득한>, <마음껏 틀리는 일> 등등 음악가가 쓴 에세이,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책방 사장님의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따라갔다. 1박 2일로 시골에서 열리는 야외 클래식 축제에 가고 아이와 함께 하기 좋은 음악회도 검색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어도 악기는 하나쯤 다루면 좋지 않을까 칼림바를 뚱땅거리다가, 끝내는 지역 문화재단에서 하는 수업도 듣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사람들의 다른 취향으로 내 세계를 넓혀가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좋아하는 것의 힘은 강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그 주변까지 다채롭게 물들인다. 그렇게 가지를 뻗어나가 작은 열매들이 맺힌다. 세월이 흘러 중년에서 노인이 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잔가지를 갖게 될까. 젊음에 유일하게 뒤지지 않는 몇 안 되는 장점이 될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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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방 소식

 

올해 마지막 페어에 참가합니다.

친정집 근처고 제 고향이고 또 딱 하루짜리 페어라 호기롭게 신청했는데 아빠 수술에, 아이 둘 각각 수원과 대전에서 각각 일정이 있는 날이네요. 그래도 뭐, 어떻게든 다 되더라고요. 아무리 바빠도 분명하고 나면 행복하고 뿌듯한 게 북페어이니 기쁜 마음으로 참가합니다.

무료 증정할 소책자도 열심히 만들어서 지금 인쇄소에 있어요. 가까이 계신다면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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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아트북페어(@g_m_artbookfair) • Instagram 사진 및 동영상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9월의 두 번째 편지를 보냅니다.

인스타 친구의 피드에서 헬싱키의 카모메 식당이 지금의 자리에서 영업을 끝낸다는 소식을 듣고 카모메 식당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았어요. 10월에도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은 여름의 헬싱키 소식을 들고 찾아오겠습니다.

 

25.9.23.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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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uneinwinter

    0
    3 months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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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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