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의 여름방학

3-5 헬싱키에서 만난 최애

마흔의 여름방학: 헬싱키에서 보낸 일주일

2025.11.18 | 조회 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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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마흔

위태롭지만 선명한 마흔의 글쓰기

믿기지 않은 답장을 받았다.

 

Dear Moon,

I am happy, thank you for your message!

Now I am in Helsinki, (중략) Anytime between that is fine to me, we could have a cup of coffee, or porridge. Or do you have other suggestions? Or perhaps you are busy. Let me know.

anu

 

신중하게 답장을 하고 싶지만 혹시 확인 늦어 이 기회가 날아가진 않을까. 내가 가겠다고 빠르게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곧바로 온 짧은 메일의 제목은 ‘I love it!’ 이럴 수가, 아마 나는 살면서 믿기지 않은 극적인 순간이 떠올릴 때마다 오늘을 잊지 못하리라.

짧은 폭풍이 몰아치고 여전히 출렁거리는 마음으로 그녀의 메일을 다시 천천히 읽었다. 가능한 장소, 가까이에 있는 카페의 분위기와 문 여는 시간까지 헬싱키가 낯설 날 위해 여러 번 물을 필요 없이 꼭 필요한 정보들이 담겨있었다. 바쁜 관광객일지 모르는 나에게 일정을 맞추려는 듯한 문장에서는 그녀의 배려심도 엿보였다. 그녀의 다정한 메일 한 통으로 나는 단 번에 그녀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직접 만나고 난 뒤에는 그녀의 작품을 더 사랑하게 되겠지.

 

어릴 때부터 글과 사진, 그림과 공예까지 예술을 동경하는 탓에 분야별로 좋아하는 작가 한 명씩은 꼭 있었다. 신작이 나오면 찾아 읽고, 먼 거리라도 전시가 열리면 놓치지 않고 관람했다. 돈이 생기면 진짜 작품을 구입하리라 아쉬운 마음에 전시 엽서를 액자에 넣어 걸기도 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람을 알고 난 뒤 오히려 작품과 거리가 멀어진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몇 번의 짧은 만남으로 그 사람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작품을 좋아하는 여러 팬 중에 한 명이었을 나에게 진심 어린 호의와 감사를 표현한 이는 귀했다. 그래서 더 낯선이를 반겨주는 그녀의 메일이 뭉클했다.

 

그날 하루는 그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길게 쓰며 테이블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쩌면 당신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서 왔을지도 모른다고 말해도 괜찮을까. 당신의 작품을 좋아하며 소장하고 있고, 또 직접 보고 싶었다는 것들을 딸아이가 학교생활 말하듯 소상히 전하고 싶었다. 마침 남편이 영어도 못하는 아내가 해외 나가서 큰일 겪을까 싶어 와이파이가 없어도 번역이 된다는 그 시기 최신형 핸드폰으로 바꿔주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써보지 않았던 그 기능도 이것저것 눌러 보았다. 그래, 핸드폰 번역 방법 익혔고, 하고 싶은 말은 파파고의 도움을 받아 정리해 두었고. 그러고도 그날 밤까지 1인 극의 주인공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소심한 사람이 어쩌다 기특한 용기를 내어 이런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을까.

 

약속한 날, 트램을 타고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헬싱키 시내가 조금 익숙해진 뒤라 다행이었다. 우리가 만나기로 한 카페는 그녀의 동네 커뮤니티 장소인 듯했다. 카페에는 아침을 먹으러 왔거나, 신문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이 지긋한 동네 분들이 많았다. 조금 두리번거리다 카운터로 가서 아누 투오미넨을 여기서 만나고 했다고 말하자, 케이크 한 조각을 선물해주셨다. 처음 이곳에 온 선물이라고 했다. , 저는 요즘 행복의 최대치를 찍고 있답니다. 더 이상의 행복을 잘 소화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이 달콤함을 마다할 수는 없는 노릇.

 

떨리는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입을 달싹이던 내 눈앞에 그녀가 그녀의 파트너와 함께 들어왔다. 나는 어쩔 줄 모르는 입 대신 온몸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미쳐 짐작지 못했던 반응이었다. 그녀를 껴안고 엉엉 울어버릴 줄이야. 꽃집을 몰라 숙소 근처 마트에서 산 꽃다발을 건네고 이 순간이 믿기지 않는다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녀는 그 공간에 있는 자신의 작품을 소개해 주었다. 아 너무 예쁘다 좋다 귀엽다 말고 또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었을까. 내가 적어간 종이와 최신형 핸드폰의 번역 기능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무엇보다 눈을 바라보고 대화를 하고 싶었으니까. 다행히 우리에겐 풍부한 표정과 우스움을 감수하고 파닥거릴 두 팔이 있었으니. 자주 웃으며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서촌에서 열렸던 전시 이야기를 했고, 헬싱키에서 본 그녀의 작품 이야기와 가을에 열릴 그녀의 개인전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집에 얼마나 많은 물건들은 수집하고 있는지 얘기하면서, 집에서 발끝을 들고 걸어야 한다며 발레리나 흉내를 낼 때 얼마나 웃었는지 두 번째 눈물이 터졌다.

나는 책방에서 발견한 그녀의 책을 꺼내 보여줬고, 사려 깊은 그녀는 혹시 짐이 무겁지 않으면 가져가라며 또 다른 책 두 권을 가져왔다. , 제 헬싱키에서의 행복은 이미 넘칠 대로 넘쳤는데요... 주최하지 못할 정도로 황홀한 기쁨이라고 해도 결코 마다하지 않으리. 그동안의 잔잔하고 고요하고 때로는 괴롭기도 했던 삶에 한꺼번에 찾아온 보상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받았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그녀는 나에게 프리마켓 구경을 해봤냐고 물었다. 아직이라고 했더니 지금 자기가 자주 가는 곳을 함께 가보자고. 아이 정말. 축복이 끝이 없네.

우리는 트램을 타고 헬싱키 시내에 상점을 돌아다녔다. 그녀가 데려오지 않았다면 들어가 볼 생각도 못 할 현지인들을 위한 중고물품 가게들이었다. 그 안에는 그녀에게 영감이 되어주는 물건이 가득했다. 무료로 나눔 하고 있는 책과 낡은 스푼, 어디에 사용하는지 모호한 작은 부품들 같은 것들.

또다시 트램을 타고 다른 프리마켓에서 각자 구경을 하다 그녀는 나에게 천천히 더 구경하라며 자신은 나이가 있어 이제는 집에 가서 쉬어야겠다고 했다.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며 홀홀 떠나던 뒷모습을 배웅하고도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오늘 하루 나에게 벌어진 일들로 나는 몇 년을 뿌듯할해 할까.

지금 나는 그녀의 일상과 작품 안으로 들어와 있다. 겨우 며칠 전만 해도 한국에서 매달 나가는 카드값을 걱정하던 암 환자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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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희정입니다.

11월 중순이 되었네요. 부지런히 헬싱키 이야기를 써서 보내야 하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게 만든 것 같아 가장 궁금하셨을 이야기부터 가져왔습니다. 아직 헬싱키의 도서관, 빵집, 빈티지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남아있어요. 또 편지하겠습니다.

 

25.11.18.

희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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